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세가 이 땅에 들어와 판치는 것이 싫었을까”

 
[트루스토리] 범륜사를 벗어나면 우측으로 난 길을 따라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초반부터 자갈길이다. 10분이 채 못돼 길이 좁아지면서 빽빽한 나뭇가지가 등산로 지붕을 이룬다. 법륜사를 벗어난 지 20여분 남짓. 조그만 계류 옆에 초막 하나가 보인다.

나뭇가지로 엉성하게 지은 것이지만 잠시 쉬기에는 안성맞춤이다. 혹 눈이 밝은 사람이라면 그 보잘것없는 초막이 이곳에 주둔했던 병사들의 작품이라는 발견하리라. 이들은 아마도 고향의 정자를 생각하면서 이름 모를 등산객을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았을 것이다.

단조롭지 않게 계쏙되는 등산로가 1시간 이상 이어져 땀도 웬만큼 날 무렵 능선에 오른다. 비로소 전망이 트이고 앞쪽에 의정부 시가지가 보인다. 정상은 여기서 좌측 오르막으로 연결된다.

정상은 시골 초등학교 운동장만큼은 안되어도 꽤 넓은 평지다. 게다가 반쯤은 풀밭이어서 아이들이 뛰놀기에 적당한 만큼은 된다.

정상에 서면 북쪽 발 아래로 임진강이 한눈에 보인다. 스멀스멀 흘러가는 강. 오후에 잠깐 들릴 요량으로 감악산을 찾은 사람도 뽀얗게 피어 오르는 물안개를 볼 수 있다.

그리고 강 저편에 철조망으로 토막난 우리땅이 보인다. 저기쯤 송악산이 있고 그 산자락에 개성도 있을 법하다. 꼭 황진이와 박연폭포를 떠올리지 않아도 된다.

낯선 지명이라고 해도 ‘우리땅’이라는 반가움과 ‘분단’이 아픔은 어차피 가슴속에 밀려올 터이니까.

정상 한 켠에는 오래된 비석 하나가 서 있다. 1.8미터 높이의 이 비석은 파주군 향토유적 제8호로 지정돼 있다. 속칭 ‘비뜰대왕비’로 불리지만 정확히 어떤 비석인지는 모른다.

비석의 글자가 모두 마멸된 탓이다. 혹자는 ‘설인귀비’라고도 하고 ‘진흥왕 순수비’라고도 한다. 설인귀는 삼국 통일 당시의 당나라 장수. 외세가 이 땅에 들어와 판치는 것이 싫었던지 민중은 ‘설인귀는 파주 출신’이라는 설화를 만들었고 이 비석을 증거로 삼았다.

순수비설은 비석의 모양이 다른 지역의 진흥왕 순수비와 비슷한 데서 근거를 삼는다. 어쨌거나 감악산은 외세의 개입 및 분단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셈이다.

정상을 뒤로 하고 오던 길로 다시 내려서면 능선이 이어진 끝에 바위산 하나가 보인다. 장군봉(660미터)이다.

여기에 오르려면 맨 처음 능선에 닿았던 지점에서 하산하지 말고, 곧장 능선을 타야 한다. 바위산답게 10여분 이상 아기자기한 바윗길이 이어진다. 아찔한 절벽도 있어 비로소 ‘악’자가 들어간 산이 왜 험한지도 실감케 된다.

 
장군봉 아래 아래쪽에 임꺽정굴이 있다. 그가 관군의 추적을 피해 기거했다는 말이 내려온다. 굴 깊이는 10미터 정도. 내려갈 수 있게 밧줄이 걸려 있지만 다시 올라오려면 무척 힘이 든다. 여간한 힘이 아니라면 ‘짧은 등산으로 임꺽정까지 만났다’는 사실로 위안을 삼고 돌아서는 게 좋다.

이제 내려갈 차례다. 아까 비룡폭포에서 아껴둔 막걸리가 생각나면 오던 길로 다시 가면 된다. 또 하나의 하산길은 장군봉에서 서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타고 가다 신암리 쪽으로 향하는 것. 초반의 바윗길을 제외하면 수월한 길이다. 어느 길을 택하든 전체산행은 2~3시간이면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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