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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 2021-09-17 10:47 (금)
[나의 초록목록(草錄木錄)⑥] 이끼는 작지만 우아한 식물이다
[나의 초록목록(草錄木錄)⑥] 이끼는 작지만 우아한 식물이다
  • 허태임(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
  • 승인 2020.12.22 11: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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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퀘스트=허태임(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 초등학교 4학년 때였던가.

수업 준비물이 ‘솔이끼’와 ‘우산이끼’였던 적이 있다. 당시 내가 자란 시골 마을에는 여느 집 없이 마당에서 쉽게 그 이끼들을 구할 수 있었다.

친구들과 나는 집에서 가져온 이끼를 돋보기로 관찰하고 하얀 종이 위에 색연필로 그려보았다.

두 이끼의 닮은 점과 다른 점을 적어보는 일도 빠뜨리지 않았다. 누구도 관심 두지 않던 마당 구석의 그늘진 자리에 소복하게 자라던 이끼가 특별한 존재가 되어 내게 다가온 날이었다.

그 준비물을 집에서 구할 수 있었다는 게 참으로 새삼스럽다.

초등학교 교사인 언니에게 물으니 요즘에는 동영상 자료를 활용하거나 과학 교육 재료를 판매하는 업체에서 이끼를 구할 수 있다고 한다.

식물을 공부하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이끼와도 가까워졌다. 지구상의 식물은 크게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꽃식물(종자식물)과 그렇지 않은 민꽃식물(무종자식물)로 나뉜다.

전자에 해당하는 것이 흔히 우리가 초본과 목본으로 구분하여 말하는 식물이고, 후자에 해당하는 것이 물에서 사는 녹조류, 이끼류(선태식물), 고사리류(양치식물)다.

그러니까 4억 5천만 년 전에 물에 살던 녹조류로부터 육지로의 삶을 처음 선택한 지구상의 녹색 개척자가 바로 이끼다.

진화라는 관점에서 볼 때 이끼에서 시작된 녹색식물은 제 몸 안에 전에 없던 관다발을 만들어 고사리류(양치식물)로 나아가고, 목질부를 견고히 하여 나무(겉씨식물)가 되고, 종자를 훨씬 더 안전하게 보호하는 속씨식물로 거듭나게 된다.

따라서 오늘날 육상식물을 이해하기 위하여 식물학자들은 많은 단서를 이끼(선태식물)에게서 찾는다. 그 시작은 우산이끼와 솔이끼다.

학자들은 이끼를 ‘선태(蘚苔)식물’이라고 부른다. 이는 솔이끼류를 뜻하는 선류와 우산이끼류를 뜻하는 태류를 합친 말이다.

학술적으로 선태식물은 우산이끼강, 솔이끼강, 뿔이끼강 등 크게 3개의 강(綱 또는 class=생물을 분류하는 계급)으로 이루어진다. 그들의 구분법은 다음과 같다.

솔이끼류(선류)는 잎에 맥이 있고, 자손을 생산하는 포자를 담고 있는 삭의 수명이 긴 편이다. 우산이끼류(태류)는 잎에 맥이 없고 솔이끼와 달리 삭의 수명이 2~3일에 그친다.

뿔이끼류는 이름처럼 삭을 달고 있는 포자체가 길쭉한 뿔모양이다.

솔이끼류나 우산이끼류 비해 몸체가 작은 편이며 형태가 불분명한 녹색의 잎을 가진다.

이끼류는 우리가 아는 식물처럼 잎과 줄기가 정확하게 나뉘지 않기 때문에 용어를 달리 쓰기도 한다.

잎과 같은 형태라는 의미의‘엽상체’, 줄기와 같은 형태라는 의미의 ‘경엽체’라는 용어를 학술적으로는 선호하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형태적 특징에 따라 잎과 가지로 표현했다.

최근 DNA 유전자 분석 결과는 우산이끼 무리를 지구상에 가장 먼저 출현한 이끼로 본다. 그 다음 솔이끼 무리와 뿔이끼 무리 순이다.

