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불만 등 '투서'수준 이야기에 면담 멈춰...'발빼기 위한 명분' 시각도

정몽규 HDC현대산업개발 회장이 지난해 11월 12일 오후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본사 대회의실에서 아시아나항공 인수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몽규 HDC현대산업개발 회장이 지난해 11월 12일 오후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본사 대회의실에서 아시아나항공 인수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뉴스퀘스트=최석영 기자】 "인수하기도 전에 투서가 몰려오는 바람에 임직원 면담을 중단할 수 밖에 없었다." 

"아니다. 그건 투서가 아니라 사내 익명 블라인드에 올라온 직원들의 불만사항에 불과하다."

HDC현대산업개발(이하 HDC현산, 회장 정몽규)이 아시아나항공 인수계약 이후 아시아나의 임원 면담 과정에서 흘러 나온 목소리다.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예기치 못한 복병을 만났다"고 평가하는가 하면, "울고 싶던 차에 뺨 맞은 격으로 퇴로의 구실을 하나 더 만드는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있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정몽규 HDC현산 회장은 아시아나항공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차원에서 아시아나 전 계열사 임원들에 대한 면담을 가졌다.

그러나 정 회장은 일정별로 임원 면담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기대했던 생산적인 이야기 보다 그 동안의 불만 사항과 험담만 늘어놓는 시간이 이어지자 '학을 떼고' 면담을 중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HDC현산 인수단 관계자에 따르면 회사 인수에 앞서 들여다 본 아시아나항공의 경영 상태와 기업문화가 기대 이하 수준이었다는 게 이유다.

아시아나항공이 호남기업이라는 특성을 십분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인사와 채용에 관련된 타지역 임직원들의 투서가 인수팀에도 수십통씩 전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투서의 내용은 한심하고 유치한 수준으로 "모 직원은 사장의 조카다", "박삼구 회장 가정부의 아들이 이번에 승진했다"는 등 채용과 승진에 관련된 불만이 투서 형태로 올라온 것.

이에 대해 아시아나항공 관계자는 "투서가 아니고 사내 블라인드에 아시아나항공이 과거 힘든 시절을 겪었던 것들에 대해 하소연 하는 내용들을 올린 것으로 아마 이런 것들이 투서로 와전된 것 같다"며 "아시아나 항공 임원 39명 중 30명 이상은 면담을 마쳤으며 일부 대여섯명 현장에 있는 임원들만 면담을 하지 못했다"고 반박했다.

그는 "다만 아시아나IDT, 에어부산, 에어서울, 아시아나 에어포트 등 굵직한 6개 계열사 임원들에 대한 면담은 이뤄지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아마 그것(투서가 올라온 것)은 재작년 기내식 사건이 터지면서 2016년부터 연속 3년 영업이익이 흑자가 났는데도 성과급을 받지 못한 일부 직원들이 경영실패에 대한 책임과 경영진에 대한 불만을 사내 블라인드에 올렸고 아마 현산 측이 이를 캐치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는 "그 동안 아시아나항공 경영진의 경영정상화를 위한 노력은 거두절미 하고 오너 또는 경영층의 불만만 강조해서는 안되는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이에 관련 HDC현산 홍보실 관계자는 "아시아나항공 인수와 관련된 내용은 공식 보도자료 이외에는 할 말이 없다"고 입을 닫았다.

지난 22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에 멈춰선 아시아나항공 여객기. [사진=연합뉴스]
지난 22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에 멈춰선 아시아나항공 여객기. [사진=연합뉴스]

HDC현산 내부에서 이 같이 '투서' 관련 내용이 흘러나오는 것을 두고 업계의 해석은 제각각이다. 

먼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아시아사항공 인수를 둘러싼 환경이 갈수록 악화되고 항공산업에 대한 전망이 불투명해지면서 인수 포기를 위한 명분을 쌓는 것이니 아니냐는 것이다. 

'발을 빼기 위한 수순이 아닌가'라는 의혹의 눈초리다.

실제 HDC현산은 "현재 진행 중인 러시아 정부의 기업결합 심사가 끝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었지만 지난달 말 아시아나항공 주식 취득 일정을 무기한 연기했다.

업계는 이미 미국과 중국 등 5개국 기업결합 승인이 난 상태에서 현산이 인수 의지가 있다면 주식 취득 날짜를 무기한 미룰 필요는 없다고 보고 있다.

게다가 현산은 매년 수백억원의 이자 비용을 절감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산업은행 등 채권단에 아시아나 영구채 5000억원의 출자전환도 요구하지 않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 가능성도 HDC현산의 인수 포기설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최근 베인앤드컴퍼니의 보고서에 따르면 "항공산업은 올 하반기 회복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라며 "U자형 회복을 거치게 되는데 빨라도 내년 하반기 정도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결국 HDC현산이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대한 이행보증금으로 지급한 2500억원을 포기하는 것이 이득이라는 계산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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