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목련.
산목련.
산철쭉.
산철쭉.
마장재.
마장재.
우두산.
우두산.

【뉴스퀘스트=글·사진 김재준(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수줍은 꽃을 보려 숨 가쁘게 올라왔다.

외딴 산 속, 눈앞에 백옥이다.

예닐곱 개 꽃잎 안에 자주색 꽃술을 달고 수줍은 듯 고개 숙인 봉오리, 넓은 잎에 가려져 있는데 선녀화(仙女花)·천녀화(天女花)다.

아름다우면 시샘한다더니 순백색 봉오리 파 먹힌 꽃잎들이 떨어져 있다.

이토록 처절하게 당했을까?

겁탈이다.

봉오리마다 구멍이 뚫려 있는데 하얀 잎 젖혀보니 연녹색 벌레가 꽃술을 파먹는다.

나뭇가지로 툭 털어도 오히려 실을 토해 매달린다.

나비목 애벌레들.

산목력은 목련 과(科) 넓은잎나무로 개목련·목란(木蘭)·함박꽃나무라고 한다.

그늘진 산골짜기에 잘 자란다.

이른 봄에 피는 목련에 비해 5~6월에 자주색 수술을 달고 아래를 향해 핀다.

가을 무렵 울룩불룩한 타원형 열매가 검붉게 익고 가지는 쉽게 꺾인다.

꽃봉오리를 신이(辛夷)라 하는데 술독·혈압·비염·기침·가래·생리통에 달여 마시면 좋다.

절개를 지키는 나무로 옮겨 심으면 죽는다.

북한에서는 1991년 진달래에서 나라꽃으로 바꿨다.

이 나무를 보면 참 많은 것을 생각나게 하는데 향이 짙어 발길을 옮기기 어렵다. 

의상봉 정상석.
의상봉 정상석.
의상봉.
의상봉.

우두산 능선 안부(鞍部)에서 만나기로 했지만 한 사람 보이지 않는다.

먼저 장군봉으로 갔다고 한다.

대뜸 전화를 걸자 벌써 의상봉이라는 것.

단체산행에서 절대 개인행동 하지 말라고 일렀다.

하여튼 나무계단 지점에서 다시 만나 의상봉 정상(1038미터)에 올라서니 가야산, 덕유산, 지리산, 장군봉, 비계산, 미녀봉이 한 눈에 들어온다.

표지석 옆 바위에서 한 숨 돌리며 우리가 가야할 동쪽 마장재 능선을 가리켰다.

다시 계단을 내려서면서 능선 따라 걷는 길, 참나무 숲이 시원해서 상봉 가는 길은 다소 가파르지만 힘이 덜 든다.

의상봉에서 동북쪽으로 20분 정도 지나 상봉이다.

우두산은 가조와 가북면에 걸쳐 정상이 소머리를 닮았다.

상봉이 주봉(1046미터), 별유산(別有山)이라고도 한다.

기념사진 찍고 멀리 가야산을 바라보니 하늘은 옅은 안개처럼 부옇다.

상봉과 마장재 구간의 암릉과 기암괴석은 좋지만 벌써 산철쭉이 다 지고 말았다.

이맘때 비계산 갈림길 마장재 일대의 철쭉이 장관인데 길옆에 몇 송이 뿐…….

“섭섭하다고 몇 개 남겼다.”

“……”

따라 오던 친구 뒤로 저 멀리 바위산이 안타까움을 대신해 준다.

산철쭉은 진달래과로 척촉(躑躅 머뭇거림), 수달래, 개꽃으로 불리고 꿀을 빨려고 달려든 벌들은 금방 죽었다 깨거나 양들이 먹으면 머뭇거리거나 비틀거린다는 것이 척촉이다.

붉은색 꽃에는 검은 반점이 있고 5월에 꽃이 피는데 독성이 있다.

올해는 4~5월부터 더웠으니 일찍 피고만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일행 중 4명만 완주하고 다른 이들은 지름길로 내려와 이미 계곡입구에서 자리를 펴 놓고 있다.

무작정 앞사람 보고 따라 걷다 상봉에서 바로 내려왔다는 것이다. 

 

 날마다 유혹하는 미녀봉

일요일 아침 7시 30분 석강리 농공단지에 관광버스가 와서 여성들을 내려놓는다.

여기는 유명한 식품공장이다.

쉬지 못하고 일하러 오는 사람들에 비하면 공사 때문에 진입로를 못 찾는다고 투덜댈 일은 아니지….

청개구리.
청개구리.

집에서 6시 반에 출발해서 일찍 산 밑에 도착했지만 30분 동안 마을을 헤맸다.

거창 가조 음기마을을 들머리로 산행시작, 아직 안개가 덜 걷힌 들판을 오르고 있다.

달맞이꽃, 닭의장풀, 개망초… 온갖 풀들이 제철을 만나 저마다 기세를 뽐낸다.

사진기를 들고 멀리 보이는 안개 산을 연신 눌러댔다.

