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룡능선.
청룡능선.
백호능선.
백호능선.

【뉴스퀘스트=글·사진 김재준(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숲 그늘 걷는데 살랑살랑 바람이 불어온다. 매미소리 맴맴맴, 풀벌레소리도 치르르르 윙윙 운다.

국수·철쭉·잣·당단풍·신갈·개옻·소나무, 쪽동백나무는 유난히 나무껍질이 검다.

잠깐 사이 작은 능선(하판리 안내소2.8킬로미터)에 닿고 옷이 젖어도 아랑곳없이 바위를 기어 숨이 차도록 오르는데 모처럼 보는 야생화 구릿대는 하얀 꽃을 피웠다.

위험한 구간에 말발굽모양 쇠는 정말 잘 박아 놨지만 미끄러우니 조심해야 한다.

헛디뎌 떨어지면 그대로 저승 가는 아찔한 바위산이다.

말 떨어지기 무섭게 10시 반 애석한 진혼비를 지나고 이제부턴 철제계단이다.

이 험준한 구간을 어떻게 개척했을까?

위를 보니 구름하늘로 오르는 것 같고 아래는 그야말로 바위절벽 낭떠러지다.

햇볕 후끈 달은 바위에 노란 양지꽃이 피었다.

10시 40분 만경대, 멀리 구름과 안개서려 흐릿하다.

정오방향 연인산, 왼쪽으로 화악·명지산, 오른쪽 칼봉·매봉·깃대봉, 대금산, 왼쪽 계곡길이 일동방향이다.

만경대 노송아래 바위는 쉬기 좋은데 그냥 가자고 재촉한다.

바위 아래 260미터 표시는 잘못된 것 같다.

아마도 2.6킬로미터는 족히 될 것이다.  

오르막길.
오르막길.

운악산은 쉽게 오르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10시 50분 937미터 정상(왼쪽 청룡능선 하판리안내소3·망경대0.1, 오른쪽 백호능선 하판리안내소3.3·절고개0.6, 현등사1.6킬로미터), 경기 가평군 조종면과 포천시 화현면의 경계를 이루며 남북으로 솟아 가평은 비로봉, 포천에선 동봉이다. 

운악산 정상.
운악산 정상.

산은 하나인데 경쟁하듯 표지석은 두 개다.

통일되게 한 개만 세웠으면 얼마나 보기 좋았을까?

산 아래 현등사가 있어 현등산으로 부르기도 한다.

저 너머 명성산, 북한산, 도봉산이 멀고 우리가 올라온 청룡능선 햇살에 신기루 같은 아지랑이 피어오른다.

11시경 정상아래 그늘에 앉아 엊저녁 춘천에서 사온 자두, 복숭아로 피로를 달랜다.

여기서 보니 기암괴석 봉우리가 구름을 뚫고 솟아 붙여진 산 이름이 실감난다.

현등사를 중심으로 왼쪽이 좌청룡 청룡능선, 오른쪽이 우백호인 백호능선이다.

백호능선으로 내려가면서 잠깐사이 포천시 하현리 대원사 갈림길(하판리3.1·현등사1.4·정상0.1킬로미터).

가평군 비로봉.
가평군 비로봉.
포천시 동봉.
포천시 동봉.

이곳 한북정맥(漢北正脈)은 백두대간 추가령에서 갈라져 남쪽으로 한강과 임진강에 이르는 산줄기의 옛 이름이다.

강원·함남의 도계를 이루는 평강군 추가령(楸哥嶺)에서 서남으로 뻗은 산줄기 294킬로미터 정도.

동쪽으로 회양·화천·가평·남양주 등 한강, 서쪽으로 평강·철원·포천·양주 등 임진강 유역.

남한에는 백운산, 운악산, 도봉산, 삼각산, 파주 교하 장명산까지 이어진다.

바위를 파서 만든 돌계단.
바위를 파서 만든 돌계단.

