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퀘스트=글·사진 김재준(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산벚·개서어·때죽·굴참·낙엽송·소나무…….

낙엽송은 길옆의 전봇대와 길게 솟아 멀리서 바라보니 분간이 잘 안 된다.

전봇대와 전깃줄은 어디로 올라갔는지 궁금해서 걸음을 재촉한다.

안개, 햇살과 공기와 새소리, 계곡 물소리……. 어울려 숲의 화음을 만든 다양한 이웃들이 서로 섞이고 어우러져 사람의 정신을 맑게 한다. 

11시 10분 조릿대, 쪽동백·비목·생강·때죽·굴참나무들을 쳐다보다 하마터면 두꺼비를 밟을 뻔 했다.

팔 위에는 벌레가 거미줄을 타고 내려와 붙었다.

당단풍·굴참·노각·굴피나무……. 

백운암.
백운암.

산사의 목탁소리, 궁금했던 전봇대의 종점은 여기 백운암이다(통도사 산문6.3·함박등0.7·영축산2.4킬로미터).

11시 40분, 딱따구리 소리인지 목탁소리인지?

딱따구리와 스님이 맑게 두드리기 경쟁하는 듯.

샘터엔 떼로 떨어져 열반에 든 꽃잎, 물 한 잔에 속세를 비우고 하늘을 바라본다.

파란 꼭대기 구름이 곱고 희다.

바위사이로 물이 흐르고 연등(蓮燈)은 나무에 달려 극락세계를 알리는 듯.

하얀 꽃 밟히는 돌계단 뻐꾸기 울음 길게 따라오고 산을 울리는 딱따구리 소리가 절집의 목탁처럼 들린다.

며칠 전 마곡사에서 담은 물을 비우며 바위에 걸터앉았다. 

“그 물 아직도 안 버렸어?”

“……”

“십승지(十勝地) 물을 더하니 만세영화지지(萬世榮華之地)로 이름 떨치리라.”

“말은 청산유수다.”

“……” 

“한 잔 들고 산 아래를 바라보니 녹음방초 호시절이라 애틋했던 청춘을 그리워하노라.”

오르막길.
오르막길.

정오에 암자를 떠나며 쪽동백·사람주·노린재·굴참·미역줄·물푸레·참회·참빗살나무와 헤어진다.

산악지역이선지 쪽동백나무는 잎이 더 두텁고 껍질색깔도 진하다.

30분쯤 오르막길, 땀은 줄줄 흘러내리고 손수건은 다 젖었다.

여분(餘分)으로 한 장 더 갖고 온다는 걸 깜박 잊었다.

백운암에서 30분 정도 올라서 함박등(영축산1.7·백운암0.7·채이등0.3·오룡산4.4킬로미터)에 닿는다.

우리는 오른쪽으로 진행하는데 햇살이 쨍쨍하다.

능선에 철쭉꽃 만발하고 동쪽으로 안개, 서쪽은 맑다.

15분 더 올라 능선의 바위꼭대기에 서니 영축산, 신불산, 간월산까지 보이는데 영축산은 골산(骨山), 신불산으로는 육산(肉山)이다.

신불산.
신불산.
영축산.
영축산.

피나물·둥굴레·실사리, 바위틈마다 양지꽃 빼곡하게 자라고 조릿대 새싹을 틔우니 고향에 심어놓은 오죽(烏竹)도 새순이 나올 것이다.

팥배·쇠물푸레·철쭉·산목련·마가목……. 능선마다 기화이초(奇花異草), 기암괴석(奇巖怪石)이니 영남알프스라 할 만하다.

오후 1시 20분 진혼비와 헤어지고 땡볕이 내리쬐는 곳에서 노랑제비꽃을 바라본다.

잠시 후 갈림길(오른쪽 비로암1.6·정상0.2킬로미터, 약수터50미터, 뒤쪽 백운암2.2·오룡산5.9·함박등1.5킬로미터) 지나고 오후 1시 반에 드디어 1081미터 영축산 정상(신불산3.1·오룡산6.1·하북지내마을 4.9킬로미터)에 닿는다.

