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근의 科技누설(17)

【뉴스퀘스트=김형근 과학전문기자】 세균이나 바이러스에 의해 일어나는 질병에 대한 저항성은 당연히 건강한 젊은이들에게 높다.

그러나 1918년경에 유럽을 비롯해 미국까지 휩쓴 스페인 독감은 이상하게도 많은 건강한 젊은이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의학계의 미스터리 중 하나다. 

스페인 독감과 코로나19 바이러스는 형제지간

그러나 지난 100년이라는 오랜 시간 동안 의학이 눈부시게 발전했지만 이에 대해 만족할 만한 해답을 주지 못하고 있다. 왜 오늘날 코로나19 바이러스와 가까운 형제라고 할 수 있는 스페인 독감은 왜 젊은이를 특히 좋아했을까? 지금도 풀리지 않은 거대한 미스터리이다.

희생자 가운데 젊은이가 많다는 이유를 전쟁에서 찾는 사람들도 있다. 전쟁 중에는 환경이나 조건이 열악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못 먹어서 영양이 부족하고 위생시설이 좋지 않아 바이러스 감염에 취약했다는 설명이다.

김형근 논설위원 과학평론가

이 설명은 설득력이 없다. 전쟁 중에는 국가의 운영 시스템이 동원 체제이기 때문에 병사들은 오히려 최고의 의료진과 의약품을 보유한다. 고립되는 등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민간인들보다 의료 보급이 더 풍부하다.

따라서 열악한 환경이나 의료시설 부족으로 젊은이들이 많이 죽었다는 주장은 맞지 않다. 미국은 1차대전 참전국이지만 본토에는 아무런 전쟁 없이 평온했다.

그러나 당시 미국은 68만 명이 스페인 독감으로 목숨을 잃었다. 감염자의 3분의 1로 사망률이 33%였다. 그러나 미국에서도 어린이나 노인들보다 젊은이들이 훨씬 더 많이 죽었다.

다소 설득력이 있는 주장은 있다. 당시 이렇다 할 정보전달 체계가 없었고 통계 관리도 미비했으며, 또한 1차대전이 막 끝나갈 무렵이라 전쟁 중에 사망한 젊은이들이 독감 희생자에 포함됐을 거라는 추측이다.

상황이 어쨌든 적어도 수치에서 다른 질병과 스페인 독감으로 젊은이들이 더 많이 죽었다는 지적에 토를 다는 학자들은 거의 없다.

또 다른 주장도 있다. 병력(病歷)은 저항력을 키운다. 노인들은 병약하지만 독감을 수십 차례 겪으면서 면역 능력이 생겼고 젊은이들은 그런 과거 경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면역 능력이 부족해서 많이 사망했다는 주장이다.

확실한 이유는 미스터리… 분명한 것은 젊은이들이 훨씬 많이 죽어

의학적으로 보면 얼핏 그럴 듯하게도 보인다. 그러나 이 주장도 설득력을 잃는다. 젊은이들과 생활을 줄곧 같이 해온 노인들의 면역 능력이 30년 정도 많다고 해서 특별히 더 강하다는 것은 생물학적 차원에서 받아들이기 힘든 억지 논리다. 면역력은 나이가 들면서 퇴화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논리다.

그러면 왜 젊은이들이 훨씬 더 많이 죽었을까? 이에 대한 충분한 이유나 근거가 될 수는 없지만 과학자들은 그 이유를 부분적으로 ‘사이토카인 폭풍(cytokine storm)’이라는 현상에 돌렸다.

이것은 바이러스 등 외부 병원체가 인체에 들어왔을 때 체내 면역 물질인 사이토카인이 과도하게 분비돼 오히려 정상 세포를 공격하는 면역 과잉반응 현상을 일컫는다.

인체 내에 외부에서 침투한 바이러스에 대응하기 위한 사이토카인의 지나친 분비로 대규모 염증 반응이 나타나고 이 과정에서 정상 세포들의 DNA가 변형되어 일어나 신체 조직을 파괴하는 것이다.

일부 과학자들은 이 사이토카인 폭풍 현상이 높은 사망률로 20세기 최악의 감염병 사례인 스페인 독감의 주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1918년 발병한 이래 5000만명, 많게 2억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70% 이상이 25~35세 젊은 층이었다.

사이토카인 폭풍과 관련해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감염되더라도 중증으로 발전하는 환자는 따로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관심을 끌고 있다. 여기에는 나이가 전혀 관계가 없다. 선천적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1918년부터 유럽을 강타한 '대재앙' 스페인 독감은 5000만명, 많게는 2억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그러나 사망자의 70%는 질병 저항성이 강한 젊은 사람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 wikipedia] 

“나이에 관계없이 심각한 증상 환자 따로 있어”

요크 의과대학의 연구원들은 코로나19에 감염된 이후 심각하고 치명적인 상태를 보인 환자의 혈액에서 독특한 "표식(indicatoiors)"을 확인했다. 따라서 앞으로 의사들은 누가 위독하게 될 것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간단한 진단 검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지난 21일 학제 간 저널 ‘아이사이언스(iScience)’에 게재된 이 연구에 따르면 첫 째와 두 번째 대유행 동안 병원에 입원한 160명 이상의 환자를 대상으로 한 혈액 샘플 검사를 통해 이루어졌다.

연구팀은 환자들에게서 관찰된 압도적인 면역 반응을 유발하는 혈액 내 단백질인 사이토카인(cytokines)과 케모카인(chemokines)의 수치를 측정했다.

또한 마이크로RNA라고 불리는 작은 RNA도 측정했다. 이 RNA는 여러 질병에서 그 단계나 심각성을 잘 나타내는 것으로 병에 걸린 조직의 상태를 잘 반영한다. 연구팀은 이 세가지가 코로나19의 중증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공동 연구자인 요크 의과대학의 나탈리 시그노렛(Nathalie Signoret) 박사는 "대유행 초기에 연구원들은 나쁜 결과의 코로나19 환자에서 높은 수준의 염증성 사이토카인, 즉 면역 체계 반응을 조절하거나 변화시키는 분자를 관찰했다”고 밝혔다.

파우치 박사 "감염되면 젊은이 후유증 훨씬 오래 가" 경고 

그러면 이러한 사이토카인 폭풍이 젊은이들에게만 많이 일어날까? 이에 대한 과학적 증거는 없다. 그러나 젊은이들도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8월 코로나19를 경미하게 생각해 마스크를 거부하고 나이트클럽을 출입을 하는 젊은이들에게 핀잔이라는 주려는 듯 "젊은 사람들이 코로나19에서 회복돼도 후유증이 상당할 것"이라고 경고한 미국 전염병 전문가인 앤서니 파우치 박사는 이러한 가능성을 염두에 두었는지도 모른다.

과학 매체 사이언스 위크(Science Week)는 이렇게 지적했다. “특히 눈에 보이지 않는 하등 생물인 바이러스의 진화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진행된다. 아마 몇 초 간격으로 진화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가운데는 젊은이만 공격하는 바이러스도 생길 수 있다”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 재생 프로젝트를 이끈 제프리 토벤버거 박사가 “자연은 눈에 보이지 않는 무서운 테러리스트가 될 수 있다”고 한 말을 실감나게 하는 대목이다. 지금 세계를 경악시키고 있는 코로나19를 두고 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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