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퀘스트=글·사진 김재준(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어느 해 5월 능동산에서 올라 주암계곡으로 하산한 적 있었다.

울산 학생교육원에서 2시간 정도면 능동산 정상(983미터)에 닿고, 계곡을 거쳐 원점으로 돌아오는데 6시간 반 가량 걸렸다.

계곡 서쪽에 배가 떠내려 와 멈춘 것 같은 주암(舟巖)이 솟아 있다.

여름날 탁족(濯足) 피서지로 그만이다.

5~6월 물이 철철 넘쳐흐르는 계곡의 바위주변으로 산목련 하얀 꽃봉오리를 볼 수 있다. 

능동산은 영남알프스 중심으로 요충지다.

북쪽은 가지산·문복산, 북서쪽의 운문산·억산·구만산, 북동쪽 고헌산, 간월산·신불산·영축산이 남쪽, 재약산 사자봉·수미봉이 남서쪽에 있다.

가지산에서 낙동정맥을 받아 간월산·영축산으로 맥(脈)을 이어주는 분수령, 산의 형상이 큰 언덕이나 왕릉처럼 보여 능동산(陵洞山)이 됐다.

능동산에서 평원 길을 걸어 얼음골 케이블카 승차장을 지나면서부터 군데군데 음산한 구간이 펼쳐진다.

셜록홈즈의 추리소설 바스커빌의 개(The Hound of the Baskervilles)에 나오는 무대 같은 곳이다.

서스펜스와 공포로 음침한 안개 낀 황야, 헤쳐 나올 수 없는 위험한 늪, 여인의 흐느끼는 소리, 여기저기 폐허의 흔적들, 어느 종교의 성지 범골, 뼈대만 남은 흐트러진 건축물 잔해, 어설픈 미역줄나무 숲의 미로(迷路), 소름끼치는 분위기다.

명문가 바스커빌 집안 전설에 의하면 새 주인은 지옥에서 오는 개에 죽는다.

아무도 인정하려 들지 않지만 이미 늪지에서 미심쩍게 심장마비로 죽고, 뒤이어 가문의 유언과 황무지를 떠도는 불을 뿜는 개의 존재를 둘러싼 살인사건을 셜록홈즈가 해결한다. 

소설의 줄거리다. 어쨌든 능동산은 수동적으로 끌려 다니다간 다른 산보다 기대 못 미쳐 평가절하 될 수 있으니 능동적인 생각으로 산행을 해야 그나마 위안이 된다.

영남알프스 가운데 오르기 제일 쉽다.

11시 50분 천황재, 주암계곡 갈림길(수미봉0.2·사자봉1.9·고사리분교1.4킬로미터) 두고 곧바로 재약산 수미봉(1,119미터), 정오다.

이곳에서 점심 도시락을 먹기로 했지만 다른 구간으로 올라오는 일행들과 연락하니 아직도 고사리분교터 근처라고 한다.

우리 팀은 멀고 힘든 구간을 올라왔는데도 저렇게 늦을 수 있나. 하는 수 없이 자리를 폈다.

능동산.

“재약산은 영남알프스의 위치에서 한자 아래 하(下) 거꾸로 점 있는 곳입니다.”

“무슨 뜻이죠?”

“…….”

“운문산, 가지산, 고헌산이 윗부분, 내려오면서 간월산, 신불산, 영축산, 왼쪽으로 뻗친 것이 재약산.”

“신라 화랑들과 조선시대 승병들이 수련한 장소로 사자평(獅子坪) 일대에 소나무 숲이 빼곡했으나, 일제강점기 때 스키장을 만든다며 무차별 벌목해버렸다고 합니다.”

“나쁜 짓은 다 했네요.”

“…….”

동쪽에는 은빛물결 일렁이는 억새의 본향 사자평 억새밭, 6·25전쟁을 피해 피란 온 화전민들이 잡목과 억새를 태워 개간하며 살던 곳.

엄동설한 겨울엔 백설의 천지로 유명하다.

북쪽으로 능동산 방향 밀양 얼음골은 피서객들이 많이 오는 곳이다.

서쪽의 금강동천과 금강폭포, 남쪽 옥류동천 계곡의 층층폭포, 흑룡폭포 등 기암괴석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절경이다. 

수미봉.
수미봉.

오후 1시 40분, 고사리분교 쪽에서 올라온 일행들을 만나 수미봉에서 다 같이 사진 찍는다.

2시경 모두 진불암 방향으로 내려선다.

10분쯤 지나 갈림길에서 바라보는 경치는 빼어났다.

발밑으로 비틀린 나무와 기암절벽, 멀리 첩첩 산들과 맞닿은 하늘, 구름…….

2시 20분 또 갈림길(진불암0.1·표충사2킬로미터), 진불암 지나 바위에 앉아 나무들을 바라본다.

가을철 진불암으로 내려가는 구간은 그야말로 단풍이 단연 절색이다. 

참나무와 소나무의 경계가 확연하게 나타난다. 

“잠깐 여러분, 소나무가 올라왔을까? 참나무가 내려왔을까요?”

“…….”

“참나무가 위로 올라가며 공격하는 중입니다.”

참나무.
참나무.

소나무와 참나무는 매일 생존경쟁을 벌이고 있다.

소나무는 바위가 있는 높은 곳으로 밀려나고 참나무는 위로 가는 중이다.

햇빛을 좋아하는 소나무에 비해 참나무는 자라는 속도가 빠르고 그늘에 가려 자라지만 나중에는 더 빨리 커서 다른 나무들을 몰아낸다.

산성 땅의 소나무 대신 참나무 숲은 알칼리성 토양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소나무는 더 밀려날 것이다. 

황무지에 이끼류가 나타났다.

풀과 억새의 초원, 키 작은 나무, 소나무 양수림을 지나 참나무가 섞인 혼효림, 마지막에 참나무 음수림으로 바뀌는 것을 천이(遷移. succession), 더 이상 변하지 않는 고정된 생물군집을 극상(極相 climax)이라 불린다. 

오후 3시경 굴참나무 수형목(秀型木)지대, 수형목은 형질이 뛰어난 나무다.  

자람이 좋고 줄기가 곧으며 가지가 적을 뿐 아니라 병해충 피해도 받지 않은 우수한 것이다.

산림품종관리센터의 채종림 지역이다.

굴참·사람주·당단풍·쪽동백나무들과 헤어져 내려간다.

뒤에 처진 일행들은 또 보이지 않는다. 

“…….”

“앞으로 산악회이름 바꿔야 해.”

“희매가리 산악회로…….”

“…….”

“느려 터져도 산으로 가야돼. 산의 정기는 배터리를 충전시켜 준다고. 말없는 산이지만 산의 침묵은 위대한 언어입니다. 산에 오르며 묵언을 잘 들어봐. 외롭고 우울할 때 삶이 힘들어 지쳤을 때 산으로 가자 이겁니다.”

“…….”

오후 3시 30분 뒤에 오는 사람들 기다릴 겸 냉이를 캐다 3시 50분 원점으로 돌아왔다.

빤히 보이는 사자봉과 헤어져 배낭속의 쓰레기를 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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