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근의 科技누설(27)

【뉴스퀘스트=김형근 과학전문기자】 전례 없는 전염병 코로나19 대유행이 지구촌을 강타한 지난 2년 동안 숨가쁜 치열한 경쟁들이 전개돼 왔다. 바로 이를 치료하고 예방하기 위한 백신 개발이었다.

세계 다국적 제약업체들이 선점하고 있는 백신개발은 일단 효과적인 예방약을 개발하기만 하면 업체들이 돈방석에 앉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백신 개발만이 아니라 연구 경쟁도 치열

사실 화이자와 모더나를 비롯한 대형 제약업체들은 엄청난 달러를 벌어들였다. 백신만이 아니다. 치료약을 개발해 엄청난 돈을 거머쥘 수가 있었다.

김형근 논설위원 과학평론가

또 있다. 바로 코로나바이러스 정체와 실상 파악을 위한 과학자들 간에 연구 경쟁이다. 유명한 감염병 학자들이 자신이 속한 대학이나 연구기관만이 아니라 학자로써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한 경쟁이다. 앤서니 파우치 박사도 결코 예외가 아니다. 그의 경력이 바로 그 속에서 나온다.

영국과 미국을 비롯해 여러 곳에서 코로나19가 정점을 쳤다는 소식들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최근 오미크론 변종을 처음으로 발견한 남아프리카공화국 감염병 전문가들이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에 불만을 토로하고 나섰다.

요약하자면 자신들이 이미 먼저 주장한 ‘오미크론 변종의 1월 정점’설은 무시되고 미국과 유럽 전문가들이 주장한 연구만이 수용되고 있다며 코로나19 대유행 연구에도 인종차별주의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오미크론 변종이 감염 확산 속도는 빠르지만 기존의 변종들보다 “아주 약하다(dramatically milder)”는 초기 증거를 무시하고 서구의 전문가들의 연구만 수용한 서방 국가들을 비난했다.

남아공의 유명한 코로나바이러스 전문가 중 두 명은 최근 영국의 BBC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자신들의 연구에 대한 서구의 회의론은 "인종차별주의"로 해석될 수도 있고, 적어도 "아프리카에서 왔기 때문에” 거부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요하네스버그 대학의 백신 전문가 샤비르 마디(Shabir Madhi) 교수는 인터뷰에서 "서방의 고소득 국가들은 남아공과 같은 나라에서 오는 나쁜 소식만을 훨씬 더 잘 흡수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프리카의 좋은 소식을 전할 때 갑자기 회의론이 팽배해졌다"고 꼬집으면서 “나는 그것을 인종차별이라고 부를 것”이라고 말했다.

“서방세계는 오미크론 변종에 대한 우리의 정확한 연구를 무시했다”

남아공 정부의 전 코로나19 자문위원장이자 국제과학회의(International Science Council) 부의장인 살림 카림(Salim Karim) 교수도 거들고 나섰다.

"우리는(아프리카와 선진 서방) 서로에게 배울 필요가 있다. 우리의 연구는 엄격하다”고 강조하면서 “모두가 오미크론 변종에 대해 최악의 상황을 예상하고 있었고, 그것을 알지 못했을 때 그들은 우리의 연구가 과연 과학적인지에 대해 의문을 품고 회의적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연구는 오미크론 변종에 대한 관찰에 기여했다”고 밝혔다.

2021년 11월 말에 시작된 남아공의 오미크론 변종의 물결은 이제 미국과 유럽에서 정점을 치고 그 기세가 꺾이고 있다. 며칠 안에 전국적으로 ‘노 마스크’가 선포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봄 개학 이후 감염률이 다시 치솟을 수 있다는 우려도 여전하지만 전반적으로 국내 오미크론 감염 파동은 기존의 절반 수준으로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이러한 전망은 이미 남아공 과학자들이 예견했던 내용들이다. 아프리카의 과학자들과 의사들은 이미 오미크론 변종이 전염성은 높지만 델타 파동 때보다 훨씬 적은 수의 병원 입원이나 사망을 초래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를 공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데이터들은 서방 과학자들에 의해 회의론에 직면했다.

위트바테르스랜드 대학(University of Witwatersrand) 백신 및 감염병 분석학과 수석 연구원인 마르타 누네스(Marta Nunes)도 남아공 전문가들의 예측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고 지적했다.

"12월 초에 우리가 했던 예측은 여전히 유효하다. 오미크론 변종은 덜 가혹했다. 이 바이러스 변종은 인간 숙주에 적응하기 위해 계절성 바이러스처럼 진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세계보건기구(WHO)는 오미크론 변종을 '순한(mild)'이라고 부르지 말 것을 요구해 왔다고 남아공 전문가들은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12월 초는 높은 전염성 때문에 오미크론 변종은 전 세계적으로 쓰나미를 유발해 보건 시스템을 압도할 정도의 패닉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아공 전문가들은 그들의 자료와 연구를 계속 고수해 왔다. 카림 교수는 “사망률은 오미크론 변종과 전혀 다르다. 우리 연구에 따르면 사망률이 매우 낮았다. 최근 자료를 보면 델타보다 병원 입원이 4배 낮았고 환기장치가 필요한 환자 수도 비슷하게 줄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오미크론 변종이 훨씬 가벼운 바이러스라는 증거가 나오기 시작하는데 2주도 걸리지 않았다며 그 자료와 정보를 세계와 공유했을 때 회의적인 시각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WHO
세계를 휩쓸고 있는 오미크론 변종을 처음 발견한 것은 남아공의 과학자들이다. 그들은 또한 이 변종은 심각하지 않으며 한달 정도 지나면 정점을 거쳐 감기와 같은 계절성 질병으로 기세가 꺾일 것이라고 처음 예측했다. [사진=WHO]

인종차별은 바로 전염병에 대한 혐오에서 나와

그러나 남아공 전문가들은 자신들의 연구가 다소 부정적 영향을 끼친 것에 대해서도 인정했다. 다시 말해서 새로운 바이러스가 별로 문제가 없는 ‘순한’ 변종이라는 이유로 각국의 정부나 일반 시민들이 코로나19 방역에 느슨하게 대처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남아공 정부가 오미크론 파동 동안 더 엄격한 규제를 도입하기를 거부하고, 외국 정부가 이 지역에 엄격한 여행 금지를 처음 시행한 것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사실 전염병은 바이러스와 함께 혐오를 퍼뜨린다. 사회적 취약계층은 전염병의 위험에 더 쉽게 노출되고, 이 때문에 코로나19와 같은 대유행이 발생하면 약자와 이방인들은 혐오의 타깃이 된다.

전세계 코로나19 감염자 수가 2억만명을 넘어서면서, 지구촌 곳곳에서 인종차별과 외국인 혐오가 노골적으로 번지고 있다.

프랑스의 의료 전문가들은 코로나19 백신을 아프리카에서 실험하자고 제안하는가 하면, 중국은 해외유입 확진 사례가 늘자 외국인을 향한 혐오 시선을 보내는 등 인종차별의 형태는 각양각색이다.

사실 역사적으로 볼 때 인종차별의 역사는 전염병의 유행과 그 궤적을 같이 한다. 2003년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이 유행할 때는 중국과 ·아시아가, 2014년 에볼라 바이러스가 퍼질 때는 아프리카가 표적이 됐다. 전염병이 키운 공포는 결국 차별과 혐오로 번져간다.

그러나 남아공의 전문가들은 바이러스가 사람들에게서 근절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이제 이 바이러스와 함께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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