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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1-03-09 17:05 (화)
[나의 초록목록(草錄木錄)⑧] 다육식물 열풍의 뒷면
[나의 초록목록(草錄木錄)⑧] 다육식물 열풍의 뒷면
  • 허태임(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
  • 승인 2021.01.19 13: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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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퀘스트=허태임(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 식물은 혹독한 겨울을 나기 위해 만반의 채비를 한다.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물과 햇볕을 어떻게 확보할지 궁리하고 봄이 올 때까지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계산한다.

모든 잎을 떨어뜨리고 마치 생존을 멈춘 것처럼 보이지만 식물은 겨울에도 바쁘다.

산솜방망이는 이른 봄에 틔울 새싹을 보호하기 위해 털을 잔뜩 뒤집어쓰고 겨울을 난다.

솜털 차림은 추위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전략이다.

이 작은 솜털은 눈에서 얻은 수분을 한 올 한 올 저장하는 기능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렇게 봄에 틔울 새싹을 염두에 두면서 자신을 지키는 것이다.

산솜방망이는 백두산을 비롯하여 몽골과 러시아의 추운 고산지대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적응한 식물이다.

수목원에서 북방계식물을 보전하기 위해 만들어진 실험정원에는 요즘 산솜방망이가 별처럼 땅에 박혀 있다. 

산솜방망이. 이른 봄에 틔울 싹을 보호하기 위해 털을 잔뜩 뒤집어쓰고 겨울을 난다. [사진=허태임(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
산솜방망이는 백두산을 비롯하여 몽골과 러시아의 추운 고산지대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적응한 식물이다. 수목원의 실험정원에는 요즘 산솜방망이가 별처럼 돋아난다. [사진=허태임(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

우리나라의 노지에서 겨울을 나는 식물은 대부분 뿌리에 에너지를 비축하느라 잎도 줄기도 다 시드는 편이다.

이 계절에 돋보이는 식물이 ‘돌나물과’ 친구들이다.

묵은 가지는 시들지라도 뿌리에서 밀어 올린 어린 싹이 땅 가까이에 바짝 붙어 메마른 겨울 정원에서 홀로 잎을 달고 있다. 살기 위해 초록은 과감하게 포기한다.

햇빛과 태양열에 의한 온기, 적당한 수분이 뒷받침되어야 식물은 광합성을 통해 영양분을 생산한다.

하지만 그 무엇 하나라도 아주 부족해질 때 식물은 엽록소 생산에 드는 힘을 아껴서 생존에 투자한다. 그것은 단풍이 드는 원리와 같다.

혹한에 살아남기 위하여 내 집 앞마당의 ‘돌나물과’ 식물 무리는 초록을 잊은 지 오래다.

하지만 절대 잎을 저버리지 않는다. 물든 모습으로 봄날의 번식을 준비한다.

그만큼 생명력이 강한 친구들이다.

낮이 길어지고 일조량이 늘어 온기가 찾아들면 단풍든 그들 잎에 초록이 내려앉을 것이다.

강인한 생명력은‘돌나물과’식물의 주 무기다. 척박한 돌 틈에서 잘 자란다. 그래서 이름도 돌나물이다.

흙은 그 작은 입자 사이사이에 수분을 머금기 때문에 식물은 땅 속 뿌리를 최대한 활용해서 비교적 편안하고 안전하게 수분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덩어리로 존재하는 돌무더기 틈에서는 다른 전략을 취해야 한다. ‘돌나물과’ 식물은 제 몸 안에 수분을 되도록 많이 비축하는 것이다.

잎의 식감이 좋아서 이른 봄 즐겨 먹는 식물 돌나물. 그 두툼한 잎은 수분을 가능한 많이, 그리고 최대한 오래 저장하기 위해 적응한 결과이다.

묵은 가지는 시들지라도 땅 가까이에 새순을 달고 겨울을 나는 ‘돌나물과’ 식물 기린초. 춥고 일조량이 짧은 겨울에는 영양분이 충분하지 않아 엽록소 생산을 줄인다. 잎이 붉게 물든 이유다. [사진=허태임(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
기린초. 낮이 길어지고 일조량이 늘어 온기가 찾아들면 잎은 차츰 초록을 되찾는다. [사진=허태임(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

내가 산과 들에서 만나는 ‘돌나물과’ 식물은 주로 ‘기린초’다.

