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의 고질적인 특징-불안, 불신, 불확실한 3불 사회

한국이 경제성장력에 비교해서 삶의 질이 낮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세계 최장 노동시간을 가진 한국 사회의 경제규모는 상위권인데, 복지수준은 중진국 수준이다. 청소년기는 입시경쟁, 성인이 된 후에는 취업경쟁, 취업이 된 후에는 불안한 노후에 대한 걱정으로 이어지는 불안 사회이다.

그리고 이러한 삶의 질은 일상적인 대인관계에서도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효과를 만들고 있다. 통계청의 ‘한국의 사회동향 2013’에 따르면 ‘낯선 사람을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한국인은 10명 중 2명 정도인 것으로 나타났다. 대인신뢰도 조사에서 긍정적으로 대답한 한국인의 비율은 2010년 기준으로 22.3%에 그쳤다.

우리나라의 대인신뢰도 22.3%는 OECD 22개국 중 14위로, 22개 국가 평균 32%보다 낮다. 대인신뢰도 1위인 노르웨이는 60%를, 그 뒤를 이은 덴마크, 스웨덴은 50%를 넘겼다. 이뿐만 아니라 사회적 자본 수준도 하위권에 속한다.

또한 현대경제연구원의 한국 사회의 투명성과 신뢰도와 관련한 설문조사 보고서(2013.3.18.)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 시스템 전반에 대하여 국민들의 68.6%는 ‘투명하지 않고 믿을 수 없다’고 부정적으로 응답하여 긍정적인 답변(31.4%)에 비해 2배 이상 높았다.

결국 전반적으로 사회에 대한 신뢰도가 낮은 것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시간이 흐를수록 서로에 대한 신뢰수준은 점점 떨어지고 있다. 우리사회가 사회 구성원 간의 신뢰를 촉진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지 못하며, 사회 구성원들이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행복하지 못하다.
 
이런 불안, 불신을 낳는 원인은 경제적 불평등과 양극화의 심화, 정치세력에 대한 불만에 있다고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과 문제점은 이미 한국사회의 고질적인 특징이 되었다. 이는 획기적인 정치 사회적 변화가 없이는 한동안 추세로 작용할 것이다.

혹자는 박근혜 정부 1년을 이명박 정부 6년차로 부르기도 한다. 이는 박근혜정부가 전 정부와 차별성도 없고 전 정부의 문제점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그러나 6년차로 부르기에는 부족하다.

이명박 정부의 제도와 정책의 기조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은 맞으나 문제해결 방식에서 전 대통령보다 더 강압적인 공안정치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공안정치의 표상은 더 과감해진 종북 몰이로 대표될 수 있다. 결국 유신의 부활 정치라 할 수 있다.

2013년의 사회를 회고하자면 새로운 사회적 현상으로 특징지을 것은 사실상 없고, 한국사회의 고질적인 문제점을 드러내는 정치 경제적 구조에서 발생되고 있다. 그러나 작년 연말 사회의 커다란 반향을 일으킨 대자보, ‘안녕들하십니까’에서 상징하는 바와 같이 2013년은 한국사회의 불안, 불신, 불확실의 3불 분위기가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 해였다.
 
새 대통령 1년차에 안녕들 하십니까를 물을 수밖에 없는 지경에 도달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은 바로 대통령이 2012년 약속한 공약을 파기한 것이 가장 크다. 2012년 선거에서 국민들이 원하는 것이 바로 복지국가와 경제민주화였다. 때문에 여야가 앞 다퉈 공약을 했던 것이다.

국민행복시대는 1년차에 물 건너 갔다
 
핵심 복지공약인 기초연금 도입안이 대폭 후퇴되었다. 소득에 상관없이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20만 원씩 지급하겠다는 박 대통령의 기초노령연금은 사실상 대선 기간 동안 가장 관심을 받는 공약으로, 민주당의 문재인 후보보다 진보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당초 약속에서 후퇴하여 소득 하위 70%노인에게 국민연금 가입기간과 연계해 10~20만 원을 차등지급하기로 했다.

기초연금과 마찬가지로 모든 중증장애인에게 현행 두 배 수준으로 지급하겠다던 장애인연금 또한 대상 축소 및 부적절한 예산 편성으로 파기됐다. ‘빈곤 사각지대 해소’와 관련한 기초생활보장제도는 부양의무자 기준 등을 그대로 유지하고, 권리성 급여를 훼손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함으로써 많은 질타를 받고 있다.

또한 4대 중증질환 등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진료비를 모두 건강보험 급여화하고, 보장률을 2016년까지 100%로 확대하겠다는 약속도 축소됐다. 본인부담 상한율을 낮추겠다는 공약도 지키지 않았다. 보육 부문은 ‘소득계층과 상관없이 0~5세 어린이집을 이용할 때 보육료 전액을 약속했지만, 무상보육이 안정적으로 지속될 수 있도록 국고보조금을 상향 조정하는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은 1년 넘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교육복지 3대 핵심 공약 중 고등학교 무상교육은 교육예산에서 완전히 삭제됐고, 학급당 학생 수 감축 방안은 예산을 확보하지 못한 채 완료 시점을 미뤘다. 초등학교 돌봄학교 운영은 모든 예산을 지방정부에 미뤄 사실상 지켜지기 어려울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반값 등록금’ 관련 예산도 당초 추정 예산보다 한참 삭감돼 지켜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 국민행복시대는 1%의 행복시대, 99%의 불행시대를 예측하게 되었다.

드러난 갑을 문화 그러나 물 건너간 경제민주화  
 
작년 초에 터진 라면상무, 남양유업 사태 등으로 갑을 문화가 사회적 주목을 받았다. 사회 양극화에 대한 불만의 감수성이 ‘갑-을, 슈퍼 갑’이라 문구를 통해 보편화되었다. 또한 이러한 정서는 이후 ‘직장의 신’이란 드라마까지 탄생시키고 성공을 거두는 효과를 만들었다.

