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버섯으로 불리는 운지버섯.
구름버섯으로 불리는 운지버섯.

【뉴스퀘스트=김재준 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오도재 방향으로 10분쯤 내려가니 산불무인 감시카메라가 설치돼 있다.

360도 회전되는 카메라는 사방 1만여 헥타르를 사무실 안에서 들여다 볼 수 있고 영상의 확대 분석도 가능하다.

산불이 포착되면 초기 진화에 편리하지만 주변 경관과 잘 어울리지 못해 아쉽다. 오도재는 남해·하동의 해산물이 벽소령·장터목을 거쳐 오르던 통로였다.

구불구불 엄천강 정겨운 다락논밭

헬기장을 지나 갈림길(오도재0.8·견불동2.9·정산0.7킬로미터)인데 한참 방향을 헤아려 보다 견불동으로 내려선다.

아직 남아있는 잔설과 나뭇잎을 밟으며 미끄러질까봐 조심해서 내려가는데 당단풍나무 이파리들은 그대로 달려 있다.

오른쪽 나무 사이로 오도재 도로가 보인다.

오후 2시경 나뭇잎에 감춰진 얼음을 모르고 꽈당 넘어졌다. 배낭을 짊어졌으니 망정이지 허리를 다칠 뻔 했다.

능선길 오르락내리락 30분 가까이 걸으니 펑퍼짐한 바위가 반갑게 맞아주는데 대여섯은 앉을 수 있을 만큼 넉넉한 크기다. 구불구불 지리산을 감아 도는 엄천강이 그림같이 흐르고 다락논밭들이 정겹다.

바위가 하도 좋아서 물 한 잔 마시며 먼 산 바라본다. 시원하게 내친 풍경에 감동하고 있다. 지금 행복한 순간, 행복은 우리 곁에 오래 머물지 않고 언뜻언뜻 찾아온다는 것을 느껴본다.

하늘도, 산들도, 나무도, 구름도, 새들도 모두 고맙다.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도록 좋은 자리를 허락한 평평한 바위가 오늘 산행의 백미(白眉)1)다.

“일품바위라 부르자.”

강을 바라보는 법화산.
강을 바라보는 법화산.

임도까지 30분 더 내려왔는데 소나무 숲도 절경이다.

아마 500년 더 된 소나무들이 있어서 정상에서 가까운 길 두고 멀리 돌아왔다는 투덜거림을 일거에 잠재울 수 있었다.

길가에는 고사리, 두릅나무와 소나무 숲 아래 간혹 춘란이 드문드문 보였다. 30분 더 걸어 휴천면 백연동인데 마을 어른에게 인사했더니 사람이 귀한지 어디 가느냐고 묻는다.

“문상마을까지 갑니다.”

맷돌을 돌리는 동네 할머니 곁에서 구경하고 있자니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다. 도로 옆에 물레방아를 만들어 놓았는데 아직 얼음이 달려 있지만 햇살 아래 매실나무 가지를 다듬는 농부들이 봄이 왔음을 보여준다.

고려 충렬왕 무렵 개성의 지방관(留守) 이억년이 벼슬을 버리고 함양으로 떠날 때 동생 이조년은 한강 나루에 전송하러 가는데, 도중에 금덩이를 주워 한 개씩 나눠 가진다. 배가 중간에 이르자 그만 금덩이를 강물에 던지고 만다.

아우에게 까닭을 물으니 금을 나눈 뒤부터 시기하는 마음이 생겨 버렸다고 했다. 형도 같은 감정을 느꼈다며 마저 던져 버린다. 뒷날 이 나루터 주변2)을 투금탄(投金灘)이라 불렀다.

눈 쌓인 산길.
눈 쌓인 산길.
산골마을.
산골마을.
백연마을 물레방아.
백연마을 물레방아.

이백년·천년·만년·억년·조년의 성주 이씨 다섯 형제 가운데 이억년은 형 백년과 지리산 문정리 도정마을에 은둔하는데 맏형 이백년에서 비롯되어 백연마을이 된다. 봄날 형을 찾아와 지은 작품이 이조년의 다정가로 알려졌다.

이화(梨花)에 월백(月白)하고 은한(銀漢)이 삼경(三更)인제,

일지춘심(一枝春心)을 자규(子規)3)야 알랴마는,

다정도(多情) 병(病)인 양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아스팔트길을 걸어 고불고불 오르며 오후 4시경 400년 묵은 느티나무 있는 곳에 도착하니 바로 앞에 종중묘소가 좋다.

거꾸로 마을 올려다보면 고즈넉해서 마음이 편안해진다. 죽은 자와 산 자들이 공존하는 명당 터다. 오늘은 5시간 반 걸었다.

바로 앞에 한남마을, 엄천강 건너 새우섬이다. 세종의 열여덟 왕자 중 열두째 한남군 이어(1429~59)가 2년 남짓 살던 모래섬이 새우처럼 구부러져 외부와 단절된 유배지다.

조선 말엽 유림들이 정자를 지었으나 일제 강점기 홍수에 쓸려 바위 귀퉁이 글자만 남았다. 서자(庶子)4)인 한남군(漢南君)은 금성대군과 단종복위로 금산에 유배. 아산을 거쳐 이곳으로 옮겨 위리안치(圍籬安置)5) 된다.

단종을 못 지킨 죄책감, 어머니 혜빈 양씨(楊氏)의 비참한 죽음, 언제 죽을지 모르는 불안감, 열흘에 한 번 주는 곡식으로 살며 닥쳐올 운명과 악몽에 시달리다 서른 즈음 죽었다. 일개 권력욕에 수많은 사람들이 비명에 갔다.

자동차를 달려 내려오다 점필재 김종직 관영차밭에서 목민관의 사명을 다시 생각한다.

함양에 차가 유명한데 초엽인 첫 잎은 따서 임금에게 바쳤고, 중엽은 부모에게, 말엽은 남편을, 늙은 잎은 봉지에 담아두었다가 약으로 썼다.

진상하는 차를 구하기 위해 백성들 고통이 심한 것을 알고 관청에서 차밭을 운영해 시름을 들어주었던 것이다.

읍내로 나오면서 상림 숲 앞 대학 후배의 가게에 들러 차 한 잔. 늘 밝은 표정으로 맞아줘서 함양과 상림에 대한 나의 관심은 남다르다.

(다음 회에 계속)

글 김재준(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주석>

1) 흰 눈썹, 여럿 중에서 뛰어난 사람이나 물건.

2) 서울 강서구 가양동 구암공원.

3) 두견이, 접동새, 소쩍새.

4) 첩에게서 난 아들.

5) 가시울타리를 만들어 죄인을 가둠. 탱자나무 많은 전라도 섬이 적지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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