기린초의 혈통을 나타내는 속명 (학명의 첫 단어)은 ‘Sedum’이다. 라틴어 ‘sedeo’에서 온 것인데 바위 주변에서 자란다는 뜻이다.

기린초라는 우리 이름은 낯설어도 ‘세듐’은 요즘 너무 핫하다. 다육식물로 인기가 높기 때문이다.

식물탐사로 종종 만나게 되는 태백기린초. 백두대간을 따라 이어지는 큰 산에 드물게 자란다. 샛노란 꽃이 오종종 모여 피고 그 둘레에 두툼한 잎이 장식처럼 돌려난다. [사진=허태임(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

앞서 소개한 산솜방망이와 ‘돌나물과’ 식물 세듐처럼 척박한 환경에서 스스로 수분과 빛을 최대한 얻을 수 있도록 적응한 식물을 통칭해서 다육식물이라 부른다.

혈통이 다르고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다른 장소에서 살지만 극한 환경에 살아남도록 진화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심지어 사막에서도 말이다.

다육식물로 인기가 높은 리돕스는 아프리카 나미브 사막이 고향이다.

대서양을 따라 길게 이어진 사막은 아프리카에서도 가장 건조한 지역에 속한다.

나미브는 원주민들의 언어로‘사람이 없는 땅’ 또는‘아무것도 없는 땅’을 뜻한다. 자신의 몸에 물을 저장하는 방법을 고안해 낸 리돕스는 그곳에서 살아남았다.

잎의 모양도 구조도 수분을 체내에 보관하기 위해 정확하게 맞춰줘 있다. 생존 전략은 구체적이고 치밀하다.

잎의 모양은 말발굽을 뒤집어 땅에 꽂은 형상인데, 부피에 대한 표면의 비를 줄여서 물을 머금기 가장 적절한 모양을 택한 것이다.

사막의 강한 자외선에 맞서 수분 소실을 어떻게든 막기 위해 표면을 최대한 두껍게 유지한다.

내부 조직은 수분을 저장하기 위해 구조적으로 간소해졌다.

통기 기능을 하는 조직을 없애거나 감소시켜 몸 안에서 일어나는 수분 소실을 완벽하게 차단한 것이다. 덕분에 물을 품고 있는 리돕스는 사막의 작은 오아시스와도 같다.

또한 포식자의 눈에 띄지 않아야 한다.

리돕스가 주변의 돌과 비슷한 색깔과 모양을 하고 있는 이유다.

리돕스(Lithops)라는 속명(학명의 첫 단어)은 돌을 닮았다는 뜻으로 고대 그리스어 lithos(돌)와 ops(얼굴)가 합쳐진 말이다. 영어로는 조약돌 식물(pebble plants) 또는 살아있는 돌(living stones)이라 부른다.

그들의 보호색은 단순한 의태의 기능만이 아니다. 수분 소비를 최소화하기 위해 어둡고 서늘한 곳, 즉 땅 속 뿌리 근처의 잎에서 광합성을 한 결과다.

식물의 녹색을 발현하는 기관인 엽록체가 땅 속 잎에 모여 있기 때문에 녹색의 잎은 지하에 은신하게 되었다. 지상부의 잎이 초록을 얻지 못하는 이유다.

리돕스 줄리(Lithops julii). 마치 말발굽이 땅에 박힌 모양이다. 자신의 몸에 물을 저장하는 방법을 고안해 낸 덕에 사막에서의 생존에 성공했다. 주변의 환경에 맞춰 보호색을 한 2장의 잎 사이에서 흰 꽃이 핀다. [사진=Janine Hairan]

아프리카 최남단 해안가의 절벽에 사는 다육식물 하워시아(Haworthia)는 조금 다른 방법을 택했다.

수분을 보호할 수 있는 바위 틈 그늘진 곳을 찾아 자리를 잡았으나 빛이 문제였다.

최소한의 빛도 최대한 흡수할 수 있도록 고민한 결과, 하워시아는 동서남북 어디에서도 빛을 고루 받을 수 있는 각이 진 원통형 모양을 갖게 되었다.

