출산환경은 갈수록 악화되는데

지난 10일은 임산부의 날이었다. 이러한 기념일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또한 이러한 기념일이 있는 나라도 세계에서 드물 것이다. 저출산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면서 출산을 장려하고 임산부를 배려하기 위하여 임산부의 날이 2005년에 제정되었다. 10월 10일로 제정된 이유는 풍요와 수확을 상징하는 10월과 임신기간 10개월을 의미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세계에서 보기 힘든 임산부의 날을 기념한다는 자체가 한국 역대 정부가 출산율이 심각한 사회적 문제라고 판단하고 있다는 증표이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여성이 출산하기 좋은 환경을 제공하고 있는 것일까? 
 
원정출산가야하는 임산부

 
현재 전국에 분만 시설을 한 곳도 갖추지 못한 시, 군은 52곳이고, 분만 시설을 갖춘 병원이 한 곳 뿐인 시군도 32곳에 달한다. 그리고 분만실이 있어도 아기를 받지 않은 병원도 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연도별 분만기관 수 현황’ 자료에 따르면 분만실을 갖춘 산부인과 가운데 단 한 번도 아기를 받지 않은 산부인과가 2011년 25%인 것으로 나타났다. 분만실을 갖춘 산부인과 4곳 중 한 곳은 아기를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분만실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아기를 받지 않는 산부인과는 2007년 10%에 불과했다. 이 수치는 2008년 15%, 2009년 22%, 2010년 24%, 2011년 25%로 계속 늘었다. (동아일보, 2012. 8.18)

그러면서 중소도시 산모는 갈 병원이 없어서 대도시 대형병원 쏠림 현상도 심해지고 있다. 결국 산부인과는 1차 의료가 사실상 사라졌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또한 산부인과 전문의 수가 급감하고 있다. 산부인과 전문의 배출수는 2001년 270명에서 2012년 90명으로 10년 사이 1/3로 줄었다. (MBC PD 수첩, 2013.4.)
 
이렇게 분만취약지역이 늘고, 전문의가 급감하고 있는 원인으로 의료계에서는 저수가와 의료분쟁에 따른 부담 등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원인 진단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나, 이에 대한 대책은 마련되지 않아서 그 피해가 임산부, 아기와 가족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분만취약지역에 사는 임산부들은 도시로, 종합병원으로 원정을 가서 출산을 해야 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지난 2월 강원도 최전방 부대에서 근무하던 중 임신성 고혈압으로 인한 뇌출혈로 숨진 이신애 중위의 사망도 가까운 곳에 산부인과가 없어서 치료를 받지 못한 것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모성사망비가 OECD 평균보다 상당히 높아

이러한 출산 인프라 부실의 결과로 모성사망비가 증가하고 있다. 모성 사망비는 임신 중 사망하거나 분만 후 42일 이내에 숨진 여성을 해당 연도의 출생아 수로 나눈 수치다. 통계청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모성사망비는 2008년 10만 출생아 분만당 8.4명에서 2011년 17.2명으로 약 2배 증가했다. 이에 비해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국의 평균 모성사망비는 2010년 기준 9.3명이다. (연합뉴스, 2013.10.)
 
또한 조산·합병증 등의 위험이 있는 '고위험 산모'에 대한 적절한 진료가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최근 임신연령이 높아지면서 조산이나 합병증 위험이 높아지고 있다. 또한 환경오염 등으로 고위험 임산부는 증가하고 있다. 현재 고위험 임산부에 대한 의료비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으나 자격조건이 연령제한(35세 이상)과 소득 제한 (월 평균소득 150%)으로 까다롭다. 또한 미숙아와 고위험 산모가 증가하고 있는 만큼 이들을 진료할 수 있는 분만 인프라가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고위험 산모와 신생아를 위한 통합치료센터가 현재 전혀 없는 상태이다.

