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입김에 나부끼는 수장들...과도한 개입 멈춰야

서울 종로구 광화문 KT 사옥. [사진=연합뉴스]
서울 종로구 광화문 KT 사옥. [사진=연합뉴스]

【뉴스퀘스트=김보민 기자 】 KT가 차기 대표이사 선임과 관련해 또다시 홍역을 치르게 됐다. 윤경림 후보가 공식 내정 보름 만에 사의를 표명하면서다.

KT가 '새 수장 낙점'을 위해 수개월간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 마치 막장 드라마 한 편을 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민영화된 소유분산 기업 인사에 정치권이 과도하게 간섭하는 고질적인 병폐가 되풀이되고 있기 때문이다. 소유분산 기업은 확고한 지배주주가 없어 국민연금이 주요 주주로 있는 곳을 의미한다.

실제 여권은 KT의 현직 사내외 이사진들을 '이익 카르텔'이라고 칭하거나, 윤 후보를 배임 의혹이 제기된 구현모 대표의 '아바타'라고 부르며 날선 발언을 이어왔다.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을 통해 의결권을 강화하려는 움직임도 보였다. 구 대표에 이어 윤 후보까지 정치권의 사퇴 압박에 백기를 든 것이라는 해석이 쏟아지는 이유다.

이처럼 공기업에서 민간기업으로 거듭난 곳이 정권 교체 이후 새 권력의 전리품 취급을 받는 것은 낯선 일이 아니다.

'욕하면서 배운다'고 현 정부도 다를 게 없다. 윤석열 대통령은 연초 "공기업에서 민영화된 기업에도 스튜어드십이 작동해야 한다"라며 사실상 국민연금 등을 통해 이들 기업에 관여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국민연금 또한 소유분산 기업에 칼을 겨누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총수 일가가 없거나 총수 지분율이 낮은 기업에 대한 주주권을 적극 행사할 것을 예고해왔다.

결국 새 정권의 입맛에 맞는 인사를 그 자리에 앉혀야지만 길고 긴 선임 과정이 끝나는 셈이다. 그전까지 회사는 '수장 공백'이라는 리스크를 끌어안아야만 한다.

이제 시선은 정부발 막장 드라마의 또 다른 단골 주인공인 포스코에도 쏠리고 있다.

KT와 함께 대표적인 소유분산 기업으로 꼽힌 포스코는 민영화 이후 새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회장을 교체하는 잔혹사를 겪어왔다.

특히 새 정부 출범 2년 차에 회장직에서 물러나는 사례가 많았다. 이구택 전 회장은 이명박 정부 출범 2년 차인 2009년에, 정준양 전 회장은 박근혜 정부 2년 차인 2014년에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지금은 윤석열 정부 출범 2년 차다. 최정우 현 회장은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8년 취임해 2021년 연임에 성공했고, 내년 3월까지 임기 1년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다.

최 회장은 연초부터 윤석열 정부로부터 패싱을 당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최근 국세청이 포스코의 정기 세무조사에 착수한 게 사실상 정치적 압박이 아니냐는 시각도 지배적이다.

기업의 수장을 뽑을 때 가장 먼저 리더십과 경영 능력을 고려해야 한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기업이 '셀프 연임' 혹은 '그들만의 리그'로 수장을 뽑는 게 아니라면, 정치 논리에 기반한 과도한 개입은 그 어떤 이유로도 용인될 수 없다.

KT 윤경림 후보가 사의를 표했다는 소식이 나온 이후 통신업계에 정통한 한 관계자가 기자에게 한 말이 귀를 맴돈다. "정치인들 무서워서 뭘 할 수나 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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