잎의 표면은 빛이 잘 통과할 수 있도록 투명한 구슬처럼 설계되어 있다.

국내에서 그 넓은 태양열판을 설치하기 위해 애먼 산을 깎는 모습을 마주할 때 나는 이 작고 위대한 식물을 생각한다.

하월시아. 동서남북 어느 방향에서도 빛을 고루 받을 수 있도록 각이 진 원통형 모양이다. 잎의 표면은 빛이 잘 통과할 수 있도록 투명한 구슬처럼 설계되어 있다. 다육식물 중 드물게 그늘을 좋아하는 식물이다. 곁에 둘 때 참고하면 좋다. [사진=World of Succulents]
알로이놉시스. 아프리카 최남단이 고향이다. 다각형의 두툼한 잎이 옹기종기 모여나는 게 특징이다. 잎의 노출 표면적을 감소시켜서 수분 손실을 막기 위한 전략이다. [사진=World of Succulents]

코스타리카, 콰테말라를 비롯하여 아메리카의 주요 커피 산지와 고향이 같은 에케베리아는 국내에서 가장 익숙한 다육식물이다.

경기도농업기술원 선인장다육식물연구소의 소식에 따르면 국내에서 재배되는 것으로 추정되는 전체 다육식물 가운데 에케베리아가 차지하는 비중은 70%나 된다고 한다.

연구소는 일찍이 2012년부터 다양한 에케베리아 신품종을 개발하고 재배농가에 보급하고 있으며 해외 수출도 한다.  

에케베리아는 우리 식물 연화바위솔을 닮았다. 일본에만 자라는 식물로 여겼었는데 1977년 제주대학교 이종석 교수팀이 서귀포 해안가에서 자라는 것을 학계에 보고하며 국내 분포가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절벽에 붙어 자라는 모습이 마치 연꽃 같다고 해서 발표 당시 바위연꽃이라 이름 붙였으나 식물분류학자들에 의해 연화바위솔로 정리되었다.

세상에 알려진 후로 제주도를 비롯하여 강원도 동해안 등지에도 종종 발견되었다.

하지만 사람 손이 닿는 자리에 나던 개체는 보이는 족족 채취당하다 보니 지금은 아주 보기 드문 식물이 되었다.

겨우 살아남은 개체만이 사람을 피해 해안가 절벽에 숨어 산다. 

잎이 푸른빛을 띠어서‘파랑새’라는 이름을 가진 에케베리아 품종이다. [사진=International Crassulaceae Network]
연화바위솔. 국내에서 인기있는 다육식물로 에케베리아를 닮았다. [사진=허태임(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

연화바위솔을 불법으로 뜯던 검은 손의 정체는 2018년 캘리포니아 북부지역의 조용한 해안마을 멘도시노(Mendocino)에서 확인되었다.

그곳에서 다육식물 두들레야를 불법으로 채취하여 밀수하던 2명의 한국인이 체포된 것이다.

2018년 4월 27일 자 <가디언>지 환경칼럼은중국과 한국에서 인기가 급증하는 다육식물 때문에 고도로 조직된 국제 밀수조직이 캘리포니아의 두들레야를 불법 채취했다는 소식을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가디언>지는 두들레야를“밀수에 노출된 캘리포니아 힙스터 식물”로 소개하며 그들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미국에서는 다육식물이 진부한 소재가 되었으나 한국과 중국에서는 ‘다육붐’이 일고 있다며 특히 한국의 주부들이 다육식물 수집에 열광하여 부부 사이의 불화가 다육이에서 비롯된다는 다소 조롱 섞인 문장을 싣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중국의 이른바 힙스터들은 한국에서 유행하는 모든 것을 좇는다는 한 강사의 글을 인용하며, 중국에서 다육식물의 인기도 그 연장선에 있다는 견해를 담았다. 

