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 뗏꾼부부 위령비.
왼쪽 뗏꾼부부 위령비.

【뉴스퀘스트=글·사진 김재준(시인·전 경북산림환경연구원장)】 중앙고속도로를 달려 남제천 나들목, 영월, 평창, 큰 강을 따라 첩첩산중으로 간다.

 8월 17일 아침 일찍 나섰으니 그나마 덜 덥다. 동강으로 강물처럼 흘러들어 아침 8시쯤 큰물이 넘실거리는 강가에 작은 비석 '뗏꾼부부 위령비'. 

금슬 좋은 부부가 있었다.

남편은 뗏목으로 나무를 운반하는 뗏꾼, 비가 많이 내린 날 물에 빠져죽은 남편을 찾으려다 부인도 그만 빠져 죽었다.

바위를 안고 돌며 건너려 목숨을 잃었대서 마을 사람들은 '안돌바위'라 부르며 넋을 기려 비석을 세웠다.

바위에 손을 대고 기도하면 사랑이 이루어진다고 전한다.

길 위의 달팽이.
길 위의 달팽이.

아침 햇살에 굽이치는 강물, 가을 하늘처럼 분위기는 자못 썰렁하다.

백룡동굴매표소 주차장에 차를 댔지만 등산로 입구 문희마을 못 찾아 강줄기 따라 거꾸로 다시 올라왔다.

매미, 까마귀, 풀벌레 소리 요란하더니 잠깐사이 강물에 묻혀버리고 만다.

누리장나무 붉은 꽃잎은 동강에 나풀거리고 매미소리 지칠 줄 모른다. 

돌배나무 시멘트 포장길 걷는데 달팽이는 길 가운데 그대로 있는 건지 기는 건지? 하루 종일 기어가도 못 건너겠다.

돌배나무 이파리 강바람에 흔들리는 아침 8시 반쯤. 마을 주민에게 길을 물으니 다시 주차장 쪽으로 가라고 한다.

산길을 찾아 두리번거리며 오르니 짐차가 덜커덩 지나간다. 

“달팽이는 무사할까?” 

“……”

“치어 죽진 않았겠지.”

“……”

누리장나무.
누리장나무.

주차장까지 다시 돌아와 결국 20분을 낭비했다.

맑은 하늘과 산뜻한 공기를 마시며 왼쪽으로 표지판(백운산1.9킬로미터, 급경사1.6·완경사3.7)을 찾았다.

억지로 만든 것 같은 서낭당 지나 오솔길 따라 오른다.

노란달맞이꽃·참느릅·산수유·산뽕·물푸레·고추·고로쇠·말채·다래·박쥐·굴피·붉·신·소나무…….

누리장나무 붉은 열매는 하도 붉어서 검게 보인다.

8시 45분 갈림길에 박쥐나무 군락이다.

돌탑 갈림길.
돌탑 갈림길.

돌탑 이정표(직진3.2 완경사정상·오른쪽1.1 오른쪽정상·문희마을 0.8킬로미터)에서 오른쪽으로 간다.

누리장·박쥐·고추·신갈·꽃싸리·광대싸리·복자기·생강·팽·병꽃·난티·굴참·떡갈나무, 꼭두서니, 참취나물은 하얀 꽃을 피워 쉽게 지나칠 수 없다.

모든 산들마다 다양한 식물들이 자라지만 특히 이 근처에는 동강할미꽃이 유명한 곳이다. 

동강 할미꽃.
동강 할미꽃.

4월에 꽃 피니 지금은 볼 수 없다.

미나리아재비과(科) 여러해살이풀.

영월과 정선 동강 일대 석회암 바위절벽에 뿌리내려 하늘 보고 피는 것이 땅을 보는 여느 할미꽃과 다르다.

피면서도 자주·붉은자주·분홍·흰색 등 온갖 색깔을 띤다.

독이 있지만 뿌리는 이질·학질·신경통에 썼다.

할머니 흰머리를 닮아 노고초(老姑草)·백두옹(白頭翁), 우리나라에만 자라는 특산식물이다. 

삽주.
삽주.

“맴맴 매 에에~”

9시쯤 산조팝나무 흰 꽃을 보며 땀을 닦는데 매미소리 아직도 길게 운다.

여름철 매미는 길게 울지만 가을이 오는 듯 후렴구는 훨씬 짧아졌다.