현대 과학은 지구상에 인류가 출현한 시기를 지금으로부터 30만 년 전으로 추정한다.

우산이끼가 육상의 녹색식물로 살아온 4억 년이 넘는 시간을 생각하면 나는 지구상의 작은 생물이 되어 이끼 앞에서 한없이 초라해진다.

우산이끼를 처음 관찰하고 탐구했던 그때처럼 그들은 여전히 내게 너무 특별한 존재다.

우산이끼. DNA 유전자 분석 결과는 우산이끼 무리를 지구상에 가장 먼저 출현한 이끼로 본다[사진=허태임(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
우산이끼. DNA 유전자 분석 결과는 우산이끼 무리를 지구상에 가장 먼저 출현한 이끼로 본다. [사진=허태임(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

우산이끼가 달고 있는 그 우산모양의 구조물을 자세히 살펴보면 우산 살 모양으로 잘게 갈라진 무리와 덜 갈라진 무리 2종류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암그루와 수그루의 차이다. 암그루의 잘게 갈라진 우산 모양의 구조물 가운데에는 난자를 보호하고 있는 암생식기관인 장란기가 숨어 있다.

수그루의 덜 갈라진 구조물은 가장자리의 얕은 갈래 사이사이에 수생식기관인 정자 주머니를 품고 있다.

물기 없는 육지에서 난자를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하여 암그루 안에 난자를 품게 된 이 전략은 현존하는 모든 식물이 취하는 방법이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이 방법은 지구상에서 이끼가 가장 먼저 생각해냈다.

우산이끼류에는 예쁜 이름이 정말 많다. 우산이끼의 우산모양에 비해 삿갓모양을 하고 있는 삿갓우산이끼도 있고, 우리 민중의 모자였던 패랭이 모양을 하고 있는 패랭이우산이끼도 있다.

또 잎이 꽃게 발 모양을 하고 있는 꽃게발이끼도 있고 엄마의 마음처럼 잎이 둥글고 넓은 엄마이끼도 있고, 이름처럼 예쁘장하게 생긴 리본이끼와 날개이끼도 있다.

이끼는 아주 작은 세상에서 살기 때문에 그들 잎의 정확한 모양을 맨눈으로 보기는 어렵고 현미경으로 봐야 그 형태가 또렷해진다.

삿갓우산이끼. 우산이끼의 우산에 비해 삿갓모양을 하고 있다. [사진=허태임(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
삿갓우산이끼. 우산이끼의 우산에 비해 삿갓모양을 하고 있다. [사진=허태임(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
패랭이우산이끼. 우리 민중의 모자였던 패랭이 모양을 하고 있다. [사진=허태임(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
패랭이우산이끼. 우리 민중의 모자였던 패랭이 모양을 하고 있다. [사진=허태임(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
엄마의 마음처럼 잎이 둥글고 넓은 엄마이끼. 이끼는 아주 작은 세상에서 살기 때문에 그들 잎의 정확한 모양을 맨눈으로 보기는 어렵고 현미경으로 봐야 그 형태가 또렷해진다. [사진=허태임(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
엄마의 마음처럼 잎이 둥글고 넓은 엄마이끼. 이끼는 아주 작은 세상에서 살기 때문에 그들 잎의 정확한 모양을 맨눈으로 보기는 어렵고 현미경으로 봐야 그 형태가 또렷해진다. [사진=허태임(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

초등학교 때 내가 관찰했던 우리 집 마당의 솔이끼는 들솔이끼였다.

식물 공부를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솔이끼는 아주 드물어서 쉽게 만날 수 없다.

소나무 모양을 하고서 땅에 바짝 붙어 자라던 그 친구들을 몇 해 전 한라산과 백두산 탐사 때 우연히 만난 게 내게도 전부다.

