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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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퀘스트=정태성 행동경제학연구소 대표】 얼마 전에 회사에 첫 출근을 한 친구가 있었다.

나는 면접을 보지는 않았지만 회사 내에 사람을 잘 판단하기로 누구나 인정하는 팀장이 자기 팀원을 뽑기 위해 면접을 진행했고, 너무 우수한 사람을 뽑게 되었다고 그 사람이 원하는 조건에 웬만하면 맞춰주자고 했다.

물론 검증되지도 않은 사람에게 회사 규정보다 무리해가면서까지 그 직원을 채용하는 것이 내키지 않았지만 이력서에 쓰여진 지금까지의 경력이 우리와 딱 맞다는 생각에 한 번만 예외를 두기로 했다다.

결과는?

다들 예상하는 바와 같다.

정확히, 첫 출근한 날 클라이언트 만나서 업무를 진행하다가 오후 4시경 전화해서 회사를 더 이상 다니지 못하겠다는 말만 남기고 퇴사했다.

물론, 하루 임금 정확히 달라는 요구까지 남기고 말이다.

우리는 나이에 비해 컨설턴트로 많은 일을 해 보았다는 것을 믿었고, 거기에 대해 경력증명서를 요구한 것 이외에는 어떠한 얘기도 한 적이 없다.

아마도, 이력서와 면접 내용은 거짓이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왜 이런 일이 생길까?

고용에 관한 일반적인 경제학 이론들이 있지만 이번에는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설명하는 고용관계를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한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더 많이 알고 있을 때, 이런 정보의 차이를 정보의 비대칭성이라고 부른다.

노동자는 고용주보다 자기가 얼마나 일을 열심히 하는지 알고 있고, 중고차 판매상은 고객보다 차의 성능에 대해 더 잘 안다.

전자는 감춰진 행동에 관한 경우고, 후자는 감춰진 속성에 대한 경우이다. 이러한 정보의 비대칭성 때문에 정보가 많은 쪽과 정보가 부족한 쪽은 각기 다르게 행동할 수밖에 없다.

구직자와 회사도 마찬가지 관계이다.

정보를 많이 가진 구직자는 자기만이 아는 정보를 바탕으로 정보를 보낸다. 이것을 신호보내기 (Signaling)라고 한다.

구직자는 자신의 가치가 높다고 고용주에게 신호를 보내기 위해 이력서에 대학원을 졸업하고, 지금까지 관련된 업무에서의 많은 경험을 적는다.

자신의 이력서를 적는 바로 이 지점에서부터 문제가 시작될 가능성이 크다.

이력서에다가 자기 경험을 자기가 실제 경험한 것보다 조금 과장해서 써내려가기 시작하는 그 시점 말이다.

유명한 행동경제학자 댄 애리얼리가 말한 ‘자기 신호화 (Self signaling)’라는 개념은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그렇게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이 무슨 행동을 하였을 때, 그로부터 자신을 새롭게 과대포장하고 믿게 되는 현상을 일컫는다.

이력서에서 처음에는 크게 진실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과장을 시작했다가 실제로 그 일을 경험하고 자기 자신이 그 일을 확신에 차서 해낼 수 있는 것처럼 자기신호화가 시작되곤 한다.

그러면 일정한 시간이 흐른 뒤에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점점 더 확신에 차서 자신의 경험을 과장하게 되고, 이때부터의 행동은 댄 애리얼리의 표현에 따르면 ‘어차피 이렇게 된 거(What-the-hell)’라는 태도로 인한 것이다.

즉, 자신의 가치를 놓이기 위해 최초 머뭇거리면서 써 간 몇 줄이 ‘자기신호화’하고 시간이 지나 몇 번의 면접을 거치면서 ‘어차피 이렇게 된거’라는 단계로 진화하는 과정을 거친다.

아마도, 그 친구도 그렇게 해서 우리 앞에 나타나게 되지 않았을까?

이렇게 정보가 있는 쪽에서 자신의 사적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이력서와 같은 신호를 계속 보내면 채용자와 같이 정보가 부족한 쪽에서는 사적 정보를 정확하게 판단하기 위해 여러 행동을 취하는데 이를 스크리닝이라고 한다.

예를 들면, 중고차 시장에서 정보가 부족한 구매자가 판매자에게 구입하고자 하는 차를 정비공에게 새롭게 점검 받자고 요구하는 것도 스크리닝의 일종이다.

아까 우리 연구소의 사례처럼 경력증명서를 떼어오라고 하는 것 역시 스크리닝이다.

물론 우리는 시기가 늦었다. 정확히 입사 전에 요구를 했는데, 입사 첫날 경력증명서를 제출하라고 요구했으니 말이다.

앞서 말한 댄 애리얼리는 단 한 차례의 부정행위도 사소하게 봐 넘겨서는 안된다고 얘기한다.

최초의 부정행위가 어떤 사람이 자기 자신의 현재와 미래 행동을 바라보는 방식을 결정하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정태성 행동경제학연구소 대표.
정태성 행동경제학연구소 대표.

앞서 말한 ‘자기신호화’, ‘어차피 이렇게 된거’ 현상이 일어나서 일이 커지게 되므로 최초부터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만, 지금과 같은 사회에서 역시나 걱정스러운 부분이 있다.

최근에는 취업자가 회사를 평가하는 사이트에 평점을 올리고 후기를 공유하는 사이트들이 많아졌는데, 여기에 글이 올라가게 되면 면접을 보고자 하는 사람들조차 취소하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다.

채용자는 스크리닝을 해야 하는 것 뿐 아니라 스크리닝을 어떻게 기분 안 나쁘게 해야 하는지도 고려해야 하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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