울주군 삼남·상북, 양산시 하북·원동면 경계다.

영축산(靈鷲山)은 영축·영취·취서·축서산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렸으나 지금은 영축산으로 부른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취서·대석산이라고도 한다.

한자사전에 ‘독수리 취(鷲)’이나 인도 영축산의 차자(借字)에서 비롯된 것으로 본다.

산 아래 선덕여왕시절 지었다는 한국 3대사찰 통도사가 있다.

영축산(靈鷲山) 기암괴석과 노송이 병풍처럼 둘러쳐 마치 신령스런 독수리가 살고 있는 듯.

독수리는 절대자의 상징이다.

영축산에서 신불산, 간월산으로 이어지는 억새능선이 볼만한데 가을이 되면 관광객들로 가득 차 발걸음 옮기기도 어렵다.

내려가는 바위.
내려가는 바위.

오후 1시 40분 내려가는 바위, 양산 시가지가 잘 보이는 곳에 앉아 점심을 먹으며 아침에 참외 두 개를 주던 가게 아주머니 생각이 떨쳐지지 않는다.

복을 짓는 사람은 이래서 복을 되돌려 받는구나.

채워야 후손들이 받는 것 아닌가?

우리가 이나마 누리는 것도 조상의 음덕, 지어야 다시 받으니 그릇에 복을 채워놓아야 한다. 

오후 2시 반에 산을 내려간다.

산 아래 안개 가득할 것을 보니 어젯밤 비가 많이 온 증거다.

바위구간 밧줄을 잡고 내려가는데 노각·노린재·신갈·물푸레·비목나무…….

바위 사이로 뿌리를 내린 피나무 군락지다. 

피나무.
피나무.

피(皮)나무는 껍질을 쓰는 나무라는 데서 유래한다.

섬유조직이 질겨서 밧줄·어망·새끼 대용으로, 목재는 바둑판으로도 썼다.

사찰에서는 염주나무, 보리수나무로 불린다.

20미터까지 자라는 큰키나무로 껍질은 회색, 끝이 뾰족하고 톱니가 있는 잎은 심장형으로 어긋난다.

큰 하트(heart)는 찰피, 작은 하트는 피나무다.

오후 3시 개서어·굴참·팥배·생강·사람주·산딸·참회·산머루·소나무…….

노랗게 핀 조릿대 꽃을 본다.

지상부분은 이미 죽었다.

줄기가 나와 죽기 전 5년에 한 번씩 피는 꽃을 보니 그것도 복이다.

조릿대는 벼과의 키 작은 식물로 조리(笊籬)를 만드는데 썼다.

굴피나무.
굴피나무.
쪽동백나무.
쪽동백나무.
사람주나무.
사람주나무.
개서어나무.
개서어나무.
노각나무.
노각나무.
비목나무.
비목나무.
조릿대 노란꽃.
조릿대 노란꽃.

수풀이 뒤섞인 밀림지대를 지나 오후 3시 30분 마을(지산마을2.1·임도방향정상3·정상2.5·지내마을2.5킬로미터)로 들어섰다.

축서암 근처까지는 여름철 산행구간으로 좋다.

15분 더 걸어 갈림길(지산마을0.7·축서암0.3킬로미터), 오후 4시 버스 종점까지 왔다. 

지산마을 찾아 도로를 따라 걸어간다.

길을 물으니 20분 더 가라고 하는데 아카시아·찔레꽃 향기에 피곤함을 잊을 수 있다.

평산마을 경로당까지 10분 거리, 들판에는 청둥오리 첨벙거리며 떠 있기도 하고 날기도 하고 걷기도 하면서 헤엄까지 치는데 우리는 오로지 걸을 수밖에 없으니 참 딱한 노릇이다.

이리저리 구릉지를 헤매다 오후 4시 반에 아파트 가게 근처로 되돌아왔다.

7시간 반 정도 걸렸다.

등억온천에 들러 땀을 씻고 울산 고속도로 나들목 입구에 서 국밥 한 그릇, 으스름 가득 싣고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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