들솔이끼. 초등학교 때 내가 관찰했던 우리 집 마당의 솔이끼는 들솔이끼였다. 길가와 민가 주변의 응달진 곳에 주로 자란다. [사진=허태임(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
들솔이끼. 초등학교 때 내가 관찰했던 우리 집 마당의 솔이끼는 들솔이끼였다. 길가와 민가 주변의 응달진 곳에 주로 자란다. [사진=허태임(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
솔이끼는 아주 드물어서 쉽게 만날 수 없다. 높은 산지의 습한 땅에 모여 자란다. 백두산에서 담았다. [사진=허태임(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
솔이끼는 아주 드물어서 쉽게 만날 수 없다. 높은 산지의 습한 땅에 모여 자란다. 백두산에서 담았다. [사진=허태임(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

솔이끼류 중에 물이끼는 물을 머금는 능력이 대단하다. 과거 물에서 살던 옛 선조들의 삶의 방식을 몸에 새기고 있어서 거의 수생식물처럼 물 가까이에서 산다.

습지 같은 곳 말이다. 하지만 육지에서 건조될 것에 대비하여 만반의 준비를 제대로 하고 있다. 잎과 가지는 물을 잘 흡수하도록 설계되어 있고 잎은 광합성을 하는 엽록세포 외에도 오로지 물을 흡수하기 위한 투명세포로 이루어져 있다.

이 세포는 물을 쉽게 흡수할 수 있도록 스펀지처럼 생겼는데 그 능력은 메말랐을 때와 비교하여 20배에 달하는 흡수력이다. 물이끼는 제 몸에서 수소 이온을 방출하여 사는 곳을 산성화시키는 식물로도 유명하다.

산성화된 물에서는 식물의 조직과 미생물의 분해가 더뎌지고 이렇게 느리게 쌓인 축적물은 이탄이 된다.

물이끼가 피트모스(peat moss=이탄이끼)로 불리는 이유다. 농원이나 정원에서 널리 사용하는 그 피트모스 말이다. 물이끼는 수 천 년을 넘게 이탄층을 켜켜이 쌓아 고층습원을 만들기도 한다.

우리나라에는 딱 한 곳이 있다. 천연기념물 246호이자 람사르협약습지로 등록된 대암산 용늪이다.

해발 1304m의 대암산 정상 부근에는 약 4500년간 꾸준히 퇴적된 이탄층이 축구장 면적의 크기로 펼쳐져 있다.

물이끼가 쌓은 이탄층의 평균 깊이는 1m가 넘는다. 용늪으로 말할 것 같으면 조름나물, 제비동자꽃 등 다양한 멸종위기종을 비롯하여 백두산에 자라는 ‘비로용담’의 남한 내 유일한 자생지로 식물학자들의 성지 같은 곳이다.

민통선 이북 지역인 대암산 일대를 관할하는 육군 제12사단과 용늪의 보전을 담당하는 원주지방환경청의 도움으로 나는 용늪에 입장할 수 있는 몇 번의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그곳에서만 볼 수 있는 희귀식물들, 삿갓사초의 장엄한 풍경, 이탄층의 꿀렁임, 카펫처럼 깔려있던 물이끼의 군무는 어느 계절에 만나도 정말 근사한 모습이었다.

물이끼의 스펀지 같은 세포벽은 물을 머금는 능력 말고도 페놀 화합물을 지니고 있어서 방부제의 기능까지 한다.

덕분에 인류는 예로부터 물이끼를 다양하게 이용했다.

병원의 외과 수술용 붕대, 전쟁터에서 응급처치용 거즈, 여성들의 천연 생리대 등 우리의 생존과 직결된 쓰임이 있었다. 최근에는 원예 업계에 다양한 방식과 용도로 물이끼를 활용한다.

물이끼는 물을 머금는 능력이 대단하다. 이탄을 만들기 때문에 피트모스로 불린다. 대암산 용늪에 가면 물이끼 군락을 만날 수 있다. [사진=허태임(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
물이끼는 물을 머금는 능력이 대단하다. 이탄을 만들기 때문에 피트모스로 불린다. 대암산 용늪에 가면 물이끼 군락을 만날 수 있다. [사진=허태임(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

또 솔이끼류 중에는 만날 때마다 사랑에 빠지게 되는 이끼가 있다. 서리이끼와 구슬이끼다. 바싹 메말라 있다가도 수분만 얻게 되면 금세 새롭게 피어나는 서리이끼는 서리가 내린 것처럼 보얗게 바닥에 깔려 자란다.

