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돋보기] 쌍용차 ‘티볼리’ 발표회장에 늘어선 26컬레의 신발들, 왜?

▲ 사진출처 = 전국금속노동조합 홈페이지
[트루스토리] 윤한욱 기자 = 13일 오전 10시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알림터 A1 앞에서는 신발 26켤레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습니다. 이는 쌍용차 정리해고 희생자 26명을 상징하는 신발들입니다.

쌍용자동차 범국민대책위원위가 방한한 인도의 아난드 마힌드라 회장에게 대화를 통해 해고자 문제를 해결하자고 요구하면서 일종의 평화적 시위를 한 것인데, 범대위는 이 자리에서 “그 사람의 신발을 신어 보기 전에는 그 사람의 발에 대해 어떤 말도 하지 말라”는 인도 속담을 인용하며 마힌드라 회장이 해고자의 고통을 헤아려 조속히 대화에 나설 것과 해고자를 모두 복직시키라고 촉구했습니다. 하지만 경찰과 DDP 안전 요원들 때문에 이 퍼포먼스는 오래가지 못했지요.

이들이 이날 이 곳에서 이런 퍼포먼스를 개최한 이유는 쌍용자동차 티볼리 신차 발표회가 열릴 예정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즉 쌍용자동차의 모기업인 마힌드라그룹의 아난드 마힌드라 회장이 한국에서 성공하기 위해선 역지사지로 쌍용차 해고자 가족들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알아달라는 것이었지요.

‘티볼리’와 ‘쌍용차 해고 노동자’에 대한 언론들의 관심은 그야말로 뜨거웠습니다. 얼마 전 가수 이효리가 자신의 트위터에 “쌍용에서 출시되는 신차 티볼리가 많이 팔려서 함께 일하던 직원들을 해고할 수밖에 없었던 회사가 안정되고, 해고됐던 분들도 다시 복직되면 정말 좋겠다. 그렇게만 된다면 티볼리 앞에서 비키니 입고 춤이라도 추고 싶다”라고 노동자 복직에 대한 바람을 드러낸 적도 있었는데, 쌍용차의 모기업인 인도 마힌드라그룹과 협력 이후 첫 번째 선보이는 신차인 소형 SUV ‘티볼리’ 오늘 출시된다고 하니 차는 도대체 어떻게 생겼는지, 이유일 사장과 마힌드라 회장이 무슨 이야기를 할지, 해고자들은 무슨 목소리를 낼지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었죠.

해고자들과 이들의 이해와 요구를 대변할 노동계가 함께 ‘티볼리’ 출시 현장을 찾았기 때문이었을요. 여느 신차 발표회장과 달리 경찰병력이 참 많았습니다. 행사장도 아무나 출입할 수가 없었죠.
 
이유일 사장은 어쨌든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티볼리의 성공적인 출시로 고난의 역사를 끝내고 새로운 여정 시작하고 싶다” 그리고 “티볼리는 새로운 성장 기회를 갖게 된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습니다.

4년 만에 한국을 찾은 마힌드라 회장은 그 답으로 “티볼리는 마힌드라와 쌍용차의 파트너십 강화에 있어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것”이라며 “쌍용차의 성장을 견인해 나갈 모델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인도기업이 왜 한국에 투자하는지 누군가 묻는다면 인도 시인(라빈드라나드 타고르)의 말처럼 한국은 희망의 등불이기 때문”이라며 “그 시인의 예언이 쌍용차에서도 실현될 것으로 믿는다”고 강조했습니다.

마힌드라 회장은 특히 “2010년 쌍용차 인수를 결정했을 때 단지 포트폴리를 위한, 기술을 얻기 위한 투자가 아니었다”면서 “쌍용차 성공이 이어질 것이라는 비전을 갖고 투자했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과거 쌍용차의 주인이었다가 ‘먹튀’라는 비판을 받았던 중국 상하이자동차를 의식한 발언이 분명해 보입니다.

