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퀘스트=글·사진 김재준(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춘천에서 이틀 밤 잤다.

게스트하우스 2층 로비에서 빵과 삶은 달걀을 가져왔다. 라면, 햇반을 곁들인 식사. 

폭염의 휴가철 8월 5일 월요일 아침 7시 출발해서 경춘 국도를 달린다.

강촌, 가평, 청평을 지나 거의 1시간 달려 운악산 주차장이다. 

강 건너 물안개 피어서 37도의 더위 속에 그나마 서늘함을 느낄 수 있다.

매표소에 포천과 가평의 경치를 물었더니 가평으로 오르는 운악산이 볼거리가 많다고 일러준다.

곧장 삼충신 추모비, 일제 침략에 순국한 조병세, 민영환, 최익현 세 분을 기리는 삼충단이다.

현등사 일주문 올라가는 길은 소나무림인데 주변 풍광이 예사롭지 않아 이쪽으로 잘 왔다는 생각이 든다.

운악산 입구.
운악산 입구.
조종천.
조종천.

8시 35분, 바람 한 점 없는 시멘트길 일주문에서 현등사 본당까지 거리가 되게 멀다.

오르막길 땀 뻘뻘 흘리며 오른쪽 등산길(현등사1.3·정상2.9킬로미터) 접어든다.

바로가면 사찰인데 내려오면서 들르기로 했다.

긴 나무계단 길 신갈·철쭉·진달래·개옻·팥배·싸리·쪽동백·노간주·당단풍·물푸레·소나무…….

산길에 무더기 떨어진 신갈나무 이파리는 아마도 도토리거위벌레 짓일 게다.

도토리에 알을 낳곤 열매와 잎이 달린 가지를 잘라 떨어뜨리면 부화된 어린벌레가 땅속으로 들어가 겨울을 난다.

열매를 솎아줘 해거리에 도움되기도 한다. 

쉰 살 나이 소나무와 신갈나무가 적당히 섞인 혼효림 산길 그늘이 반이다.

산 중턱엔 절집이 보이고 산 아래 물안개 드리운 역광이 만든 경치가 자못 엄전(嚴全)하다.

화강암 마사토 지대에 다다른 건 9시경.

밧줄을 잡고 너럭바위 오르는데 발밑으로 땀 뚝뚝 떨어진다.

5분가량 지나 눈썹바위, “목욕하던 선녀의 치마를 훔쳤으나 덜컥 내주던 총각이 기다리다 바위가 되었다나.”

어차피 이야기니까 안내판에 대고 뭐랄 수도 없고……. 

현등사 입구.
현등사 입구.
눈썹바위
눈썹바위

바위의 쇠줄을 잡고 왼쪽으로 조심조심 발을 딛는다.

생강·누리장·광대싸리·국수나무, 너덜지대 지나 다시 밧줄구간. 9시 15분 말안장 지대 안부(鞍部)에 잠시 쉰다.

이 높은 곳에 굴참나무 두 그루 자란다(운악산정상1.5·하판리안내소1.8킬로미터).

옷은 벌써 땀에 흠뻑 젖었고 물 몇 잔 마시는데 파리·개미·모기·날파리들 왱왱거려 오래 머물지 못하겠다. 

구름위로 솟은 바위봉우리를 머릿속에 그리며 쇠줄을 잡고 오른다.

정상까지 아직 남은거리 1.5킬로미터, 9시 30분 쉬기 좋은 장소다.

아늑해서 불현듯 눕고 싶은 생각이 드는데 묏자리로 딱 좋겠다.

회양목·신갈·철쭉·진달래·소나무.

가쁜 숨을 몰아쉬며 서울의 도봉산 같은 바위산 다시 오른다.

이름값 하는 산. 흙 한줌 없는 바위에 뿌리를 박고 사는 거룩한 소나무에 예를 올리고 지난다. 

15분 더 올라 낙락장송(落落長松) 바위에 앉아 땀을 닦는다.

여름날 이만한 쉼터가 어디 있겠는가?

멀리 펼쳐진 산하, 상쾌한 바람과 흘러가는 강물, 파란 하늘 흰 구름, 산천이 서로 엉켜 있으니 온갖 나무들 더욱 푸르다.

잔을 들고 세상을 내려다보며 노랫가락 한 번 읊조리니 부러울 것 없다.

일세의 호걸들은 모두 어디로 갔나.

오늘 이런 호사를 누리는데 어떻게 호탕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껄껄껄 너털웃음 한 번 날려본다. 

“바람이 물소린가 물소리 바람인가, 석벽에 걸인 노송 움츠리고 춤을 추네. 백운이 허위적 거리고 창천에서 내리더라. / 금수강산 자리를 펴고 백두산 베고 누웠으니, 봉래산 제일봉에 일월성신이 춤을 춘다, 하해가 술이라면 세상은 모두 다 안주로다.”

감상(感想)에 젖었다 일어서 또 바위산 오르며 머리 들어 하늘 올려다보니 우리도 모르게 와~ 감탄사 저절로 나온다.

10시 넘어 미륵바위가 보이는 곳.

가운데 우뚝 선 미륵, 오른쪽 봉우리는 칼을 세운 듯.

“왼쪽은 치맛자락 같다.”

“아니, 선녀 치마다.”

“……”

“보살님이 왜 이산에서 바위가 됐지?”

“……”

“부처를 기다리다 바위가 됐나봐. 눈썹바위처럼……”

“말세가 되면 마법 풀리듯 바위에서 깨어날 거야.”

“……”

까르륵 거리며 산위로 까마귀 날고 쌕쌕이는 파란하늘에 하얀 선을 그려놓고 지나간다.

병풍바위, 사방으로 병풍처럼 둘러친 바위들이 많지만 어쨌든 미륵바위가 이산의 백미(白眉)다. 

조금 전부터 울던 까마귀는 이제 “악악악” 하고 운다.

“왜 저렇게 악을 쓰며 울지?”

“……”

“운악산 이라 악악악 운다.”

“하하하 그렇군.”

“……”

쇠줄 단단히 잡고 바위를 기어올라 10시 15분 드디어 미륵을 마주한다.

높이150미터쯤 되겠다.

미륵은 다음 세상에 나타나 중생을 구제하는 보살이다.

모태어(母胎語) 미르는 고유한 우리말 용(龍), 러시아어 평화(Mir)를 의미한다.

전통적으로 하층민을 대변하는 절대자가 미륵불이었다.

말세에 구세주인 미륵이 세상에 오면 착취에서 벗어난 낙원(paradise)이 도래할 것으로 믿었다.

이에 편승한 민중지도자들은 굴곡의 전환기마다 자신이 미륵의 화신이라는 것.

산중 미륵절집들은 혁명을 표방한 민중항쟁(resistance)의 거점이 되기도 했다.

미륵바위.
미륵바위.

미륵바위에는 소나무와 하늘과 구름에 어우러져 운악(雲岳)을 만들었다.

바위, 구름, 하늘, 소나무와 어울리니 절경이 됐다.

나도 자연과 있으니 풍류가객이 된다.

그러기에 홀로 아름다울 수 없다.

모처럼 오늘은 산 한 개 찾았다.

입구에선 우습게 봤는데 들어올수록 깊고 높은 산.

구름이 산을 감돌아 신비감마저 느껴진다.

바위와 소나무가 어우러진 풍경, 오늘은 수묵화가 아니라 병풍을 둘러친 채색화다. 

바위소나무.
바위소나무.
병풍바위.
병풍바위.

 

 

저작권자 © 뉴스퀘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