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중 성추문 사태를 접하며

[트루스토리]

김형준 본지 편집위원
 
박근혜 정부는 4대악 근절을 목청 높여 외쳤다. 특히 성범죄에 대해선 ‘여성 대통령’ 답게 무섭고 매서웠다. 이명박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못생긴 여자를 골라야 서비스가 좋다”는 취지의 이른바 ‘마사지걸’ 발언을 해서 논란을 겪었던, 그런 추악한 과거는 박근혜 시절에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대한민국 여성들은 믿었다. 국정원 댓글 사태 때도 진위 여부보다 여성의 인권부터 강조했던 박 대통령이었다. 재벌로 상징되는 ‘갑’의 횡포를 차단하고 경제민주화를 추진해 국민통합을 만들어내겠다는 믿기지는 않지만 그럴싸한 약속도 했다. 그간 우리 국민이 수차례 속았던 것을 생각하면 박근혜 정부도 똑같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한국 역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은 달라도 뭔가 다를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였다. 박근혜 정부는 이명박 정부 보다 더 위험하다. 뽑아서는 안될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은 기분이 들 정도다. 출범 초 ‘밀봉· 불통’ 인사가 문제로 지적받을 때 ‘잠깐의 위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기우였다. 박 대통령과 현 정부의 구성원들이 국정운영 과정에서 보여준 소통력과 내부 자정 능력의 취약함은 살얼음판 수준이다. 그래서 ‘분명히 큰 사고가 터질 것’이라고 국민은 예견했다. 언론을 탄압하고 주진우 기자를 체포하더라도, 정상적인 언론은 정상적으로 돌아가기 마련이다. 종편과 조중동이 열심히 박근혜 정부의 뒤치다거리를 해줘도, 국민은 살아 있고, 언론 역시 살아 있다. 그리고 미디어는 더 이상 ‘기존의 10대 언론’으로 통용되지 않는다.

이제는 국민이 기자다. SNS의 힘 때문이다. 숨길 수 있는 게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다. 그런 까닭에 이번 박근혜 대통령의 한미 정상회담 과정에서 발생한 윤창중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문 사태는 박근혜 정부가 얼마나 기형적으로 탄생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가장 작은 계기가 되고 있다. 워싱턴 D.C. 경찰 보고서에 따르면, 피해 여성은 워싱턴DC 백악관 인근의 한 호텔 내에서 “(윤창중이) 허락 없이 내 엉덩이를 '움켜쥐었다'(grabbed)”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 졌다. 그리고 윤창중은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공직기강팀 조사에서는 피해 인턴 여성의 “엉덩이를 만졌다”고 진술했으며, 인턴 여성이 그의 숙소인 워싱턴 D.C 소재 호텔방으로 올라 왔을 때 자신이 “팬티를 입고 있지 않았다”는 점도 시인한 것으로 알려 졌다. 이는 대한민국 언론이 보도해서 전 세상이 알게된 뉴스가 아니다. ‘미씨 유에스에이’(http://www.missyusa.com)가 실질적인 언론 역할을 했다. 만약 이 사건이 이 사이트에 올라오지 않았고, 이게 공론화 되지 않았더라면 피해여성은 영원히 권력의 힘에 의해 울고만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 곳에 가입한 모든 여성들에게 진심으로 박수를 보낸다.

그런데 그 이후부터가 조금 수상하다. 언론을 통해 이슈화가 됐으면 용의자로서 사법당국의수사를 받고 처벌을 받아야 하는 게 정상인데, 우리나라 대변인과 청와대가 보여준 태도는 특별했다. 일단 그는 ‘정상회담’에 오점을 남기지 않기 위해 부랴부랴 귀국했다. 이 과정도 이상하지만, 윤창중은 청와대 조사에서 인턴 여성의 엉덩이를 만진 것도, 그리고 노팬티차림 이었다는 것도 시인했다. 그런데 그는 기자회견을 자청해서는 이 사실을 모두 번복했다. 오히려 여성 인턴을 ‘미친년’으로 만들었다. 마치 그녀가 자신을 유혹한 것처럼 포장했다. 그녀가 업무 능력이 부족한 것처럼 평가 절하했다. 나는 무죄이고 여성 인턴은 유죄인 것처럼 기자회견을 강행했다. 피해 여성을 두 번 욕보인 셈이다.

백번 양보해서 여자의 허리를 툭 치는 행위는 그렇다면 괜찮다는 이야기인가. 듣도 보도 못한 논리로 언론 앞에 그는 섰다. 그런 그가 한때 한국의 언론인이었다니 믿어지지 않는다. 그가 미국에서 이 정도였다면 한국에서 어떤 행동을 보였을지 상상이 간다. 가이드의 방문은 상상도 못했다고 했다. 그래서 속옷 차림으로 문을 열었다고 했다. 그런데 노팬티차림이었다고 왜 청와대에서 진술했을까. 지킬박사와 하이드인가. 오락가락 한다. 정신병이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살다보니 이렇게 기막힌 이중 플레이를 접하게 된다. 이명박도 이러진 않았다. 감히 어떻게 이 같은 허섭스레기가 대한민국 청와대 대변인의 자리에 올랐을까. 보통 문제가 아니다.

이건 윤창중의 문제가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1차적 책임이 있다. 왜 그런데 사람들은 박 대통령에게 사과할까. 모순이다. 국격을 상승시키기 위해 방미한 과정에서 발생한 수상한 사건은 윤창중 성추문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박 대통령은 제너럴 모터스(GM) 회장을 만난 자리에서 “통상 임금 문제를 꼭 풀겠다”는 답변을 했다. 이는 외국 투자자가 한국의 대통령이 어떻게 나오나, 테스트를 해보는 과정에서 ‘맞장구를 치면서’ 자기 나라 대법원 판결을 무시하는 초법적인 발언이다. 취임 이래 박 대통령은 신자유주의적 ‘줄푸세’ 정책과 경제민주화를 요리저리 잘 섞어서 국민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정책으로 일관해왔다. 이런 가운데 박 대통령의 이번 통상 임금 문제 발언은 ‘친재벌’ 기조를 지금 보다 더욱 더 강화시킬 것으로 심히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윤창중 성추행 사건으로 이런 중차대한 경제민주화 정책이 수면 아래로 사라지게 될까 걱정스럽다.

한때 우리 사회에는 ‘선진화’가 붐을 이루었다. 산업화도 끝났고, 민주화도 끝났으니 ‘선진 대한민국’을 만들어보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지금 선진국으로 가긴 틀렸다. 이명박 정권 때부터 이어져 온 ‘갑의 정치’는 국민을 피곤하게 하고 스트레스를 주며 ‘갑들의 세상’을 만들었다. 그것도 모자라 미국까지 건너가 대한민국의 존엄을 욕보였다. 대통령은 열심히 세일즈 외교를 하고 있을 때 ‘청와대 대변인’이라는 작자는 ‘대변’스러운 짓을 했다. 여성 인턴사원이 자신의 딸이었다고 그랬을까. 여성 인턴도 급여를 받기 위해 땀 흘려 일하는 노동자였다. 대한민국 권력층이 여성 노동인권에 대해 ‘창녀’ 취급하고 있다는 것을 이번 일련의 소동을 보며 느낀 소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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