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학시험 등 밀집공간에 노출되는 건 필수...코로나19에 시험 보는 것만도 감사
학원·시험장 등 방역 철저하지 않은 곳 많지만 어쩔 수 없이 다녔죠

지난달 11일 오후 서울 코엑스에서 면접을 마친 취업준비생이 구두를 벗어 손에 들고 고사장을 나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달 11일 오후 서울 코엑스에서 면접을 마친 취업준비생이 구두를 벗어 손에 들고 고사장을 나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뉴스퀘스트=김보민 기자】 2년차 취업준비생 김미영씨(25·가명)에게 2020년은 참으로 고단한 한 해였다. 

코로나19로 얼어붙어버린 취업시장 문을 두들기며 올해 서류를 제출한 회사만 29곳, 이 가운데 필기시험과 면접 등 다음 전형까지 올라간 건 단 8차례였다.

미영씨의 친구들은 "코로나19 이후 서류에서도 많이 떨어진다는데 너 정도면 운이 좋은 것"이라고 위로했지만 취준생 딱지를 붙이고 있는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정부가 사회적거리두기를 준수하고 되도록이면 밀집공간을 피하라고 했지만, 시험을 보고 학원에 다녀야 하는 취준생에게 이러한 방침은 사치였다.

미영씨는 "이 시국에 취업을 하려면 나 자신을 어쩔 수 없이 바이러스 환경에 내놓아 한다"며 "취준생들에게 '집콕'이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라고 말했다. 

뉴스퀘스트는 미영씨의 인터뷰를 통해 취준생들의 올 한해 고충을 들어봤다. 

◇ 코로나시대, '시험이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지난 4월 신천지발 1차 대유행이 일어난 이후 어학시험 일정이 약 2달간 전면 취소되면서 미영씨는 상반기를 날렸다고 한다.

그렇기에 시험이 재개된 5월부터 미영씨에게 '토익'은 기회가 올 때 넘어야할 산이었다. 언제 또 확진자가 늘어 시험이 중단될 지 모르기 때문이다.

시험장은 바이러스의 온상이었다. 방역 방침에 따라 응시생들이 두 칸씩 띄어 앉고 마스크를 무조건 착용하게 했지만, 중학교의 작은 교실에는 성인 12명과 감독관들이 북적여야 했다.

기업 필기시험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3월부터 두차례 연장되어 5월이 되어서야 보러 간 필기 시험장, 그곳에는 100명 남짓의 응시생들이 커다란 강당에 앉아있었다.

쉬는 시간에 응시생들은 마스크를 내리고 에너지바와 젤리 등 간식류로 허기를 채웠다. 서로 아는 사이인지 반갑다며 수다를 나누는 이들도 있었다.

미영씨는 감독관들이 그런 사람들을 제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감독관 조차도 마스크를 코 아래로 내리고 있던 상태였다.

그는 "그래도 시험을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좋았다"며 "코로나 시대에 이런 기회는 자주 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 "자기소개 영상 찍어오세요"…차별화 위해 야외촬영

미영씨는 올해 유난히 자기소개 영상 제출을 요구하는 기업이 많았다고 했다.

처음엔 안전하게 집에서 촬영하려 했지만,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스튜디오를 빌리거나 야외촬영을 할 거라는 수많은 글을 읽었다.

이에 따라 색다른 영상을 찍어내야만 다른 지원자와 차별화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색다른 영상을 찍어야겠다는 생각 뿐이었다"며 "대학가 스튜디오 중 알아보지 않은 곳이 없다"고 말했다.

결국 미영씨가 선택한 장소는 영상제출을 요구한 회사 건물 앞이었다.

시위하는 사람과 직장인 등이 밀집한 광화문 거리에서 미영씨는 2시간 동안 마스크를 내린 채 영상촬영에 임했다.

얼굴 전체가 보여야 한다는 제출 조건 때문이었다.

노량진 학원가. [사진=연합뉴스]
노량진 학원가. [사진=연합뉴스]

◇ 공부할 곳은 없고, 학원은 방역수칙을 감독하지 않았다

최근 수도권 내 사회적거리두기 격상 후 카페에 앉을 수 없게 되고, 다니던 독서실 문이 닫자 미영씨가 공부를 하기 위해 찾은 곳은 학원이었다. 

길어진 취업준비 기간 탓에 눈치가 보여 집에서 공부를 하긴 어려운 실정 때문이란 게 그의 설명이다.

미영씨는 수업을 듣고 남는 나머지 시간엔 학원 자습공간에서 공부를 했다.

하지만 띄어앉기와 마스크 의무착용을 권고하는 안내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공부를 하는 수강생들이 다수였다. 따로 이들을 감독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는 "숨이 잘 안 쉬어지고 답답하다는 이유로 마스크를 내리고 공부하는 수강생들이 많다"며 "심지어 도시락을 꺼내 식사를 하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미영씨는 연말인 오늘도 다시 학원으로 향한다.

학원 발 확진자가 급증한 데에 공포를 느꼈지만 뒤쳐지지 않기 위해선 학원에 나와 수업을 듣고 맞춰 공부를 해야만 따라잡을 수 있어서다.

미영씨는 "코로나19는 어렵고 힘든 사람에게 유독 더 가혹한 것 같다"며 "올 한해가 취준생에게는 지옥과 다름 없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부디 신축년 새해에는 코로나19가 물어나고 시험에 당당하게 합격해 마스크 줄이 아닌 사원증을 목에 걸고 학원이 아닌 직장으로 출근하는 게 꿈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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