산조팝·난티나무 군락지에서 낮선 부부를 만나 서로 인사하니 산에서는 모두 친구다.

땀은 흐르지만 가을바람 살랑살랑, 분홍빛 며느리밥풀꽃을 발아래 두고 이마를 닦는다.

삽주·머루·개산초, 우산나물은 뚜렷하게 이중 결각(缺刻)이다.

우산나물.
우산나물.
꼭두서니.
꼭두서니.

잠시 소나무 아래 앉아 한 모금 목을 축이려니 밑에는 개족도리풀, 신갈나무에 겨우살이 붙어살고 이산의 꼭두서니 잎은 작다. 

옛날 꼭두서니 뿌리로 빨간 물을 들이는데 썼다.

빨간색을 꼭두색이라 했다.

흰 꽃을 피운 네모난 줄기에 심장모양 넉 장의 잎이 돌려난다.

덩굴줄기가 까칠까칠해서 옷에 달라붙어 가지 말라고 꼭 두 손으로 옷깃을 잡는대서 꼭두손, 꽃잎이 아이의 곱은 손을 닮아 곱도손, 꼭두색을 물들인다고 꼭두서니, 새색시 입는 꼭두색 치마에서 꼭두각시가 됐다.

꼭두서니·갈퀴꼭두서니·덤불꼭두서니·우단꼭두서니·민꼭두서니·가지꼭두서니·큰꼭두서니·너도꼭두서니 등 종류도 많다.

말린 뿌리를 천초(茜草), 한약재로 오래 씹으면 혀를 자극하며 특유의 냄새가 있다.

코피, 월경, 관절에 썼다. 

생강·광대싸리·층층나무 뒤섞여 자라는데 광대싸리는 경쟁에서 밀려 수세가 약하다.

상층목으로 신갈나무, 곳곳에 복자기나무.

가을인가? 매미소리 처연하게 들리고 메뚜기도 나뭇잎에 올라타 널뛰기를 한다. 

9시 반, 올라가는 길이 험해선지 발목과 종아리가 뻐근하다.

안개와 구름이 날아다녀 이름대로 백운산, 정상에도 흐릴 것이다.

쉼터를 지나 복자기 큰나무를 만난다.

꿩의다리·까치수염·사초·산당귀·터리풀·배초향.

10분 더 올라 오래된 소나무 근처에 구름 날리니 아쉽지만 동강은 볼 수 없을 것이다.

잠깐사이 능선에 닿자(정상0.4킬로미터) 떡갈나무 가지에 부는 세찬바람은 문희마을(1.5킬로미터) 아래쪽에서 올라오는 강바람.   

백운산 정상.
백운산 정상.

이정표(정상왼쪽0.2·오른쪽 칠족령2.2·문희마을1.7·킬로미터)에서 만난 사람들은 아무것도 안 보인다고 일러준다.

능선으로 산조팝·난티·떡갈나무 지나 송장풀. 떡갈나무 이파리는 마치 신갈나무처럼 생겼다.

9시 50분 동강을 바라보며 능선 따라 백운산(白雲山 882미터) 정상, 평창군 미탄면, 정선군 신동읍 경계다.

산 아래는 비경(秘境)일 테지만 안개 날려 흐릿하다.

휘어진 동강 기슭, 난티·물푸레·층층·복자기·다릅나무가 지키고 떡갈나무는 크고 잘 생겼다.

겨우 칠족령이 보이고 햇빛은 들어갔다 나왔다 한다. 

흰 구름 산의 백운산은 방방곡곡에 같은 이름이 많다. 한자도 같다.

광양·포천·화천·함양·장수·의왕·성남·수원·용인·원주·제천·부산·밀양 등 같은 이름이 수십 곳에 이른다.

산 이름이야 높아서 흰 구름에 솟아 있다는 뜻이라 해도 백운동·백운마을·백운당·백운암·백운장·백운도사 등을 비롯해서 서원·마을·철학관·점집·작명소 이름으로도 많다.

흰 백(白), 구름 운(雲), 글자 그대로 흰 구름이다.

구름을 부리니 영통할 것이요, 구름은 이상향이니 속세를 떠난 달관의 경지이며 그런 세계다.

한곳에 머무르지 않고 구름같이 떠돌아다니는 사람, 신비의 상징.

불가에선 '수행승', '오가는 나그네' 뜻으로도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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