산에 걸린 구름과 안개들, 산행하기 딱 좋지만 너무 가려져 있으니 아쉽기도 하고, 렌즈를 닫으려는데 마침 귀여운 청개구리가 달맞이 잎에 앉아있다.

앙증맞은 손이며 발가락 같이 생긴 물갈퀴, 셔터를 몇 번 더 눌렀다.

음기마을 입구에서 상수리나무 고목까지 거의 40분 정도 걸어 올라왔다.

농공단지 뒤편 소나무 숲길로 오르지 못한 것이 아쉬웠지만 내려갈 때를 기약하고 한 숨 돌리는데 시원한 샘물이 일행을 반겨준다.

길섶의 산수국이 옹기종기 피었고 물맛은 최고다.

이름하여 유방샘이라, 단숨에 벌컥 마시고 빈병에도 가득 채워 둘러가는 길이지만 머리바위 쪽으로 오른다. 

유방샘.
유방샘.

까마득한 산꼭대기 한 줄기 구름이 흘러간다.

하늘너머 가는 길, 우리는 선남선녀 되어 구름 속에 있으니 여기가 도솔천 아니고 무엇이랴?

하루가 인간세상 4백수이니 발아래는 벌써 20년은 흘렀으리라.

깎아지른 비탈길 오르니 땀이 줄줄 흐른다.

닦아도 다시 흐르는 땀, 오도산 자연휴양림 갈림길이 나타나자 다소 완만한 능선길인 듯싶더니 어느덧 바위산이다.

머리바위, 눈썹바위, 코바위, 입바위를 지나 가파른 계단 밟으며 유방봉에 올랐다.

봉긋한 젖무덤의 에로틱한 상상을 빼앗으며 앙칼진 돌부리가 허벅지를 찌른다.

하마터면 다칠 뻔 했다.

바위에 오르니 마치 유두마냥 볼록한 바위가 인상적이다.

저 멀리 산 아래 보이는 집들과 들판, 길, 나무 구름들…

모든 것은 저마다 제자리에서 정겨운 풍경을 만들어 주고 있다.

동서를 가로지르는 고속도로를 따라가는 장난감 같은 차량들 주변으로 둥그렇게 서있는 우두산, 비계산, 보해산…….

커다란 병풍을 만들었다.

유방봉 너머 가조분지.
유방봉 너머 가조분지.

음기마을에서 헬기장 나무그늘을 지나 전망 좋은 봉우리(805봉)까지 2시간 넘게 걸렸다.

오른쪽으로 걸으면 미녀봉 정상이요 왼쪽으로 내려서면 다시 유방샘 1.5킬로미터, 잠시 짐을 내려놓고 물을 마신다.

배꼽부위를 밟으면서 걸으니 왠지 발걸음 조심스러워지는데,

“……”

“미녀봉에 미녀가 오니까 힘이 넘친다.”

“……”

“김 선생이다.”

“글쎄?” 

문재산 미녀봉.
문재산 미녀봉.

미녀봉에 오르려니 나는 더 힘이 들고 능선길 따라 신갈나무, 다릅나무, 생강나무, 미역줄나무는 하얗게 꽃을 피우고 있다.

저 멀리 터미네이터 같은 철 구조물 보이는 곳이 오도산 정상.

10분 정도 걸으니 문제 있는 문재산이다.

미녀를 만나러 왔건만 미녀봉의 거룩한 방명(芳名)은 괄호 속에 있고 해발 933미터 문재산이다.

미녀봉의 기대와 명성에 비하면 정상의 표지는 용렬(庸劣)한 수준이다.

그렇지만 오도재, 오도산의 큼직하고 굵은 이정표를 위안 삼아 사진 한 번 찍고 곧장 돌아서 내려간다. 

산 아래 마음씨 고운 처녀가 살고 있었는데 오랫동안 병석에 누운 어머니에게 정성을 다해 보살폈지만 좀처럼 낫지 않았다.

가난해서 약은 쓸 수도 없는 처지였기에 아침저녁으로 산신에게 치성을 올리며 완쾌를 빌었다.

어느날 어떤 노파가 이르기를 뒷산에 신기한 약초가 있는데 달여 먹이면 병을 고칠 수 있지만 한 번 갔던 사람은 살아오지 못한다고 했다.

그러나 처녀는 위험을 무릅쓰고 산으로 올라갔다.

온 산을 뒤진 끝에 처녀의 눈에 약초가 보였고 약초를 캐는 순간 구렁이에게 물려죽고 말았다. 

효심에 감동한 산신이 죽은 처녀의 형상을 본떠 산을 만들었다.

잉태한 모습이라는데 유방샘 근처 수국이 석녀(石女)의 꽃이고 보면 두 손을 나란히 배에 포개고 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내려가면서 왼쪽 계곡은 오도산 자연휴양림이요 오른쪽은 비계산 자락이 훤히 보인다.

갈림길 있는 지점에 중년의 내외가 먼저 와 쉬고 있다. 

“안녕하세요?”

“……”

“감사합니다.”

금방 자리를 비켜준다. 그들은 오도재 방향으로 간다고 했다. 

