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배경은? 불평등의 세계화, 저항의 세계화, 경제의 민주화

[트루스토리]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전 세계 시민운동의 화두는 ‘불평등(inequality)’해소이다. ‘1%에 의한, 1%를 위한, 1%의’ 사회를 개혁해 99%가 더 나은 삶을 보장받는 미래를 만드는 것이다. 1990~2000년대 신자유주의 경제 성장기에 감춰졌던 소득 불평등 구조가 경제위기가 터지면서 수면위로 부상했다. 위기에도 불구하고 상위 1%는 타격을 거의 받지 않는데 비해 서민은 심각한 빈곤으로 떨어져 생존권을 위협받고 중산층은 쪼그라드는(squeezed middle) 상황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한국경제도 다르지 않다. 2010년 기준 한국의 상위 1%가 차지하고 있는 소득 비중은 11.2~11.5%(새사연 추정 11.2%, 김낙년 교수 추정 11.5%)로 나와 있는데 이는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의 6.97%에 비해 거의 두 배가 늘어난 것이다. 지난 10년 동안 한국사회의 경제적 불평등과 상위 1%로의 부의 쏠림현상이 심각했음을 알 수 있다. 

최근에는 경제위기와 소득 불평등 사이의 깊은 상관성이 있을 것이라는 분석으로 발전하고 있다. 미국 기준으로 1929년 대공황 직전해인 1928년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해인 2007년에 상위1% 소득 비중이 약 23%로서 역사상 최 정점에 달했던 사례가 그러한 추정에 무게를 실어준다. 나아가서 현재의 위기를 근원적으로 극복하려면 강력한 부의 재분배를 통한 불평등 해소를 실현하여 저소득층과 중산층의 구매력을 크게 개선해야 한다는 해법도 힘을 얻고 있는 중이다. ILO의 ‘임금주도 성장전략’이나 새사연의 ‘소득주도 성장 전략’이 모두 이러한 궤도위에 있다.

위기가 장기화되는 가운데 상위 1%인 금융회사들이 손실을 사회화시키면서 오히려 불평등을 심화시키자, 2011년 카이로에서 스페인, 이스라엘, 영국, 인도, 그리고 월가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에서 1%의 탐욕과 불평등에 저항하는 시민사회의 운동이 확산돼 갔다. 불평등의 세계화가 저항의 세계화를 낳은 것이다. 중국경제라는 새로운 세계경제 성장 동력이 버티고 있는 동아시아는, 자산거품의 위험성을 키우고는 있지만 장기침체 반경에서는 다소 벗어나 있어 저항의 세계화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동아시아의 불평등 심화 역시 예외는 아니었고 한국경제도 마찬가지였다. 2010년에는 6%가 넘는 성장률을 기록했고 2011년7월까지 주가가 2200포인트에 도달한 한국경제지만, 그것은 삼성과 현대차 등 유력 재벌의 ‘나 홀로 성장’이거나, 세계적 과잉 유동성이 신흥국에 흘러들어온 ‘해외자본 유출입 효과’로 만들어진 것일 뿐, 국민들의 생활향상과 동떨어졌다.

오히려 이 국면에서 취약한 사회 안전망의 실태가 드러나는가 하면, 재벌 대기업 집단의 국내 독과점 횡포가 더욱 확대되면서 국민 생활 터전이 곳곳에서 잠식당하는 상황이 목도되었다. 그 결과 무상 급식을 매개로 보편 복지 요구가 급격히 확산되더니, 곧이어 중소 상인들의 끈질긴 SSM 입점저지 운동 등이 누적되면서 재벌개혁 경제 민주화 의제가 사회적 이슈로 부상했다. 이것이 경제위기와 불평의 세계화 국면에서 한국사회가 맞고 있는 상황이다.

결국, 기존의 ‘개방과 세계화 담론 - 성장담론 - 낙수효과 담론 - 허구적인 동반성장 담론- 노동시장 유연화 담론’이 세계경제위기와 함께 무너지고, ‘보편복지와 경제 민주화, 그리고 노동권 보호’가 새로운 시대의 화두로 부상하고 있는 중이다. 재벌개혁 경제 민주화는 이러한 역사적 흐름을 배경으로 하여 외환위기 이후 15만에 역사적으로 부활한 것이다. 재벌개혁 경제 민주화운동이 자본시장 범주 내에서의 일부 소액 투자자 운동이나 전문가 운동이 아니라 ‘시민적 민생운동’이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특히 보편 복지와 경제 민주화 의제는 지난 대선 전후로 한국의 정치 지형뿐 아니라, 2008년 리만 사태이후 또 한 번 세계경제를 뒤흔들면서 엄청난 파장을 줄 유럽위기로 인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새사연은 “선진국 전체가 일본형 장기 침체로 빠져들고 있다. 학자들이 대공황과 비교하기 위해 ‘대침체(Great Recession)’라고 이름 불렀던 2008년 금융위기는 이제 ‘장기침체(Long Recession)’로 전환하고 있다”고 주장했는데, 실제 권혁세 전 금융감독원장은 “유럽 위기가 여러 국가의 정치 문제까지 겹쳐 더 나빠진 만큼 근본적인 해결을 하려면 장시간이 걸린다. 위기 극복 과정에서 세계 경제의 긴축과 둔화가 굉장히 오래 이어질 것이므로 지금부터 우리도 단단히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박근혜 정부는 집권 5년 동안 내내 세계적 장기침체로 인한 교역환경 악화와 수요 위축 환경에서, 한편에서는 외부충격을 완화할 방화벽을 구축해야 한다. 동시에 국내적으로 불평등을 해소하고 서민과 중산층의 사회 안전망을 확보해주면서 구매력을 높이기 위해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경제 민주화가 아니면 국민이 살길이 없다”는 사고를 가지고 경제 민주화를 통한 국민의 생존전략을 세우는데 5년 전부를 걸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병권 /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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