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감사 환영연도 10폭 병풍 중 명창 모흥갑이 판소리를 하는 장면(부분, 그림 중간에 ‘명창 모흥갑’이란 한자 글씨가 있다.)
평양감사 환영연도 10폭 병풍 중 명창 모흥갑이 판소리를 하는 장면(부분, 그림 중간에 ‘명창 모흥갑’이란 한자 글씨가 있다.)

【뉴스퀘스트=하응백 문화에디터】 임방울이 잘 부른 단가 중에 <명기명창>이라는 것이 있다.

그 내용은 기생과 오입쟁이 수 백 명 모아 전국 팔도로 유람 가서 잘 놀자는 것이다.

노랫말은 다음과 같다.

명기명창(名妓名唱) 풍류랑(風流郞)과 갖은 호사(豪奢)시켜 교군(轎軍)태워 앞세우고 일등(一等) 세악수(細樂手) 통영갓 방패 철리 안장 말을 태우고

팔도 오입쟁이 성세(形勢)도 있고 활협(濶狹)도 있고 알음알이 멋도 알고 간드러진 오입쟁이 수백명 모두 모아 각기 찬합(饌盒) 행찬(行饌) 장만허여 팔도강산 구경간다

경상도 태백산 낙동강을 구경허고 전라도 지리산의 동진수를 구경허고

충청도 계룡산 백마강을 구경허고 평안도 자문산의 대동강을 구경허고

황해도 구월산의 옹진수를 구경허고 강원도 금강산의 세류강을 구경허고

경기 삼각산의 임진강을 구경허니 왕십리 청룡이요 태산대악(太山大嶽)이 전부 금성 (金城)이라

종남산은 천년산(千年山) 한강을 만년수(萬年水)라 북악은 억만봉이요 상봉삭출(上峰削出)은 대모색(玳瑁色) 허니 선장인지(仙場人地) 천하건곤(天下乾坤) 사방 산수(山水)가 지중(至重)허여 만리건곤만안경(萬里乾坤滿眼景)이라

수락산 폭포수 남으는 서장대 이화정 장춘대 비륜대 세검정 백련동 달 뜬 경 구경허니

아니 놀고 무엇 헐거나 거드렁 거리고 놀아보세

쉽게 풀이해 보면 명기명창 풍류랑을 모아 호화롭고 사치스럽게 꾸며 가마꾼을 앞세우고 장구, 북, 피리, 해금, 대금 등으로 구성한 악사들을 데리고 유람을 가자는 것이다.

풍류랑의 자격은 집안 형편도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고, 호탕하고 의협심도 있어야 한다.

음식을 싸들고, 팔도를 두루 유람하고 마지막에는 서울에서 놀자는 것이다.

여기서 세악수는 조선후기 군영 소속의 군악대를 말한다.

세악수는 대체로 피리·젓대·해금·장구·북을 포함한 삼현육각(三絃六角)으로 편성됐다. 요즘말로 하면 전문 악사들이다.

이런 호화판 놀이는 상상 속의 일만은 아니다. 고종 시대의 가객이었던 안민영(安玟英:1816-?)은 『금옥총부』에 시조 한 수를 짓고 이런 기록을 남겼다.

“백화방초(百花芳草) 봄바람을 사람마다 즐길 적에

등동고이서소(登東皐而舒嘯)하고 임청류이부시(臨淸流而賦詩)로다

우리도 기라군(綺羅裙)거느리고 답청등고하리라

내가 정묘년(1867년) 봄에 박효관, 안경지, 김군중, 김사준, 김성심, 함계원, 신재윤 등과 함께 대구의 계월, 전주의 연연이, 해주의 은향이, 전주의 향춘이 및 일등 공인(工人) 한 패 등과 함께 남한산성에 올랐다.

그 때에 온갖 꽃은 다투어 피고 모든 산들은 울긋불긋 서로를 비추이니 마치 그림 같았다. 이런 것을 일러 만나기 어려운 승경에 참으로 아름다운 모임이었다 할 것이다.

3일을 질탕하게 놀다가 돌아옴에 송파나루에 이르러 배를 타고 한강을 따라 내려가다가 뭍에 올랐다.”

박효관, 안민영 일행의 놀이판이 1867년 봄에 벌어진 일이니, 단가 <명기명창>의 시대적 배경과 그리 멀리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임방울의 노랫말에는 두 가지 오류가 있다.

임방울의 단가를 잘 들어보면 ‘왕십리 청룡’이라고 발음하는데 이는 천룡(天龍)의 오류다. 천룡은 지네를 뜻하면서 풍수지리적으로 명당을 말한다.

때문에 이것은 천룡으로 발음해야 하나 아마도 천룡이 발음상 어렵기 때문에 청룡으로 발음했을 가능성이 크다.

또 ‘태산대악이 전부 금성’이라는 부분도 오류다. 원래는 ‘태산대악(太山大嶽)이 천부금성(天府金城)’이라고 해야 한다.

서울의 지세가 하늘이 내려준 그런 살기 좋은 땅이라는 말이다.

이 <명기명창>을 바탕으로 해서 거문고의 명인 신쾌동이 거문고 병창을 만들었다. 그러면서 제목을 <팔도유람가>로 달았다.

왜 그랬을까?

바로 <명기명창>의 내용이 시대에 맞지 않아 퇴폐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기생들을 데리고 유람 가자는 이야기니 그 내용으로 학생들을 가르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팔도유람가>에서는 ‘명기명창’을 ‘명인명창’으로 바꾸었다.

또 ‘오입쟁이’를 ‘풍류남아’로 바꾸었다.

‘산수(山水)’를 ‘산세(山勢)’로도 바꾸었다.

하지만 이것은 오류인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팔도유람가>의 마지막 부분은 전부 풍수지리와 관련된 노랫말이기 때문에 ‘산수’로 해야 정확한 것이다.

<명기명창>이 <팔도유람가>로 변한 것처럼 시대에 따라 노래 가사도 변할 수는 있지만 위의 ‘천룡’을 ‘청룡’, ‘천부’를 ‘전부’, ‘산수’를 ‘산세’로 노래하는 것은 명백한 오류이니 앞으로 <명기명창>과 <팔도유람가>를 노래하시는 분들은 오류를 바로 잡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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