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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0-07-06 18:04 (월)
[백남주의 한복이 있는 옛 그림 이야기(47)] 연잉군 초상(延礽君 肖像)
[백남주의 한복이 있는 옛 그림 이야기(47)] 연잉군 초상(延礽君 肖像)
  • 백남주 큐레이터
  • 승인 2020.06.07 06: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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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잉군 초상', 진재해, 박동보, 1714년, 비단에 먹과 채색, 110.5cm×61.8cm,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연잉군 초상', 진재해, 박동보, 1714년, 비단에 먹과 채색, 110.5cm×61.8cm,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뉴스퀘스트=백남주 큐레이터】 <연잉군 초상>은 영조가 왕세제로 책봉되기 전, 연잉군(延孕君)이라 불리던 21세 때의 모습을 그린 초상화다.

영조는 1694년 숙종과 숙빈 최씨 사이에서 왕자로 태어나, 6세 때인 숙종 25년(1699)에 연잉군에 봉해졌고, 경종 1년(1721)에 왕세제(王世弟)로 책봉되었다.

이 초상화는 숙종 임금이 8개월간 병상에 있을 때, 연잉군과 연령군(延齡君) 두 왕자가 왕의 곁에서 병 수발을 했던 노고를 치하하는 의미에서 보상으로 그리게 한 것이다.

화원 진재해(秦再奚, 1691~1769)와 박동보(朴東普, 생몰년 미상)가 이 초상화를 그렸고, 그림이 완성되자 숙종은 말과 함께 왕자들에게 하사하였다.

그림 속에 묘사된 연잉군은 왕자군(王子君)만 사용할 수 있던 백택(白澤) 흉배가 부착된 녹색 단령포를 입고, 오사모(烏紗帽)를 쓰고, 서대(犀帶)를 두른 채, 호피가 깔린 교의에 앉아 있다.

두 손을 소매 속에 넣어 공수 자세를 취하고 있으며, 얼굴만 옆으로 살짝 돌려 왼쪽 귀가 보이는 상태이고, 몸은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맞잡은 소매 옷 주름은 대칭을 이루고, 단령의 옆 자락은 옆으로 뻗어있다. 발을 올려놓은 족좌대 상판에는 화문석이 깔려있고, 바닥에는 아무것도 깔려 있지 않다.

화가는 연잉군의 얼굴을 엷은 갈색으로 바탕칠 하고, 안면에서 움푹 들어간 부분만 짙은 갈색으로 선염(渲染)한 뒤, 선으로 덧그려 얼굴의 입체감을 강조하였다.

콧날은 짙은 선으로 그려 연잉군의 단호한 성격을 강조하였고, 입술의 윤곽선도 선명하게 그렸다.

눈 양 끄트머리 안쪽은 붉은 색, 눈동자는 금색의 안료를 사용하여 연잉군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연잉군 초상>은 사모가 높고 양각이 넓고 곧게 뻗어 있다는 점에서 18세기 초상화의 특징을 보이지만, 얼굴을 그릴 때 갈색 선으로 윤곽을 표현하고, 필요한 곳에만 음영을 가한점이나, 옷 주름에는 음영을 사용하지 않고, 균일한 굵기의 검은 선만 사용한 것은 17세기 초상화의 형식에서도 많이 보이는 특징이다.

또한 흉배를 그릴 때 금박을 사용하여 뒤에서 배채(背彩)한 뒤 앞면을 화려하게 채색한 점은, 문무관들의 관복본(官服本) 초상화와는 다른 품격을 보여주었다.

연잉군 초상화는 조선 시대 초상화 중 유일하게 왕자가 살아 있을 때, 직접 보고 그린 정장 관복 차림의 초상화다.

한국전쟁 당시 화재로 인해 화폭의 1/3이 소실되었지만, 다행히도 얼굴과 몸 부분이 상당 부분 남아있어 전체적인 복색을 살펴볼 수 있다.

<연잉군 초상>의 화면 왼쪽 상단에는 “처음에 연잉군에 책봉되었고 호는 양성헌이다”라고 씌어있다.

이 초상화는 영조가 왕위에 오르기 전에 거처했던 창의궁 장보각에 보관되었다가, 영조가 왕으로 즉위한 후 경희궁 태녕전에 모셔졌고, 정조 2년(1778)에는 창덕궁 선원전으로 옮겨져 봉안되었다.

【참고문헌】

어진에 옷을 입히다(박성실, 민속원, 2016)

어진의궤와 미술사(이성미, 소와당, 2012)

조선왕실의 어진과 진전, 국립고궁박물관 개관 10주년기념 특별전도록(국립고궁박물관, 2015)

한국의 초상화-형과 영의 예술 (조선미, 돌베개,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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