2014년 예산안 새로 만들어져야

다행히도 지난해 대선 주자들은 임산부 지원 및 분만 취약지역에 대한 공약을 제시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고위험 임산부 비용지원 확대와 통합치료센터 신설, 분만취약지역에 대한 공공형산부인과 신설 등을 약속했다.

그러나 지난 달 기획재정부가 제출한 2014년 예산안을 보면,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이 후퇴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14년 예산안에 2010년부터 전문가들이 요구해온 통합진료센터 신설 예산이 반영되었으나, 전문가들이 최소한으로 요구해온 시범 통합치료센터 3개 신설은 2개로 줄었다.

그리고 보건복지부가 편성한 '고위험 임산부 별도 진료에 따른 경비 지원사업'의 예산이 전액 삭감되었다. 즉 조기 진통 지원대상자(2014년 추산 1만 5967명)와 분만 중 수혈 지원대상자(7668명 추산)를 고위험 임산부로 분류해 총 2만 3625명에게 10개월 동안 100만 원씩을 지원할 계획으로, 복지부는 총 100억 원(지방보조율 48%)의 예산 편성을 요구했다.

하지만 이 사업예산은 기획재정부 등 정부 심의 과정에서 전액 삭감되었다. 그리고 공공형 산부인과 신설을 위한 예산이 반영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박근혜 대통령의 출산을 위한 공약은 현재 확실히 보장되지 않고 있다. 따라서 2014년 예산안은 다시 만들어져야 한다. 세수부터 부유세, 법인세 등 증세를 기초로 하여 예산안이 구성되고, 임신, 출산의 편안한 환경을 만들기 위한 세출을 보장해야 한다. 현재와 같이 산부인과 폐업 속출하고 분만취약지역이 증가하는 것은 바로 시장에 대한 의존이 높기 때문이다.

시장에 의료서비스 맡길 수 없어

저수가 논란과 의료사고에 대한 기피현상은 시장의존적 의료체계에서는 장기적으로 볼 때 벗어날 수 없다. 민간 의료기관에 공익을 요구하는 것은 불가능한 현실이 되어 버렸다. 더 이상 시장에 의료서비스를 맡길 수 없다. 이를 위해서는 공공형 의료시설이 확충되어야 한다. 지역에서 우선 믿을 수 있는 1차 진료 기관이 가까운 곳에 있어야 한다. 그리고 동시에 산부인과 전문의 인력의 확충이 필요하다. 현재 산부인과 전공의 지원자가 줄어들고 있는 상황을 고려하여 장학금 등 제도를 통하여 전공의 부족을 해결해야 한다. 그리고 경륜이 있는 전문가에 대한 육성 지원 필요하다.

최근 출산장려금 조사에 의하면 출산장려금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반영하고 있다. 서울의 경우는 돈 많은 지자체(서울 강남)의 출산장려금 지원이 재정이 취약한 지자체보다 63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그나마 지원받는 출산장려금조차 소득 격차에 의한 차별받는 현상은 경제적 취약층에게 출산을 기피하게 만들고 있다. 대부분 출산 관련 비용을 개인이 부담해야 하는 환경에서는 불가피한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올해 우리나라 신생아는 45만3000여명에 그쳐 작년보다 3만명 이상 줄어들 것으로 복지부는 예측하고 있다. 지난해 반짝 초저 출산국에서 벗어났다가 1년만에 다시 초저출산국(출산율1.3명 이하)으로 되돌아가는 셈이다. 우리나라는 여성이 평생 낳는 아기 수인 합계출산율이 1.1명으로 OECD 회원국 중 꼴찌다.

이러한 초저출산국에서 벗어나고자 임산부의 날을 제정하게 되었다면 여성에게 출산을 장려하기 이전에 안심하고 임신, 출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루 속히 시장에 의존하는 의료와 출산서비스에서 벗어나야 하고 보편적 서비스 지원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서비스는 과감한 증세개혁을 기반할 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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