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퀘스트=글·사진 김재준(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1월의 겨울 아침 8시경 안개산 위로 부옇게 해가 떴다.

은밀한 햇살, 참 밀양(密陽)스럽게도 떴다.

30분 더 달려서 표충사 주차장이다.

일행 여덟 명은 입장료와 주차요금을 합쳐 비싸게 지불하고 걷는다.

사방에 서리가 하얗게 덮였고 까마귀소리 요란하다.

표충사를 둘러싼 필봉, 주산(主山) 사자봉, 오른쪽으로 수미봉(재약산)과 문수·관음봉 등 여러 산들이 서 있다.

재약산 표충사는 처음에 원효대사가 죽림사(竹林寺)를 세운 천년 넘은 절이다.

그래선지 주변에 대나무가 무성하다.

통도사의 말사. 임진왜란 때 승병(僧兵)을 일으킨 사명대사를 추모하는 표충사당(表忠祠堂)이 있다. 

표충사.
표충사.

“원래 사명대사 제향서원(祭享書院), 절집으로 바뀐 것(祠 → 寺)이다.”

“그럼 서원이잖아?”

“……”

“유교까지 있으니……”

“그래서 불교는 범신교적인 요소가 있어요.”

범종루엔 불전사물 다 걸렸다.

2층에 목어·법고·운판, 1층에 범종.

9시경 내원암 갈림길(사자봉4.3·한계암·금강폭포1.3·진불암2.1내원암0.3표충사0.5킬로미터)이다.

절 뒤로 재약산 능선이 보인다.
절 뒤로 재약산 능선이 보인다.

신라 흥덕왕 아들이 병을 고치기 위해 명산약수를 찾아다니다 이곳에서 낫자 산 이름을 재약산(載藥山), 한때 절 이름도 영정사(靈井寺)로 불렸다.

절 입구에 철마다 말린 것, 갓 뜯어온 기화이초 산약초를 파는 노점들이 즐비한 이유가 있다. 

“이산에 자라는 풀은 모두가 약초다.”

“……”

“흐르는 물도 약수다.”

“궁합이 잘 맞는군.”

“……”

어느새 금강폭포, 한계암 따라 왼쪽으로 오른다.

계곡의 바위마다 가뭄에도 골이 깊어 물이 넉넉하니 명경지수(明鏡止水)다.

암자로 오르는 돌계단, 섬돌에 상수리 나뭇잎은 양탄자처럼 깔렸다.

큰 바위는 절경인데 금강동(金剛洞)이라 하얗게 새겼다.

재약산 북쪽의 금강동천(金剛洞天), 금강폭포다. 

가을이 깊어가는 계곡.
가을이 깊어가는 계곡.

동천은 하늘마을, 별유동천(別有洞天)이다.

별천지, 낙원(paradise)을 뜻한다.

전국에 수많은 동천이 있다.

수락동천, 화개동천, 외암동천, 함허동천, 화양동천, 우복동천…….

나도 작은 터를 잡았는데 관람동천(觀嵐洞天)이라 작명했으니 도가(道家)의 반열에 들 수 있을는지?

물을 안고 도는 바위, 바위를 씻으며 티끌 안고 가는 물, 바위가 주인인지 물이 주인인지 모르겠다.

한(寒),계(溪),암(庵). 이름대로 찬물암자다.

여름철이 금상첨화 아니던가?

물길은 잠시 흘러 수구(水口)를 만들었다.

찬물계곡 명당 터, 사자봉까지 1시간 40여분 올라가야 한다.

암자의 사립문이 잠겨 지나친다.

몇 해 전, 차 한 잔 권하던 보살님의 기억이 새롭다.

장작불 지핀 솥에 물이 끓고 흙벽에 커다란 벌집이 달려 있었다.

9시 반경 바위절벽을 바라보며 잠시 쉬기로 했다.

상수리·굴참나무 군락지 바람 한 점 없는 겨울날. 어느덧 10시 너덜지대다.

산꼭대기로 보이는 하늘은 더욱 파랗다.

20분 더 올라 조릿대 길. 겨울인데도 땀을 뻘뻘 흘리며 한발 한발 내딛는다.

턱턱 막히는 가슴, 마치 피라미드 꼭대기로 오르는 듯.

10시반경 소나무 두 그루 밑에서 잠시 숨 돌리고 곧장 철쭉, 진달래 군락지에 닿는다.

멀리 영남알프스 연봉이 장관이다.
멀리 영남알프스 연봉이 장관이다.

11시 5분 드디어 재약산(載藥山) 사자봉 정상(1,189미터), 일제강점기 천황을 상징하는 천황산(天皇山)이라는 논란이 있어 지금은 사자봉(獅子峰)으로 아울러 부른다.

밀양의 주산(主山), 단장 · 산내면, 울주군 상북면 경계, 영남알프스의 중앙인 이곳에 서면 긴 산줄기와 사자평 억새밭이 한눈에 들어온다.

낙동정맥 가지·능동·간월산의 서쪽이다.

사자머리 같이 생겨 사자봉, 남쪽에 보이는 재약산과 쌍둥이 봉우리다.

저 멀리 구만산·북암산·억산·운문산· 가지산·고헌산·능동산·간월산·신불산·영축산·천태산·만어산…….

영남 산군(山群)이라 불릴 만하고 신령스런 영산(靈山)이다.

사자봉 정상석.
사자봉 정상석.
재약산 정상석.
재약산 정상석.

겨울인데 날씨는 왜 이리 더운지 땀이 줄줄 흐른다.

사자봉과 수미봉(재약산) 사이 천황재에 이르니 광활한 억새평원이 펼쳐져 있다.

억새바다, 햇살에 찰랑찰랑 흔들리는 억새들의 물결이다.

고사리분교터 근처에 사자평원, 산들늪이라 하는데, 습지·늪에 살던 식물이 쌓인 이탄층(泥炭層) 평원은 국내 최대 규모 고산습지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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