11시 20분 소나무 데크에서 남근석이라는 바위를 바라보다 신갈·싸리·철쭉·진달래·당단풍·물푸레·소나무, 둥굴레·사초, 능선 따라 신갈나무 숲길 정렬하듯 섰다.

멀리 포천 시가지, 북쪽으로 일동 시내 들판 조망이 시원스럽다.

포천 쪽 무지개폭포는 궁예가 피신하여 흐르는 물에 상처를 씻었다는 전설이 있다.

11시 반, 절 고개인데 바로가면 백호능선 방향(아기봉2.7·산달랭이5.8·상면봉수리3.8킬로미터), 우리는 왼쪽(현등사1·하판리2.7킬로미터)으로 내려선다.

운악산 산행은 조종면 운악리 현등사, 포천 운주사에서 오르는 구간이 있으나 현등사 쪽으로 많이 오른다.

이산의 즐거움은 미륵바위를 우러러 보는 것과 낙락장송 바위에 앉아 세상을 굽어보는 것이 최고다.

화악·관악·감악·송악에 운악을 더해 경기오악으로 불리니 우뚝 솟은 골산(骨山) 운악산이 경기의 금강으로 불리는 까닭을 알 것 같다. 

내려가는 길, 돌과 자갈이 깔린 석력지(石礫地) 근처에 고로쇠·산겨릅·물푸레·당단풍·신갈·고추나무.

회나무는 공처럼 생긴 푸른 열매를 대롱대롱 달았다.

층층·박달나무에 서서 한참 나뭇잎을 바라보다 어느덧 코끼리 바위.

이 산에 물이 귀한데 정오에 절고개 폭포를 만난다.

정오 무렵 현등사(하판리안내소1.8킬로미터), 등을 매단 절, 신라 법흥왕 때 창건, 고려 보조국사가 등불을 따라가서 중창한 사찰로 적멸보궁, 함허대사부도, 경기3대 기도성지로 이름났다. 

적멸보궁으로 오르는 길, 바위를 파서 돌계단을 만들었다.

만들었다기보다  디딤돌처럼 아로새겼다.

웅장한 건축물보다 훨씬 정겨운 맛이 난다.

섬돌에 앉아서 굽어보니 만고풍상 다 겪은 고송(古松)은 절집의 추녀를 가렸고 이따금 들리는 목탁소리가 산중의 적막을 깨뜨린다.

맞은편 산에 구름이 한가롭게 둥실 떴는데 한가롭지 못한 나는 세속을 떠날 수 없으니 제 몸 겨우 가누면서 휘어지도록 열매를 잔뜩 매단 쪽동백나무 꼭 내 짝 났다. 

포탄 맞은 것 같이 소나무에 구멍이 뚫렸는데 까막딱따구리 서식지다. 옛날엔 오탁목(烏啄木)이라 불렀다.

까마귀, 크낙새와 비슷한데 몸이 검다.

수컷은 머리와 목 뒤가 붉고 암컷은 목뒤만 붉은색.

중부 이북의 깊은 산중에 사는 천연기념물로 지금은 희귀한 텃새가 됐다.

12시 30분 민영환 암각서를 지나 바위 물 떨어지듯 좀작살나무 열매도 뚝뚝 듣는 듯하다.

계곡에 잠시 발을 담그고 요란한 물소리 한결 상쾌하니 여름산행은 이런 맛에 즐거울 수밖에…….

물보라가 안개처럼 보인다는 무우폭포(舞雩瀑布)를 뒤로하고 오후 1시경 계곡하류에는 더위를 피한 사람들 소리가 물소리에 섞여 요란하다.

곧바로 왼쪽으로 눈썹바위 갈림길 여기서 정상까지 2.6킬로미터 거리다.

한북제일극락도량 일주문 지나서 주차장 지붕으로 사용하는 태양광발전시설까지 오는데 땡볕을 15분가량 걸었다.

잠시 도토리묵밥집 들렀다가 산행을 마무리했다.

한여름의 세레나데(Serenade), 먼 훗날 애틋한 추억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으리.

저작권자 © 뉴스퀘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