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 긴축 여파... SVB 파산, 美 역대 2위 규모 은행 파산
일각, 연준 기준금리 인상폭에 제동 걸렸다는 의견도
증권가 “금융 위기는 아닐 것, 소규모 은행 파산 이어질 가능성은 있어”

미국 실리콘밸리은행이 파산한 가운데 이번 사태가 국내에 미칠 영향이 주목된다. 사진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에 위치한 실리콘밸리은행(SVB) [사진=연합뉴스]
미국 실리콘밸리은행이 파산한 가운데 이번 사태가 국내에 미칠 영향이 주목된다. 사진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에 위치한 실리콘밸리은행(SVB) [사진=연합뉴스]

【뉴스퀘스트=남지연 기자】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이 파산한 가운데 이번 사태가 국내 경제에 미칠 영향이 주목된다.

미국에서 파산한 은행 가운데 역대 2위 규모인 데다 실리콘밸리은행이 그간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 스타트업의 자금줄을 역할을 해온 만큼 사태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다.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미국 내 스타트업의 자금줄 역할을 해온 미국 실리콘밸리은행이 최근 예금인출 사태 등으로 자금 흐름이 악화돼 파산했다.

실리콘밸리은행은 미국에 17개 지점을 두고 스타트업·기술기업과 주로 거래를 진행한 은행으로, 자산규모는 2090억달러(약 276조5000억원)로 미국 내 자산규모 16위권 수준이었다.

SVB 파산 사태는 지난 2008년 자산규모 3070억달러 규모의 워싱턴뮤추얼 은행 파산 이후 미국 역대 2위 규모의 은행 파산 사태다.

미국 정부는 SVB에 고객이 맡긴 돈을 보험 대상 한도와 상관없이 전액 보증하고 유동성이 부족한 금융기관에 자금을 대출할 방침이다.

이에 모든 예금주는 13일부터 예금 전액에 접근할 수 있으며, SVB 측은 손실과 관련해 납세자가 부담하는 비용은 없을 것이라고 성명을 밝혔다.

◆ SVB 사태 ‘긴축 사태 여파’로 발생... 연준 베이비스텝 밟나 ‘촉각’

SVB는 지난해 급격히 금리가 오르면서 큰 타격을 입었다. SVB는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초기에 국채수익률(시장금리)이 낮아지자 채권에 대규모 투자를 한 바 있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미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급격한 금리 인상을 단행하면서 채권수익률이 급등해 막대한 투자 손실로 자금난을 겪어 왔다.

이 가운데 지난해 연준이 공격적인 통화 긴축에 나서면서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IPO나 증자를 통해 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워졌다. 이에 고객들이 예금 회수에 나서면서 2021년 말 기준 1890억달러였던 SVB의 예금 규모는 2022년 기준 1730억달러로 감소했다.

자금난에 시달리던 SVB는 지난 8일(현지시간) 유동성 확보를 위해 미 국채 매각을 진행했고, 그 결과 18억달러(약 2조3814억원)의 손실을 본 것으로 전해졌다.

금리 인상으로 기술기업들의 돈줄이 말라버리면서 SVB로 유입되던 신규 자금이 끊기자 과거 비싸게 매입했던 채권을 낮은 가격으로 넘긴 것이다.

이에 주가가 폭락하고 뱅크런(예금 인출 사태)가 발생하면서 연방예금보험공사(FDIC)가 SVB 파산 절차에 착수했다.

황수욱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SVB은행은 일반 상업은행과 달리 자산 구성 중 채권 보유 비중이 높은 은행”이라면서 “▲스타트업 현금 소진에 따른 대규모 예금 인출 ▲예금 지급을 위한 채권 미실현 손실의 실현 ▲자금 조달 소식에 따른 신뢰도 저하로 뱅크런을 유발했다”고 설명했다.

SVB 파산 사태로 향후 미 기준금리 인상폭에 대한 전망은 더욱 불투명해졌다.

SVB사태가 연준의 통화 긴축으로 인해 실물 경제 둔화, 인플레이션 안정이 나타나는 과정이라는 측면에서다.

박준우 KB증권 연구원은 “지금은 연준의 긴축 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과정으로 해석해야 한다”면서 “연준의 긴축으로 기업이 어려움을 겪고, 기업이 고용을 줄이면 가계의 소비(수요)를 낮춤으로써 인플레이션이 낮아지는 과정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로 연준의 공격적인 긴축 재가속에 제동이 걸렸다는 의견이 나온다.

오는 21~22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베이비스텝(기준금리 0.25%포인트 인상)이 결정될 것이라는 낙관적인 판단이다.

이남강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SVB사태가 ▲단기자금의 유동성 프리미엄 확대와 그로 인한 금융여건 악화 ▲불확실성 확대 경로를 통한 실물 경제 위축 등이 연준의 목표 달성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만큼 3월 FOMC에서 0.25%포인트 인상에 무게가 실릴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11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에 위치한 실리콘밸리은행(SVB) 본사 입구 [사진=연합뉴스]
11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에 위치한 실리콘밸리은행(SVB) 본사 입구 [사진=연합뉴스]

◆ SVB 사태, 금융위기로 번지나... 증권가 “금융권 전반으로 확산하지는 않을 것”

현재까지는 SVB사태가 미국 은행 등 금융권 전반의 시스템 리스크로 확산되지 않을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시각이 우세하다.

이재만 하나증권 연구원은 “현재 상황이 전체 금융 위기로 전이되지는 않을 것이다”며 “미국 연방예금공사의 대응으로 예금보험 한도 안에서 인출이 가능하고 미국과 유럽 주요 시중은행의 유동성커버리지비율이 100% 상회하는 점 등이 그 이유”라고 말했다.

다만, 증권가는 소형 은행의 리스크는 커졌다고 보면서도 금융위기로 번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12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미국 시그니처은행은 이날 SVB 붕괴 여파 속 폐쇄됐다.

박준우 KB증권 연구원은 “소형 은행들의 리스크는 분명 커졌다”면서 “SVB와 같이 채권 자산의 미실현 손익이 크거나 만기 보유로 실제 자산의 가치 하락이 드러나지 않은 경우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박 연구원은 이어 “자산 부채의 매칭 구조가 취약하고 부동산 등 특정 섹터의 부침에 자본 변동성이 큰 은행은 뱅크런 사태가 불거질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와 금융당국도 미국 SVB 사태가 금융권의 시스템 리스크로 확산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평가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3일 수출투자책임관 회의를 열고 “이번 사태가 글로벌 금융 경제 전반의 리스크로 확산되지 않고 영향이 제한적일 것이라는 견해가 많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추 부총리는 이어 “다만, 향후 여파에 불확실성이 여전히 큰 만큼 금융시장과 실물 경제에 대한 부정적인 영향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관계기관 합동으로 실시간 모니터링을 한층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이승헌 한국은행 부총재도 이날 시장 상황 점검 회의에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 은행들의 건전성이 개선돼왔고, 미 재무부·연준·연방예금보험공사가 예금자 전면 보호조치를 즉각적으로 시행했다"면서 "SVB, 시그니처은행 폐쇄 등이 은행 등 금융권 전반의 시스템 리스크로 확산할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으로 평가된다"고 말했다.

이 부총재는 "다만 이번 사태가 투자 심리에 미치는 영향, 오는 14일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 결과 등에 따라서는 글로벌 금융시장 변동성이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뉴스퀘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