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 무장세력, 사용하던 무기 대신 미군이 남기고 간 무기로 무장
아프간 곳곳서 사상자 속출...'反탈레반' 아프간인·협력자 사냥 잇따라

지난 18일 탈레반 무장대원들이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서 미제 무기인 M16 소총을 들고 있다. [사진=카불 AP/연합뉴스]

【뉴스퀘스트=김보민 기자】 아프가니스탄이 이슬람 무장단체 탈레반에 함락된 뒤 미군들이 남기고 간 무기로 인해 더 고통을 받고 있다. 탈레반이 미제 군용 무기를 압수하고 그 총구를 민간인들에게 겨누면서다.

19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은 익명의 미 정부 관리 및 전현직 관계자들을 인용해 탈레반이 아프간 군대가 가진 모든 미제 무기를 차지하게 됐다고 보도했다.

종류는 군용기부터 총기, 통신장비, 야간용 투시경까지 다양하다.

이는 모두 아프간을 지원하던 미국이 전달한 무기들로, 모조리 탈레반의 소유가 됐다고 로이터는 말했다.

공식적으로 미국이 지원한 무기의 규모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관계자들은 탈레반이 2000대 이상의 장갑차와 블랙호크 헬기 등 40개가 넘는 군용기와 드론을 가져갔다고 설명했다.

이외 M16 소총 60만 정, 통신장비 16만 2000대, 야간투시경 1만6000개도 압수했다고 주장했다. 노획한 무기는 830억달러(약 97조원) 상당으로 추정된다.

실제 탈레반은 아프간 수도 카불 지역을 순찰하는 과정 속에서 M-16와 M4 카빈 등 미제 무기를 들고 있는 모습이 자주 목격됐다. 기존에 사용하던 러시아제 AK-47가 포착되는 사례는 줄고 있다.

마이클 매콜 미 하원 공화당 외교위원회 간사는 "우리는 이미 아프간 군에서 압수한 미제 무기로 무장한 탈레반 전사들을 봤다"라며 "중대한 위협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탈레반은 아프간에서 철수한 미군이 남긴 무기들의 등록 절차도 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로이터는 이 모습이 지난 2014년 이라크 군대로부터 무기를 빼앗은 IS(이슬람국가)를 연상시킨다고 표현했다.

관계자들은 이 무기들이 아프간 시민들을 위협하고 있고, 미국 등 다른 국가들을 압박하는 데 쓰일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우호적인 관계의 러시아와 중국에 넘겨질 가능성도 제기됐다.

19일 아프가니스탄 독립기념일에 맞춰 시민들이 저항 시위를 벌이고 있다.
19일 아프가니스탄 독립기념일에 맞춰 시민들이 저항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막강한 무장 수준을 갖춘 탈레반은 시민들을 향해 총격을 불사하고 있다.

로이터통신이 인용한 NATO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15일 이후 카불 하미드 카르자이 공항 안팎에서 총에 맞거나 압사해 숨진 사람은 최소 12명이다. 아프간 매체 톨로뉴스는 최소 40명이라고 보도했다.

아프간 독립기념을을 맞아 지난 18일부터 이틀간 저항 시위를 벌인 시민들도 총구를 피할 수 없었다.

동부 잘랄라바드에서만 4명 이상이, 쿤나르주에서는 3명이 총격에 목숨을 잃은 것으로 알려졌다.

부역자 색출에도 혈안이 올랐다.

뉴욕타임스(NYT)가 입수한 비공개 유엔 보고서에 따르면 탈레반은 현재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군대에 협력한 것으로 추정되는 아프간인들을 찾고 있고, 이들의 가족까지 위협하고 있다.

보고서는 현재 탈레반 무장대원들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명단에 오른 사람들이 자수하지 않으면 "가족을 살해하거나 체포할 것"이라고 협박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탈레반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취한 언론도 탄압하기 시작했다.

독일 공영방송 도이체벨레는 탈레반이 소속 기자를 잡기 위해 집에 습격해 가족 1명을 사살했다고 19일 보도했다. 당시 해당 기자는 이미 독일로 탈출한 상태였다.

매체에 따르면 아프간 현지 라디오방송국 '팍티아 가그'의 대표도 탈레반에 의해 살해됐다. 독일 매체 디차이트에 기고문을 올리는 한 번역가도 총살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AFP통신이 받은 유엔 위협평가자문단의 보고서에 따르면 탈레반은 체포 우선순위 명단을 갖고 대상자 색출 작업을 벌이고 있다.

현재 탈레반은 정보원들을 신속히 모집하고 있고, 유일한 탈출구인 카불 공항으로 가는 길을 막고 검문을 실시하고 있다.

19일(현지시간) 영국 인디펜던트는 아프가니스탄의 한 여성이 아기라도 살리기 위해 철장 너머로 자신의 아기를 던지는 모습(왼쪽)을 보도했다. 오른쪽 사진은 카불공항에서 미군이 아프간인의 간절한 요청에 아기만 구조하는 모습. [사진=트위터 갈무리·로이터/연합뉴스]

한편 아프간에서 미군 작전을 총괄한 퇴역 장군 조셉 보텔은 "탈레반에게 미제 무기는 '트로피'와 비슷하다"라고 말했다.

무기의 성능을 떠나 이를 노획하고 사용하는 과정 속에서 일종의 '승리의 훈장'과 같은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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