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2월 대법원, 초음파 장비 사용한 한의사 벌금형 원심 파기 환송
의사협회 “초음파 진단은 고도의 전문성·숙련도가 필요한 의료 행위” 반발
한의사협회 “양의계 내 의료사고 줄일 방안이나 강구해라” 꼬집어

대한의사협회와 대한한의사협회는 한의사 초음파 장비 허용과 관련한 대법원 판결에 대해 각각 반대, 찬성의 입장을 내놓으면서 공방전을 펼치고 있다. 사진은 지난 12월 26일 대법원 앞에서 진행된 대한의사협회 반대 시위. [사진=대한의사협회]
대한의사협회와 대한한의사협회는 한의사 초음파 장비 허용과 관련한 대법원 판결에 대해 각각 반대, 찬성의 입장을 내놓으면서 공방전을 펼치고 있다. 사진은 지난 12월 26일 대법원 앞에서 진행된 대한의사협회 반대 시위. [사진=대한의사협회]

【뉴스퀘스트=김민수 기자】 수년 전부터 ‘한의사 의료기기 사용’ 여부에 대해 다툼을 벌여온 의료계와 한의계가 새해 들어 연일 충돌하고 있다.

최근 대법원이 초음파 장비를 사용한 한의사에 대해 벌금형을 내린 원심을 파기하고,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환송했기 때문이다.

지난 2014년 대법원이 한의사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은 업무 영역에 벗어난 행위라고 판시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최근 대법원의 시각에 변화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4일 대한의사협회·대한한의사협회에 따르면 지난 12월 22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해 의료법 위반으로 재판에 넘겨진 한의사 A씨에 대해 벌금 8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환송했다.

A씨는 부인과 증상을 호소하던 여성 환자에게 2010년 3월부터 2012년 6월까지 약 2년 동안 초음파 장비를 사용해 총 68회에 걸쳐 진료를 했다.

현행 의료법 제27조에는 ‘의료인이 아니면 누구든지 의료행위를 할 수 없고, 의료인도 면허된 것 이외의 의료행위를 할 수 없다’라는 내용이 있는데, 이를 위반한 혐의로 기소되기에 이르렀다.

1심과 2심은 2014년 대법원 판례에 근거해 초음파 장비를 사용한 진료 행위가 한의사의 업무 영역을 벗어난 것으로 간주했다.

이러한 1심과 2심 판결에 대해 대법원은 이번엔 예전과 다른 입장을 내놓았다.

대법원은 파기·환송 이유에 대해 ▲한의사의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을 금지하는 취지의 규정은 존재하지 않음 ▲한의사가 진단의 보조수단으로 사용하는 경우 의료행위에 통상적으로 수반되는 수준을 넘어서는 보건위생상 위해가 생길 우려가 있다고 단정할 수 없음 등이라고 설명했다.

또 ▲한의사의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이 한의학적 의료행위의 원리를 적용 또는 응용하는 행위와 무관한 것임이 명백히 증명되었다고 볼 수 없음 등을 근거로 제시했다.

대한의사협회(회장 이필수)는 즉각 반발에 나섰다.

초음파 장비 진단은 영상 현출과 판독이 일체화돼 있어 검사자의 고도의 전문성과 숙련도를 필요로 하는 의료행위라는 것이다.

의사협회는 “정확한 진단명과 진단 시기의 중요성을 폄훼해 국민 건강을 방임하는 충격적이고, 무책임한 판결이 나왔다”고 지적했다.

이어 “환자를 진료함에 있어 ‘부적절한 진단 수단의 사용’이 어떻게 환자에게 보건위생상 위해가 생길 우려가 없을 수 있다는 것인지 재판부에 되묻지 않을 수 없다”고 반문했다.

의료법 제2조에 나온 ‘한의사는 한방 의료와 한방 보건지도를 임무로 한다’는 내용에 의료기기 사용은 해당하지 않는 것이 의사협회 측 주장이다.

의사협회는 “초음파 장비를 누구나 사용해도 안전하다는 것은 극히 단편적이고 비전문적인 시각”이라며 “수십 년 전부터 영상의학과 전문의나, 의과대학에서 영상의학과 관련 이론 및 실습을 거친 의사만이 전문적으로 수행해왔다”고 강조했다.

지난 3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개최된 ‘2023년 의료계 신년하례회’에서도 이번 판결에 대한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이필수 의사협회 회장은 “한의사 초음파 장비 사용 문제 등 과학적인 근거가 배제된 판단과 정책 추진은 국민 건강에 심각한 위해를 초래할 것”이라며 “보건 의료 현안을 추진에 정부와 국회, 의료계가 긴밀히 협력할 수 있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대한한의사협회는 2023년 시무식을 열고 올 한해를 한의사 의료기기 활용의 초석을 닦는 해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사진은 2일 개최된 대한한의사협회 시무식 모습. [사진=대한한의사협회]
대한한의사협회는 2023년 시무식을 열고 올 한해를 한의사 의료기기 활용의 초석을 닦는 해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사진은 2일 개최된 대한한의사협회 시무식 모습. [사진=대한한의사협회]

대한한의사협회(회장 홍주의)는 상당히 고무적인 분위기에 휩싸였다. 

이번 판결에 대해 ‘정의로운 판결’이라고 부르면서 한의사 의료기기 사용을 법적으로 전면 허가해야 한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한의사협회는 “한의학은 수천 년 동안 관찰된 임상 경험을 이론화한 것으로 과학화는 발전의 자연스러운 단계”라고 설명했다.

이어 “현대 의료기기 대다수는 양의사들이 발견하고 연구한 게 아니라 현대 문명 발달의 산물로 봐야 한다”며 “이를 각자 진료에 활용해 환자의 상태를 정확히 관찰하고, 최상의 치료 방법을 찾는 것은 의료인에게 마땅히 보장된 권리이자 의무”라고 주장했다.

여기에 한 발 더 나아가 한의사협회는 의사협회가 본인들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독불장군’식 행태를 보인다고 비판했다.

한의사협회는 “양의계는 논리적인 이유나 사실에 근거한 주장은 찾아볼 수 없고 무조건 맹목적으로 한의사의 초음파 장비 사용을 반대하는 목소리만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또 “한의사가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하면 오진의 위험성이 커질 것이라는 불필요한 걱정을 할 시간에 아직도 각종 언론에 심심찮게 보도되고 있는 다양한 양의계 의료사고들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내부 단속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한의사협회는 올해 시무식에서 계묘년(癸卯年)을 한의사 의료기기 활용에 초석을 다지는 해로 만들겠다는 뜻을 밝혔다.

홍주의 회장은 “이번 판결을 계기로 한의사 의료기기 활용의 길이 열린 만큼 국민에게 최상의 한의 진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제반 여건을 마련하는데 회무 역량을 집중해 나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뉴스퀘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