작심한 듯 발표회 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는 해고 노동자 복직 문제에 대해서도 언급했습니다. 그는 “평택 공장 굴뚝에서 복직 농성을 벌이는 해고노동자에 대해선 일자리를 잃은 분들과 그 가족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갖고 있으나 복직은 별개의 문제”라며 “쌍용차가 흑자로 전환되면 해고 노동자를 순차적으로 복직시킬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어 “마힌드라는 지역 공동체 구성원을 돌보고 신뢰하는 기업 문화를 갖고 있지만 우리가 투자한 현지 경영진을 신뢰하고 그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따르는 것이 우리의 방침”이라며 “제가 (여기서) 즉흥적으로 복직을 결정한다면 이는 약 5000명에 달하는 현재 쌍용차 노동자와 협력업체 직원, 딜러들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것이고, 무책임한 일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사실상 복귀는 어렵다는 뜻을 밝힌 셈입니다.

그렇다면 노동계 측의 이야기도 들어볼까요? 김득중 쌍용자동차지부장은 “복직 문제의 핵심 열쇠는 최대주주 아난드 회장이 쥐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상진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마힌드라 회장은 한국 국회의원들과 해고자 복직을 위한 면담 자리에서 전향적인 안을 가지고 한국을 방문하겠다고 했다”면서 “공장에서 티볼리를 함께 만들고 싶다는 우리의 절규를 내치지 말라”고 호소했습니다.

서쌍용 노조 부위원장은 “아난드 회장은 긴 시간 한국에서 머무르지 않는다. 인도로 돌아가기 전에 쌍용차 해고 노동자 복직을 약속하고 돌아가기를 바란다”며 “우리 바람이 실현되지 않는다면 금속노조는 또 다시 강도 높은 투쟁을 벌일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습니다.

정치권도 나섰습니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이날 아난드 마힌드라 회장에게 공개서한을 보내, 지난 2013년 11월 마힌드라 회장과 회동을 가진 것을 언급하며 “마힌드라 그룹의 메시지는 저와 동료 국회의원들에게는 매우 소중한 성과였으며, 쌍용자동차가 겪은 갈등과 아픔을 치유할 수 있는 계기가 곧 마련될 수 있겠다 확신을 가지게 됐다”며 “이제 이들(정리해고자)을 끌어안아야 한다”고 호소했습니다.

심 의원은 또 “신차 개발을 위한 1조원의 투자도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우선돼야 할 것은 바로 사람에 대한 투자, 신뢰에 대한 투자”라며 “70미터 고공에서 차디찬 칼바람을 맞고 있는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이 다시 땅을 밟을 수 있도록, 해고자 복직문제에 대한 해법을 내놓기 위해선 무엇보다 마힌드라 회장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촉구했습니다. 쌍용차의 닫힌 공장 문을 열고 그들을 안아줄 수 있는 마힌드라 회장의 포용력 있는 결단을 요구한 것이지요.

하지만 마힌드라 회장이 해고 노동자들과 혹은 굴뚝에서 농성중인 노동자들과 직접 마주칠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마힌드라 회장은 방한 사흘째인 14일 쌍용차 평택 공장을 방문해 생산 라인을 둘러보고 쌍용차 임직원, 노동조합 관계자 등을 만난 뒤 출국할 예정입니다. 해고자들이 기다렸던 ‘선물 보따리’는 없었습니다.

다만 ‘현지 경영인들을 신뢰한다’며 해고자들과 대립각을 형성 중인, 또한 노동조합 뿐 아니라 수십 명의 노동자들에게 약 100억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한 한국 경영진에겐 보이지 않는 ‘선물 보따리’를 안겨줬습니다. 아무래도 그가 한국을 찾은 진짜 이유는 마힌드라그룹에 대한 ‘먹튀 자본’ 논란을 불식시키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굳이 그가 신차 발표회를 위해 한국에 오지 않아도 됐거든요.

그가 남긴 말은 아주 의미심장합니다. ‘흑자 전환 뒤 복직’이란 얘기는 결국 판매량이 늘지 않으면 해고자 복직도 없다는 이야기로 들리거든요. 한마디로 말해 ‘많이 팔아라’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그 말도 왠지 ‘거짓’처럼 보입니다. 2009년 2646명에 대한 정리해고 당시, 3만 5000여 대로 떨어졌던 쌍용차의 총 판매량은 2014년 약 14만대까지 늘었습니다. 기자가 삐딱한 것인지는 몰라도 뭔가 거짓말처럼 들리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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