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퀘스트=글·사진 김재준(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오월 중순 아침 9시 흐린 날씨다.

통도사 입구 주차장엔 주차요금 대신 사람마다 3천 원씩 입장료를 받는다.

아파트 근처 가게에 잠깐 들른다.

음료수 두 병 사며 과일 없냐고 물으니 파는데 없다고 참외 두개를 그냥 준다.

같이 계산해 달라하니 한사코 사양하며 그냥 가라한다.

마음씨 좋은 아주머니는 오히려 깎아먹을 칼이 있는지 걱정한다.

덕분에 입장요금의 불편했던 마음은 사라졌다.

이런 분들 덕분에 세상은 아직 살만하다.

화북면 대원마을 동네 체육시설을 뒤로하고 20분쯤 걸어서 관음암 입구에서 왼쪽으로 걷는다.

말채나무·향나무·소나무 길, 반듯한 들판을 바라보다 오랜만에 둥그런 논길을 따라 간다.

암자와 잘 어울리는 길이다. 

때죽나무 꽃.
때죽나무 꽃.

대나무 숲을 지나자 때죽나무 꽃, 요염한 포즈(pose)로 매달린 봉오리마다 야릇한 향기를 뿜어대는데 가슴이 먹먹하다.

뇌쇄적(惱殺的)이다.

독성(saponin)이 있어 덜 익은 열매를 찧어 물에 풀어 놓으면 기절한 물고기가 떼거지로 떠오른대서 때죽나무 이름이 붙었다.

빻은 열매를 화약과 반죽하여 동학혁명 때 총알로 만들어 썼다 한다.

작은 키 나무지만 10미터까지 자란다.

어긋나는 잎은 끝이 뾰족하고 껍질은 때가 낀 것 같이 까맣다.

늦봄에 꽃향기가 진해 스치기만 해도 코를 찌른다.

꽃이 눈처럼 하예서 하얀 종(snowbell), 겸손의 의미. 

찔레꽃 향기는 은은하고 아카시아 꽃도 달콤하게 밀향(蜜香)을 보탠다.

봄은 꽃의 향연(饗宴), 나무들을 좀 더 가까이 보며 평지 같은 산길을 걷는다.

잎이 마주나는 말채나무, 어긋나는 층층나무…….

오른쪽 마을 갈림길 지나 10시경 통도사 주차장에 닿는다.

조계종 15교구 본사, 동서로 길게 늘어선 거찰이다.

산의 모습이 부처가 설법하던 인도의 산과 비슷해서 영축산이다.

통도사(通度寺)는 진리를 통하여 중생을 제도한다는 의미다.

신라 때 자장이 당나라에 유학하고 돌아와 왕명으로 절을 세웠다.

전기차가 오가는데 절집이 아니라 크고 화려한 전당(殿堂)이다.

거대한 현판 영축총림(靈鷲叢林).

“……”

“총림이 뭐야? 무협지에 나오는 이름 같다.”

“모일 총(叢), 수풀림(林), 우거진 숲.”

“강호 협객(俠客)이 모인 곳이다.” 

“……”

강호는 중국 선종(禪宗), 마조의 활동 무대가 강서(江西), 쌍벽인 석두는 호남(湖南)이어서 두 글자를 따 강호(江湖)라 불렀다.

총림은 참선을 수행하는 선원(禪院)과 경전교육 강원(講院), 계율교육 율원(律院)을 갖춘 사찰이다.

통도사를 비롯해서 해인·송광·수덕·백양·동화·범어·쌍계사를 8대 총림이라 부른다.

등산로 입구.
등산로 입구.
등산로 입구.
등산로 입구.

10시반 이제부터 본격적인 등산로 입구다.

극락암, 백운암, 함박등, 진달래 군락지 능선 따라 가기로 했다.

절집에서 경작하는 토지인 듯 감자밭엔 보랏빛 꽃들이 활짝 폈다.

오랜만에 보는 감자 꽃이다.

감자꽃.
감자꽃.

감자는 가지과 덩이줄기(塊莖), 구황작물로 안데스 산맥이 원산지다.

순종(順從)의 의미. 녹말·단백질·비타민C가 많고 지방이 없다.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침략 후 담배와 유럽에 들어와 퍼졌으나 한 때 성경에 없는 악마의 작물로 취급됐다.

감자는 아일랜드의 유일한 식량이었으나 감자역병(잎마름병)으로 1845~1852년까지 110만 명 이상 굶어 죽었다.

7년 만에 인구 25퍼센트가 죽었다.

먹고살기 위해 고향을 등진 사람도 100만 명, 케네디 대통령 조상도 이 시기에 미국으로 건너갔다.

아일랜드는 영국 연합왕국이었지만 식민지 대우를 받았다.

아침에도 감자, 점심에도 감자, 저녁에도 감자를 먹었다.

아일랜드의 슬픈 역사를 생각하며 걷는다.

10분 걸어 오른쪽 반야암 인데 우리는 곧장 올라간다.

오르막 솔숲 길 흐린날 안개와 노송이 어우러져 동양화를 그렸다.

군데군데 아스팔트를 깔았는데 신작로 같은 흙길을 그대로 두었으면 좋겠지만 희망사항일 뿐 머잖아 모두 콘크리트로 덮이겠지.

다시 햇살이 비치니 뻐꾸기 소리도 정겹다.

서어·개옻·누리장·국수·소나무…….

오래된 소나무 노송(老松)은 선채로, 엎드린 채, 구부린 듯 온갖 자세로 나한(羅漢)처럼 호위하고 있다. 

백운암 오르는 길.
백운암 오르는 길.

10시 50분 백운암·비로암 갈림길에서 우리는 백운암으로 오르는데 절집으로 자동차가 지나면서 매캐한 연기를 뿜고 간다.

숨쉬기 불편하지만 어느덧 아스팔트 포장도로 끝나는 구간이다.

숲속은 눅눅하고 습기가 많지만 소나무 가지사이로 햇살이 비친다.

찬란한 햇빛이다.

굴참나무와 소나무가 섞여 자라는 혼효림(混淆林), 편백나무를 새로 심은 조림지다.

굴참나무는 껍질이 아주 두터워 불에 잘 견디는 내화성(耐火性) 수종이니 산불에 어느 정도 안전성이 확보 된 셈. 

싱그러운 숲 냄새가 좋다.

냄새가 아니라 나무들의 향기다.

상쾌하다고 느끼는 이것은 나무들이 살아가기 위해 끊임없이 뿜어내는 방어물질, 식물은 동물처럼 병원균 공격에 도망갈 수 없어 곰팡이가 생겨 썩어 버리니 살균성 물질을 방출하는데 아울러 피톤치드(phytoncide)라고 일컫는다.

주성분은 테르펜(Terpene), 향긋한 방향(芳香)이다.

이들을 통해 심신의 건강을 증진시키는 활동을 삼림욕, 산림치유라고 부른다.

치유의 효과를 보려면 먼저 찌든 마음을 가라앉혀야 한다.

숲에서 공기를 깊이 마셨다 천천히 뱉는 복식호흡이 좋다.

늦봄부터 늦여름까지 햇볕이 많고 온도·습도가 높은 오전, 저녁 무렵이 알맞다.

처음 비 내릴 때 흙냄새와 어우러진 페트리커(Petrichor)도 있다.

흙속의 박테리아가 만드는 화학물질 지오스민(geosmin), 비와 섞여나는 독특한 냄새 때문에 기분이 좋아져서 비 올 때는 한 잔이 제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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