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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0-09-30 00:44 (수)
[하응백의 국악인문학(25)] '녹조청강상에'와 계축옥사
[하응백의 국악인문학(25)] '녹조청강상에'와 계축옥사
  • 하응백 문화에디터
  • 승인 2020.09.02 11: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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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화기 가야금과 양금 연주 장면
개화기 가야금과 양금 연주 장면

【뉴스퀘스트=하응백 문화에디터】 여창가곡 계면조 평거에 <녹초 청강상에>로 시작하는 노래가 있다.

녹초 청강 상에 굴레 벗은 말이 되어

때때로 머리 들어 북향하여 우는 뜻은

석양이 재 넘어가매 임자 그려 우노라

푸른 들판과 푸른 강에 굴레를 벗은 말이 되었다는 것은 벼슬에서 물러났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가끔은 머리를 들어 임금이 살고 계신 곳을 향하여 소리 내어 우는 까닭은 임금에 대한 충성심 때문이다, 라는 내용이다.

이렇게 임금을 그리워하는 내용의 시조를 연주가(戀主歌) 혹은 연군가(戀君歌)라고 한다.

이 시조를 지은 사람은 서익(徐益:1542-1587)이라는 사람이다. 선조 때 병조·이조 좌랑, 안동부사·의주 목사 등을 지냈다.

문장과 도덕, 그리고 기절(氣節)이 뛰어나 이이(李珥)·정철(鄭澈)로부터 지우(志友)로 인정받았다.

율곡을 지지하다가 의주 목사직을 물러나기도 했다.

그런데 이 서익의 서자로 서양갑이라는 아들이 있었다. 서양갑은 광해군 때 같은 서자 출신 친구들과 함께 상소를 올렸다.

서자도 관계에 진출할 수 있게 해 달라는 상소다.

이것이 조선 사회에 받아들여질 리가 없었다. 그래서 이들은 ‘강변칠우(江邊七友)’라는 일종의 모임을 만들어 소양강가에서 같이 시를 짓고 술을 마시며 인생을 한탄하면서 살았다.

맨날 술 마시며 놀면 천하 갑부가 아닌 이상 돈이 떨러질 수밖에 없다.

이들은 경제적으로 궁핍해지면서 여주(驪州)에 모여 서로 결의 형제하고 도적이 되어 악행의 길로 들어섰다. 문경새재에서 상인을 죽이고 거액을 훔쳤다.

이들은 곧 포도청에 모두 잡히고 만다. 이 해가 계축년(1613년)으로 광해군 5년의 일이다.

당시 조선은 광해군을 지지하는 대북파와 광해군의 이복동생 영창대군을 지지하는 소북파가 대립하고 있었다.

그 전에 대북파가, 영창대군을 옹립하려 했다는 죄목으로 소북파 영의정 유영경(柳永慶)을 죽였다. 대북파가 남은 불씨를 완전히 제거하고자 하던 차에 바로 이 강도 살인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대북파인 이이첨 일파는 이들 도적들에게 허위자백을 강요한다. 돈을 모아 군자금을 확보해서 영창대군의 모반에 사용하려고 했다, 이렇게 조작을 하려고 했다.

영창대군의 어머니는 인목대비다. 인목대비의 아버지가 김제남이다. 이 모든 것이 김제남이 시켜서 한 일이다, 이렇게 자백을 하게 만들었다.

즉 영창대군의 외할아버지가 꾸민 일이다, 이렇게 되어 큰 사단이 벌어진다.

이것이 바로 역사에서 말하는 계축옥사이다. 서양갑의 친구인 박응서가 거짓 자백을 했고, 서양갑도 위협에 못 이겨 거짓 자백을 한다. 그리고 서양갑은 바로 사형을 당한다.

결국 이 조작극으로 인해 김제남도 죽고 영창대군도 강화로 유배되었다. 어린 영창대군은 강화부사가 바로 죽여버렸다.

강화부사는 영창대군을 온돌방에 가두어 두고 장작을 많이 때서 분사(焚死)시켰다고 전한다.

쪄죽인 셈이다.

서양갑 등 7인은 당시의 제도에 불만을 품고 악행을 일삼다가 이이첨 일파의 꼬임에 빠져, 자신도 죽고 죄없는 사람까지 죽게 만든 역사의 죄인으로 남았다.

이이첨도 인조반정 이후 사형당하고 만다. 계축옥사는 당시의 서얼 문제와 함께 당쟁의 폐해를 직접 보여 준 사건이다. 서익은 그런 충성스러운 노래를 불렀건만, 그의 아들은 역사의 죄인으로 남아 있다.

제도나 법이 잘못되었다고 그것을 핑계 삼아 범죄를 행한다는 것은 어느 시대에나 용서받을 수 없다.

이이첨과 같이 개인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혹세무민하는 행위도 절대로 용서받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