손목시계는 10시 40분, 우리는 산 아래 세상을 보면서 도시락을 먹는다.

새벽 6시 반에 출발했으니 아침식사라 해야 맞겠다. 

개다래.
개다래.

3~40분 곧장 가는 길이 유방샘인데 내리막길 한참 지나니 왼쪽에 있는 하얀 꽃무더기를 보라고 손짓한다.

이파리에 흰색 라커를 뿌린 듯 선명하다.

빛이 반사돼서 그럴까?

궁금해서 못 견디겠는데 친구는 길이 험하다며 붙잡지만 나의 호기심은 이길 수 없었다.

돌무더기를 지나 가까이서 살펴보니 그야말로 흰 빛.

세 개의 열매를 달고 마른등걸을 감싸고 올라간 이파리…….

“무슨 꽃이야?”

“개다래다.”

“이게 뭐 다래야?”

“다래 맞다.”

이파리 흰 것에 대한 설명은 그만두기로 했다. 

개다래는 우리나라의 깊은 산속 나무 밑이나 계곡에서 자란다.

키는 5~6미터로 잔가지에는 어릴 때 연한 갈색 털이 나는데 어긋나는 잎은 넓은 달걀 모양으로 끝이 점점 뾰족해진다.

6~7월에 흰 꽃이 피고 누런 열매는 먹을 수 있으나 혓바닥이 아리다.

벌레가 붙어 이상한 모양으로 달린 충영(蟲廮)을 목천료(木天蓼)라 하는데 약으로 쓴다.

개 이름이 붙으면 본래 보다 못하다는 의미지만 개다래는 신장에 명약이라고 한다.

동물들이 먹으면 흥분작용을 일으켜 즐거워하고 “우는 아기는 젖, 고양이는 목천료” 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고양이 과(科) 뿐 아니라 여우, 개, 토끼에게도 치료약으로 썼다고 알려져 있다.

통풍에 열매나 충영이 혈액 속의 요산수치를 낮출 수 있다.

잎은 나물로 수액은 천연음료, 열매는 입맛을 돋우고 뿌리는 항암제로 쓴다.

최저 혈압이 높은 것은 체내 단백질이 내려가지 않더라도 신장기능이 나빠졌다는 것.

개다래에 감초를 매일 달여 먹으면 혈압이 내려간다고 한다.

인공음료를  줄이는 이유가 신장기능 유지와 상관성이 있다는 것은 틀린 말이 아니다.

다래와 쥐다래는 골속이 갈색이고 개다래는 흰빛이다.

골속을 수(髓)라고 하는데 동물로 치면 골수를 의미한다.

영양결핍으로 기온이 안 맞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꽃이 작고 향기도 진하지 않아 수정을 하기 어려우므로 개다래는 곤충을 불러들이기 위해 스스로 흰빛을 낸다.

열매가 맺히면 원래 색으로 돌아가는데 바이러스에서 원인을 찾는다.

백화(白化)현상의 생식원리가 섬뜩할 정도다. 

미녀봉의 실루엣, 오른쪽이 머리.
미녀봉의 실루엣, 오른쪽이 머리.

미녀봉은 가히 절색이다.

홀린 듯 이 산에 수없이 올랐다.

산 아래서 쳐다보면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리고 누워서 이마, 눈썹, 오뚝한 콧날, 입, 가슴, 울룩불룩한 곡선미로 뭇 사람들을 유혹한다.

고속도로 대구방향 가조 나들목 못 미쳐 오른쪽에 언뜻 보이는 실루엣이 압권이다. 

음기마을의 미녀봉 능선.
음기마을의 미녀봉 능선.

다시 유방샘을 지나 잠깐 내려서니 100살 더 먹은 상수리나무이다.

예사롭지 않다.

부끄러운 부분을 가리기 위해 일부러 심은 듯.

산 전체가 통째로 여자인 산, 유방샘에서 흘러내린 물이 음기·양기마을로 흘러들어 마을의 젖줄이 됐다.

내려갈 때는 확실히 솔숲을 택해서 걷는다.

산길에는 개망초 꽃이 올망졸망 하얗게 피었고 햇살이 따갑다.

농공단지 거의 다 왔을 때 반사적으로 몇 발자국 앞서가던 이들을 불렀다. 

“이리 와 봐요.”

“……”

김 선생 혼자서 되돌아오는데 

“무슨 나무?”

“……”

“화살나무.”

마지못해 걸어오는 친구는 퉁명스레 대답한다. 

“기생집 개 삼년에 장단 맞춘다고…….”

“……”

농공단지 시멘트 길은 덥다.

10여분 걸어가니 차안에는 열기로 가득하다.

창문을 확 열어 놓고 느티나무 밑에 앉아 더위를 식히고 있다.

김 선생님 일해야  되니 그만 돌아가자고 한다.

에어컨 대신 창문을 열고 시골길을 달려간다.

풀 냄새가 좋다.

멀리 보이는 미녀봉을 쳐다보다 그만 고속도로 통행로를 놓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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