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가상자산 거래소 상장 뒷돈·시세조작 관여 논란 일어
최근 예치 서비스 먹튀 논란까지...사업자 진입 규제 공백 탓
미카, 거래플랫폼부터 자문·포트폴리오제공까지 서비스 일체 규정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법, 특금법 통해 서비스 인허가 간접 규제
금융당국 “유럽, 미국 입법내용 참고해 규율체계 수립할 것”

지난달 25일 국회에서 '제7차 디지털자산특별위원회 민당정 간담회-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 톺아보기, 디지털자산기본법 미리보기'가 개최됐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이날 간담회에서 "유럽연합, 미국의 입법내용을 종합적으로 참고해 규율체계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지난달 25일 국회에서 '제7차 디지털자산특별위원회 민당정 간담회-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 톺아보기, 디지털자산기본법 미리보기'가 개최됐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이날 간담회에서 "유럽연합, 미국의 입법내용을 종합적으로 참고해 규율체계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

【뉴스퀘스트=이태웅 기자】 “현재 블록체인 시장은 체계가 없어서 사기와 사업을 구분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14일 위메이드가 개최한 온라인 간담회에서 위믹스 투자자가 장현국 대표에게 던진 말이다.

약 2시간 가량 진행된 간담회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이다.

최근 국내 시장을 살펴보더라도 가상자산을 바라보는 투자자들의 시선이 곱지 않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3월 국내 투자시장을 떠들썩하게 만든 ‘강남 납치·살인 사건’의 배경으로 이른바 P코인으로 불리는 가상자산 ‘퓨리에버’가 꼽혔기 때문이다.

특히 해당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가 거래지원(상장)을 대가로 뒷돈을 받고 시세조작에 관여했다는 사실까지 드러나면서 시장에 대한 신뢰가 급속도로 악화됐다.

최근에는 가상자산 예치서비스를 운영 중인 하루인베스트먼트와 델리오가 잇달아 입출금 서비스를 중단하면서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러그풀(먹튀)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와 같은 사태들이 “국내 가상자산 시장이 사기판이나 다름없다”는 비판에 기름을 붓고 있는 것이다.

가상자산 예치 서비스를 운영 중인 델리오가 지난 14일 공지사항을 통해 가상자산 출금 서비스를 정지한다고 밝혔다. 이번 공지 이후 가상자산 투자자 사이에서는 예치 서비스 업체를 겨냥해 '러그풀(먹튀)'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사진=델리오 공식 홈페이지 갈무리]
가상자산 예치 서비스를 운영 중인 델리오가 지난 14일 공지사항을 통해 가상자산 출금 서비스를 정지한다고 밝혔다. 이번 공지 이후 가상자산 투자자 사이에서는 예치 서비스 업체를 겨냥해 '러그풀(먹튀)'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사진=델리오 공식 홈페이지 갈무리]

이 같은 비판이 온전히 업계의 책임이라고는 할 수 없다.

지난 몇 년간 국내 가상자산 시장을 규제없이 방치해온 당국에도 상당 부분 책임이 있다.

특히 지난 5월 국회 정무위원회를 통과한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안(이하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법)’은 현재 시장 상황을 포괄하지 못하다는 점에서 더욱 아쉽다.

유럽연합의 미카와 같이 글로벌 규제 동향에 맞추겠다는 당국의 설명과 달리,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법은 상당히 좁은 의미에서 시장을 규제하고 있다.

실제로 유럽연합이 내년부터 시행하는 가상자산 시장 관리·감독법 ‘미카’는 법 적용 대상을 ‘가상자산서비스사업자(CASP)’로 규정하고 있다.

이에 해당하는 사업자는 거래 플랫폼 운영부터 환전 및 교환, 이전, 주문대행, 발행, 자문서비스, 포트폴리오 제공까지 가상자산과 관련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다.

또한 미카는 가상자산서비스사업자와 가상자산 발행인이 사업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회원국 정부로부터 사전 승인을 받도록 하는 등 시장 진출에 대해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다.

가상자산 시장 진입 단계부터 높은 문턱을 마련해 촘촘하게 시장을 관리·규제하고 있는 셈이다.

반면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법의 적용 대상인 ‘가상자산서비스사업자(VASP)’는 가상자산을 매도·매수하거나 교환, 이전, 보관·관리하는 사업자에 그쳤다.

특정금융정보보호법(특금법)이 규정하는 사업자와 마찬가지로 가상자산 거래소, 보관·관리·지갑서비스업체만 해당하는 셈이다.

또 가상자산서비스사업자에 대해 시세조정 등 불공정행위에 대한 금지 의무는 부과했지만, 시장 진입 조건은 마련하지 않았다.

정보보호관리체계(ISMS) 확보 등 특금법에 따른 신고 수리 절차를 통해 간접적으로 제한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특금법은 본질적으로 거래소 등 가상자산서비스사업자가 아니라 자금세탁방지에 초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가상자산 시장을 포괄하지는 않는다.

실제 수리 업무를 담당하는 금융정보분석원은 사업자 현황을 통해 대체불가능토큰(NFT) 매매, 예치 및 랜딩, 디파이 서비스 등은 특금법상 신고 업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처럼 촘촘하지 못한 규제가 일부 불공정한 사업자에게 시장 진출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미카와 비교했을 때 아쉽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물론 당국은 해외 법 동향을 참고해 현재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법에서 다루지 않는 발행, 유통, 공시 등에 대한 2단계 법안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지난달 25일 국회에서 열린 ‘제7차 디지털자산특별위원회 민당정 간담회’에서 “유럽연합, 미국의 입법내용을 종합적으로 참고해 규율체계를 만들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여전히 가상자산서비스사업자에 대한 주요 규제로 꼽히는 시장 진출 인허가에 대해서는 다소 미온적이다는 느낌을 받는다.

현재 유럽연합 내부에서는 스테이킹 서비스를 비롯해 대출 등 일부 서비스에 대한 진입 규제가 부족하다며 추가 입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유럽연합의 경우 계속해서 변해가는 시장의 상황을 고려할 때 보다 명확한 진입 규제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해외 동향을 참고하겠다는 약속도 약속이지만, 불공정한 사업자의 진출로 투자자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우리 당국도 서둘러 조치에 나서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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