제주 서귀포에 가면 식물로 채워진 한 카페가 있다.

이따금씩 들르게 되는데 서리이끼를 자욱하게 깔아놓은 정원이 마음에 들어서다. 무엇보다도 서리이끼가 가장 아름다울 수 있도록 관수 시설을 꼼꼼히 갖춰놓은 점이 인상적이었다.

산에서 물기 머금은 바위를 만나면 유심히 살피게 된다. 구슬이끼가 자라는 곳이기 때문이다. 포자를 담고 있는 삭이 둥글고 반질반질한 구슬모양이다.

잎이 바싹 말라 한껏 움츠리고 있다가도 수분을 얻게 되면 짙은 초록색 잎을 시원스레 펼친다. 바위나 나무에 붙어서 자라는 모습은 카펫을 얹어놓은 것만 같다.

이렇게 자연적으로 이끼가 빼곡하게 모여나는 ‘이끼매트’가 최근 플랜테리어, 실내외 조경, 정원가꾸기 등이 열병처럼 번지면서 상업적으로 거래되고 있다.

바싹 메말라 있다가도 수분만 얻게 되면 금세 새롭게 피어나는 서리이끼는 서리가 내린 것처럼 보얗게 바닥에 깔려 자란다. [사진=허태임(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
바싹 메말라 있다가도 수분만 얻게 되면 금세 새롭게 피어나는 서리이끼는 서리가 내린 것처럼 보얗게 바닥에 깔려 자란다. [사진=허태임(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
구슬이끼. 포자를 담고 있는 삭이 둥글고 반질반질한 구슬모양이다. 잎이 바싹 말라 한껏 움츠리고 있다가도 수분을 얻게 되면 짙은 초록색 잎을 시원스레 펼친다. 바위나 나무에 붙어서 자라는 모습은 카펫을 얹어놓은 것만 같다. [사진=허태임(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
구슬이끼. 포자를 담고 있는 삭이 둥글고 반질반질한 구슬모양이다. 잎이 바싹 말라 한껏 움츠리고 있다가도 수분을 얻게 되면 짙은 초록색 잎을 시원스레 펼친다. 바위나 나무에 붙어서 자라는 모습은 카펫을 얹어놓은 것만 같다. [사진=허태임(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원)]

서리이끼와 구슬이끼가 포털의 쇼핑에서 검색이 되는 것이 나는 참 의아했다.

씨앗을 파종하여 식물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것과 달리 이끼는 포자로 번식하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그 수를 늘리기란 결코 쉽지가 않다.

현재 상업적으로 거래되는 그 많은 이끼매트를 얻기 위해서는 자연에서 일부를 채취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지금 거래되고 있는 그들은 어디에서 어떻게 왔을까?

키머러 박사님이 쓴 『이끼와 함께』는 올해 내가 아껴 읽은 책 중의 하나다.

아메리카 원주민 출신으로 식물학을 공부하며 이끼의 생태를 정확하게 알고 계신 분이다. 국내에서는 『향모를 땋으며』가 먼저 번역되어 꽤 알려지기도 했다.

그녀는 이끼가 상업적으로 거래되면서 생기는 숲의 불균형을 엄중히 지적한다.

두꺼운 이끼 카펫의 크기는 나무의 나이와 거의 비례하기 때문에 뜯겨나가는 이끼의 덩치가 크면 클수록 다시 자라기에는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과학적으로 증명했다.

그러니까 이끼 채취는 절대 지속가능하지 않은 행위라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끼가 뽑히면 이로 말미암아 숲의 호혜도 같이 사라진다는 점을 지적하며, 그녀 스스로 더는 방관자로 남아서는 안 된다고 준엄하게 말한다.

자연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생물의 존엄한 가치가 인간 개인의 욕심에 잠식되는 일이 내게는 너무 아픈 일이고 큰 슬픔이다.

“작지만 우아한 식물, 이끼가 전하는 지혜”는 『이끼와 함께』의 책 표지에 붙은 부제다. 그 지혜를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