두들레야. 캘리포니아 멘도시노에서 2018년 3월에 체포된 한국인 2명은 수천여 포기의 두들레야를 불법으로 채취했다. 자연에서 수십 년 넘게 자란 것들이었다. [사진=Jared D. Margulies]

2019년 2월 12일 <더뉴요커(The Nwe Yorker)>지는 “다육식물-밀수업자가 캘리포니아를 습격하다”라는 기사에서 <가디언>지의 같은 기사를 소개하며 다육식물의 불법 채취와 밀수에 대비하기 위해 밀수업자들에 대한 강력한 처벌과 암시장을 파괴해야 한다는 전문가의 의견을 싣기도 했다.

그 외에도 이 사건을 마약 밀수조직에 비유하며 캘리포니아 어류 및 야생 동물국에서는 두들레야를 가려내는 탐지견 훈련에 돌입했다는 기사도 보인다.

그리고 중국, 일본인 등 다육식물을 불법 채취한 다른 아시아인들의 사건이 몇 건 더 보고되기도 했다. 

한국인의 다육식물 밀수사건은 학계에서도 주목했다. 불법적인 야생거래에 새로운 종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자연과 인류를 생태학적이고 진화적인 관점에서 폭넓게 해석하고 논의하는 학술지 <Frontiers in Ecology and Evolution>에는 2020년 10월 23일에 “한국의 주부와 힙스터들이 새로운 식물 밀수를 주도하는 건 아니다”라는 주제의 논문이 게재되었다.

미국의 앨라배마대학교 지리학과의 Jared D. Margulies 교수는 한국인의 다육식물 밀수사건의 원인을 명확히 파악할 것을 제안하였다.

한국의 다육식물의 문화를 객관적으로 분석하여 밀수사건으로 야기된 미국 내의 추측성 원인 분석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를 제시한 것이다. 

그는 한국인 다육식물 밀수사건에 대한 보고가 부정확하거나 불완전했다고 평가한다.

이국적인 다육식물에 열광하는 동아시아의 현재 흐름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미국의 뉴스 보도가 한국의 다육식물 열광을 코뿔소 뿔이나 코끼리 상아 밀수와 비교하는 것은 과장이라고 지적한다.

소비자의 수요에 대한 이해 없이 검증되지 않은 가설로 해석된 결과라는 것이다.

한국은 이미 두들레야를 개발하고 증식하는 체계를 갖추고 있고 국내에서 이미 합법적인 시장이 형성되어 있기에 불법 거래의 이유를 정확히 파악하여 그들의 수요를 알아내고 그 시장에 뛰어들기 위한 선제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자생지 보전과 시장 확보를 동시에 꾀할 수 있다는 견해다.

불법 거래가 이루어지는 배경과 동기를 이해할 때 불법 야생 거래(IWT)를 효과적으로 줄일 수 있고 지속가능한 야생 생물 거래를 이끄는 힘을 얻을 수 있다고도 했다.

이를 위하여 생물학자, 범죄학자, 지리학자와 인류학자 간의 학제 간 논의와 참여가 필요하다고도 덧붙였다.

연화바위솔과 두들레야를 불법으로 뜯던 검은 손은 2019년 남아프리카에서도 확인되었다.

미국에서 두들레야를 불법으로 채취한 혐의를 피하기 위해 아프리카로 도피한 한국인이 그곳의 다육식물 코노피툼(conophytum) 6만 여 개 이상을 불법으로 채취하다가 체포된 것이다.

2020년 2월 1일자 남아프리카공화국 현지의 신문 기사를 통해 그 중 일부는 최소 200년이 넘었고 350년 이상 된 것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현지의 소식통은 야생 생물의 불법 거래를 마약 조직의 범죄와 비교하기도 했다.

식물은 자연이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이 계산할 수 없을 만큼 가치 있는 것이고, 따라서 식물의 불법 채취와 불법 거래는 마약 밀거래 보다 더 무거운 범죄일 수도 있다고 전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일어난 그들의 범죄 소식은 아직도 한국 언론에 도착하지 못한 것 같다.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을 극복한 다육식물은 지구의 극한 환경에서도 살아남았다. 역경을 견뎌낸 그들에게 신은 강인한 생명력을 선물했다.

불법채취를 일삼는 어떤 인간은 그 생명을 단 몇 분 만에 도려내고 만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신의 존재를 자꾸만 생각하게 된다.

무심코 키우던 당신의 다육이에 대한 마음이 돌연 복잡해지거나 한껏 간절해지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