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리지 않는 醫·政 극한 대치...속타는 환자·보호자
“옳고 그른 것은 두 번째, 빨리 정상화되길 바랄 뿐”
환자 2차병원으로 몰리면서 또다른 의료 대란 예고

서울 한 대학병원에서 휠체어를 탄 환자가 검사와 치료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서울 한 대학병원에서 휠체어를 탄 환자가 검사와 치료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뉴스퀘스트=민기홍 기자 】 전공의 대다수가 떠난 병원은 이미 ‘혼란’에서 ‘대란’으로 향해가고 있다. 돌파구도 안 보인다.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들 몫이다. '병원에 안 가는 것이 상책'이라는 자조 섞인 말이 회자될 정도다.

의료 현장의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도 정부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를 설치하고 위기 경보를 최고 단계(심각)로 끌어올리며 “주동자는 구속수사 하겠다”는 엄정 대응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의료계는 꿈쩍 않고 있다. 오히려 정부의 대응에 조목조목 반박하며 투쟁 강도를 높이고 있다. 인턴을 앞둔 의대 졸업생들도 “인턴 안 하겠다”며 투쟁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전임의와 4년차 레지던트들도 이탈 조짐을 보이고 있다. 교수들도 “제자들이 처벌받게 된다면 스승으로서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고 경고했다. 현재로선 이탈한 전공의들을 의료 현장으로 되돌릴 뾰족한 방법이 없어 보인다.

이제 사직서를 제출하고 병원을 떠난 전공의들의 숫자 집계는 무의미한 상황이다. 대형병원들은 수술을 절반가량 줄이고, 환자를 하급병원으로 돌리면서 겨우겨우 움직이고 있다. 환자들은 병원(의사)을 찾아 아픈 몸을 이끌고 전국을 돌고 있다. 그런 환자를 돌보는 보호자들도 지쳤다. ‘속수무책’과 ‘비정상’이 의료 현장을 지배하고 있다. 수술과 입원 취소, 진료 연기 등으로 환자들의 불편과 불만은 커지고 있다. 병원 여기저기서 신음에 가까운 아우성이 그치지 않고 있다.

정부는 지난 23일부터 비대면 진료를 전공의들의 집단행동 기간에 전면 허용하기로 했다. 사실상의 장기전 채비에 들어간 것이다. 의료계가 반대하는 비대면 진료를 확대해 의사들을 압박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의료계에 물러서지 않겠다는 메시지다. 중대본 관계자와 자치단체장들도 군 병원 등 공공병원을 찾아 운영 시간을 연장하는 등 ‘대란’ 차단에 안감힘을 쓰고 있다. 하지만 의료계에선 공공병원도 현재 상황이 지속된다면 곧 한계에 다다를 것으로 보고 있다.

의대 증원 문제를 놓고 의료계와 정부의 힘겨루기를 지켜보는 환자와 보호자들의 속은 타들어 간다. 25일 오후 서울 한 대학병원 빈소에서 만난 김모(78)씨는 부인이 지난해 11월 중풍으로 쓰러져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이번 사태가 일어나기 전인 지난달 말 퇴원했다고 한다. 최근 부인의 상태가 나빠져 다시 입원해야 하는데 치료받던 병원에서 받아주지 않아 수도권 2차병원을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이번 사태의 피해자가 될 줄은 몰랐다며 “누가 옳고 그른 지는 둘째 문제다. 병원이 정상화되기를 기다릴 뿐”이라며 “아프지 않는 것이 상책”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방침에 반발한 전공의 집단행동 나흘째인 23일 오후 2차 병원인 경남 창원시 의창구 한양대학교 한마음병원에서 환자가 진료를 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방침에 반발한 전공의 집단행동 나흘째인 23일 오후 2차병원인 경남 창원시 의창구 한양대학교 한마음병원에서 환자들이 진료를 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금 전국의 대형병원에서는 김씨와 같은 경우가 별반 새롭지 않다. 또 그럴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문제는 대형병원으로 몰렸던 환자들이 수련병원이 아닌 규모가 작은 2차병원으로 몰리면 그곳에서도 또다른 의료 대란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김씨는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의 2차병원도 입원 대기를 해야 입원실이 난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전했다. 환자와 보호자는 이번 사태를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다.

서울시내 주요 대학병원은 전공의가 떠난 빈자리를 전임의와 교수들이 채우고 있다. 병원에서는 신규 환자 예약 최소화, 수술 축소 등으로 근근이 꾸려가고 있다. 하지만 의료계에서는 전임의와 교수들도 다음 주 초부터는 피로도 누적 등으로 한계 상황을 맞아 백기를 들 수 있다는 위기감이 확산하고 있다.

의료계 안팎에서는 전공의 사직에 이어 ‘전임의와 교수 이탈’, ‘인턴 임용 포기’가 현실화할 경우 새로운 위기가 닥칠 것으로 보고 있다.

펠로 또는 임상강사로 불리는 전임의는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고 병원에서 세부 전공을 배우는 의사다. 교수 임용 전 계약직 신분으로 병원에 근무하는 이들은 일반적으로 2월 말 1년 단위로 재계약한다. 이들 전임의들이 업무 과중 등을 이유로 재계약을 포기할 경우 의료 현장은 걷잡을 수 없는 혼란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인턴 대란’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인턴은 의대를 졸업하고 전공의 수련을 위해 수련병원으로 가는 ‘예비 의사’다. 전공의를 도와 의료 현장을 사실상 움직이고 있다. 이들의 인턴 임용 포기 선언이 전국 의과대학에서 이어지고 있다. 전국 수련병원에서 인턴 대란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의대 증원에 반발하는 전공의 집단 이탈 사흘째인 22일 대구 한 대학병원에서 환자와 보호자가 손을 맞잡고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의대 증원에 반발하는 전공의 집단 이탈 사흘째인 22일 대구 한 대학병원에서 환자와 보호자가 손을 맞잡고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부와 의료계의 극한 대치가 풀릴 조짐은 현재로선 보이지 않는다. 복지부는 사태 장기화에 대비해 전국 409개 응급의료기관 응급실을 24시간 운영하기로 했다. 또 97개 공공보건의료기관을 중심으로 주말과 공휴일 진료를 실시한다.

강경책도 유지하고 있다. 전공의들의 집단행동과 관련, 검경 협력체계를 구축해 신속한 사법처리에 대비하고 있다. 법무부는 복지부에 검사를 파견해 법률 자문을 하기로 했다.

의료계도 굽히지 않고 있다. 의협 비대위는 25일 오후 용산 의협회관에서 비상회의를 열고 의대 2000명 증원 정책은 의학 교육을 부실하게 만들 뿐 아니라 의료비를 폭증시키고 미래세대에 부담을 전가할 수 있다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비대위 관계자는 "정부가 일방적으로 증원 정책을 강행한다면 전체 의료계가 적법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끝까지 저항하겠다"고 밝혔다.

국립대 교수들이 25일 정부와 의료계를 향해 대화에 나설 것을 촉구하는 입장문을 발표했지만 강대강 대치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국민들이 이번 사태가 촉발한 ‘의료 대란’을 슬기롭게 피해 갈 방법은 딱 하나, ‘아프지 않으면 된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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