이 드라마의 성공은 한국 사회에 만연해 있는 비정규직이 겪는 차별에 대한 분노와 공감 분위기가 한 몫을 했다. 이런 갑을 관계는 기업 내의 갑을 관계뿐만 아니라 사회 내에서 갑을 문화의 전면화를 보여주었다.

특히 남양유업 사태는 식품업체뿐만 아니라 자동차 대리점, 제과 대리점, 백화점 입점업체 등 업종을 가리지 않고 갑의 횡포가 만연해 있음을 보여주었다. ‘을사조약’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중소자영업자들이 대기업의 횡포에 죽지못해 살고 있다. 이러한 갑을 문화는 한국사회에서 오랫동안 숙원이 된 비정규직 해결과 경제적 민주화가 얼마나 절실한 과제인가를 보여주고 있다.

경제 민주화 역시 2012년 대선을 관통한 주요한 화두였고, 박근혜 후보의 경제민주화 약속이 있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경제민주화를 포기했다. 또 현 정권이 이행한 경제민주화 법안도 최우선순위 7개 중 6개가 약화된 상태로 입법됐으며, 경제민주화라는 단어 자체가 사라지고 경제 활성화에만 집중하는 상태로 전락했다. 결국 구시대를 답습하고 있다.

중도보수진영의 강화  
 
올해 8일에 발표된 한국복지패널 복지인식 조사에 의하면, 2010년과 2013년 상반기 복지인식 부가조사에 모두 참여한 복지패널 597명의 정치 성향 변화를 분석한 결과, 자신을 ‘진보’로 자리매김한 비율이 약 3년 반만에 28.94%에서 24.10%로 5%포인트(p) 가까이 떨어졌다.

정치적 성향을 선택하지 않은 사람의 비중(5.35%→2.93%)도 줄었다. 반면 같은 기간 중도층은 34.05%에서 38.22%로, 보수층은 30.46%에서 34.75%로 각각 늘었다. 응답자를 저소득층(중위소득 60% 미만)과 일반소득층(60% 이상)로 나눠보면 일단 저소득층에서는 진보·보수의 양극화가 두드러졌다. 진보 성향의 비중이 16.17%에서 19.20%로 늘어나는 동시에 보수 역시 37.92%에서 44.39%로 크게 불었다. 대신 중도(35.79%→32.19%)층이 얇아졌다.
 
이런 보수적 분위기는 종편의 영향이 크다. 종편은 대선 기간 동안 영향력을 넓히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당선에 영향력을 발휘했다. 그리고 2013년 동안 국정원 사태, 종북몰이, 대북 경계, 등 박근혜 정부의 홍보부서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종편은 5060세대를 중심으로 한 보수층 정서 결집에 도움을 주고 있다. 또한 대선선거 전과 2013년에 우익집단의 적극적 정치활동이 적극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일베 등의 인테넷 커뮤니티의 활동이 두드러진다.

그리고 박근혜 정부는 이념적 통제화를 위해서 전교조 법외노조화 시도를 했다. 그리고 왜곡된 역사 인식을 가진 교학사 역사 교과서로 이념 통제를 하려 하고 있다. 뉴라이트 성향의 한국현대사학회 출신 역사학자들이 집필한 교학사 한국사교과서가 공식적인 교과서로 선정되었다. 검정심의 전부터 역사 왜곡의 거센 논란에 휘말렸으나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가 무리없이 통과되었다. 이는 정부가 보수적인 역사의식 생산에 전력을 다하고 있는 것을 보여준다.

공공서비스를 둘러싼 투쟁  
 
중도보수 진영이 강화되는 분위기가 있었으나 복지, 경제 등에서 사회적 공공성 지지하는 분위기가 존재함을 보여주었다. 노동자의 투쟁에서 항상적으로 투쟁의 중심에 있었던 비정규직 노동자 사안이 관심에서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 비정규직 사안이 전체적인 사회적 갑을 문화로 흡수되었다. 2013년에 전국적 대중적 관심을 모은 사안은 정부의 공공성 정책과 직접적인 관련을 갖는 사안이었다.

비록 지역별·부분별 사안이나 이런 성격의 사안은 전국적 사회적 사안으로 확대되어 전개되었다. 대표적인 사안이 밀양 송전탑 투쟁과 철도 민영화 저지 투쟁이다. 특히 밀양 송전탑 투쟁은 비록 작은 규모의 투쟁이었지만, 시민사회단체가 어떤 의제를 개발하고, 어떻게 힘을 조직하는가를 보여주는 모범적인 사례이다. 송전탑은 전체 국민의 안전과 관련한 원자력 발전이란 점을 매개시키면서 투쟁을 키웠다.

박근혜 대통령의 이러한 공공성 투쟁뿐만 아니라 모든 민생 문제를 원칙이란 이름으로 불통으로 대응했다. 국정원 사태, 철도 노동자 파업 등에서 보여준 태도는 원칙이란 이름 아래 보여준 일방적인 독주였다. 이런 불통의 정치는 국정 초기임에도 불구하고 대선 기간 동안 박근혜 후보의 정책과 이미지 개선에 도움을 준 주요 지지자들이 등을 돌리게 했다.

민주노총의 기습공격은 노사정에 남아있던 유일한 파트너였던 한국노총조차 등을 돌리게 하여 노사정을 결국 문을 닫게 만들었다. 결국 중간적인 대화 파트너 체계가 없는 일방적 체계를 만들고 말았다.

김애화 (진보정책연구원)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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