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픽사베이]
[그래픽=픽사베이]

【뉴스퀘스트=정태성 행동경제학연구소 대표】 행동경제학에 대한 기본 개념은 이미 이전 글에서 수차례 얘기한 바, 더 이상의 언급은 나나 독자나 서로 피곤할 듯하다.

다만 행동경제학에서 우리가 주장하는 것들이 실제로 일어나는지에 대해서 경제학의 하위 분야답게 증명할 필요가 있는데, 주로 사용하는 방법이 실험이다.

따라서, 혹자에 따라서는 실험경제학과 행동경제학을 혼용해서 쓰기도 한다.

2010년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명단만 봐도 최근 행동경제학과 실험경제학에 대한 관심을 충분히 엿볼 수 있다.

2012년 수상자이자 ‘매칭이론’으로 유명한 앨빈로스가 실험경제학의 대가였고, 2013년에는 비이성적 시장에 대해 내러티브를 지속적으로 강조해온 행동경제학자 로버트 실러가 수상하였으며, 2017년에는 ‘넛지’의 리처드 세일러, 2019년에는 개도국 빈곤문제 해결을 위해 실험적 접근과 연구를 다수 진행한 바네르지 등이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사실에서 보듯이 10년 간 실험경제학과 행동경제학 전문가가 4명이나 포함되었다.

경제학 분야에서 이렇게 실험을 본격적으로 도입한 이후 처음에는 실험실 혹은 연구실 실험에서 시작하였으나, 점차 현장 실험으로 확대되어 갔다.

특히, 행동경제학이 정부의 의사결정자들, 조금 어렵게 표현하자면 국민의 선택을 설계하는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면서부터는 현장실험의 결과를 정책에 적극적으로 반영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현상을 가장 앞장서서 이끈 국가는 바로 영국이다.

영국에서는 2010년 선거 결과에 따라 약 65년 만에 보수당-자유민주당의 연립정부가 구성되었는데, 당시 정부의 예산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필요성에 모두 다 공감하여 BIT (Behavioural Insights Team)가 결성되었다.

즉, 정부가 행동경제학 실험 결과를 정책에 적극 반영하겠다는 의지였다.

BIT는 2년 후 일몰조항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속되어 오다가 2014년에는 영국정부로부터 독립하되, 영국정부와 자선기구인 네스타 (National Endowment for Science, Technology and the Arts)가 지분을 가진 사회적 기업형태가 되었다.

그 과정에서 과태료 미납 시민 줄이기, 의료 처방전 오류 줄이기, 투표율 제고, 직업 안내소를 통한 취업 개선, 교통사고 줄이기, 퇴직자 연금 프로그램 선택 시 올바른 선택 유도하기 등 우리나라에도 도입해 봄직한 수백 건의 프로젝트를 수행하였고, 초기 7명으로 출발한 조직은 싱가포르, 미국, 호주 등에 지사를 둔 150명이 넘는 조직으로 탈바꿈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전 세계적으로 퍼져 나가서 미국, 호주, 캐나다, 핀란드, 이탈리아 등 국가에서는 중앙정부 차원에서 행동경제학 실험과 정책을 수행하고 있으며, 국제기구 또한 행동경제학의 통찰에 주목하는 흐름을 받아들여 현재 EU의 집행위원회, OECD, World Bank 등에서도 관련 팀을 만든 상태이다.

위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행동경제학이 세계적으로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다는 점보다는 현장실험이 확산되고 있고, 이를 통해 정책을 검증한다는 점이다.

실험실 실험이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여러 전문가들의 지적에 행동경제학자들도 충분히 동의한다.

그래서 실험 대상자를 충분히 확보할 수 있으며 대부분 예산을 수반한 정책들이 비효율적이라고 비난을 받는 정부차원에서는 현장실험에 대해 더욱 애착을 가지고 진행할 수 있다.

또 현장실험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맥락 (Context)이다.

인간의 편향(Bias) 중에서는 일반화하여 적용할 수 있는 몇 가지가 있긴 하지만 대부분 맥락, 즉 상황에 따라 다르게 발현되곤 한다.

편향 중 일부는 해당 국가나 지역에서 오래전부터 관습화 되어온 문화나 사회의 기반이 되는 제도 등에 따라 나타나기도 하고 나타나지 않기도 한다.

그리고 다른 일부는 충돌되기도 한다.

결국 맥락을 고려할 때는 현장실험이 필수적이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에서 학교 앞 교통사고를 줄이는 방법을 설계한다고 하자.

몇몇 편향을 감안해서 정책을 입안하고자 한다면 그건 그냥 아이디어 회의이지 행동경제학적 접근이 전혀 아니다.

운이 좋으면 성공할 수도 있지만, 정책으로 실행에 옮긴다는 행위는 예산 투입에 따른 효율성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정책이 성공할 확률을 과학적으로 높여야 한다.

따라서 현장 실험을 통해서 운전자나 보행자의 행동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검증해야 하고, 이 결과에 따라 선택 설계를 해야 한다.

사실 현장실험을 할 수 있는 여건을 가장 잘 갖춘 조직은 정부와 함께 바로 빅테크 기업(디지털 서비스기반 시장 지배력을 가진 거대 기업)들이다.

엄청난 규모의 잠재적 실험 참가자를 확보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현장 실험에 기반한 행동경제학을 도입하기에 매우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그리고 실험의 대부분은 RCT (Random controlled trial), 무작위 통제실험이라고 하는 방법을 쓰게 되는데 빅테크 기업 중 플랫폼 기업들은 고객들을 무작위 추출하여 어떻게 행동이 변하는 지를 쉽게 알아낼 수 있다. (여기서 실험이라고 해서 사람들을 가둬놓고 하는 것을 상상하면 안된다. 예를 들면 네이버나 구글이 사용자에 따라 메뉴의 위치, 웹페이지의 기본 색 등을 변경하면서 그에 대한 반응을 추적하는 것을 생각하면 된다)

이후 자연스럽게 축적된 데이터를 활용하고 분석하기에 매우 적합한 환경과 기술을 가졌으므로 빅테크기업이야말로 행동경제학의 이론과 성과를 받아들이고 현장실험의 결과를 기업의 주요 의사결정의 지표로 삼는 것이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실제로 BIT는 행동실험에서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역량 중 하나로 빅데이터 분석을 꼽고 있다.

실험에서 나오는 데이터가 정량적인 데이터도 있지만 텍스트와 같은 정성적인 부분도 있기 때문이다.

이 역시 빅테크기업이 제일 잘하는 분야다.

오늘은 기업이 행동경제학을 응용하는 것에 대한 개론을 언급했다고 하면, 다음 글부터는 실제 기업들이 현장 실험을 통해 행동경제학의 성과를 얼마나 잘 활용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정태성 행동경제학연구소장.
정태성 행동경제학연구소장.

※ 필자소개 : 정태성 한국행동경제연구소 대표

2000년대 초반부터 기업의 전략, 마케팅과 스포츠 마케팅, 공공부문의 정책입안 등 다양한 컨설팅 업무를 진행해 왔다.

하지만 컨설팅 결과가 인간의 심리나 행동을 잘 반영하지 못할 수 있다는 고민을 하던 중, 행동경제학자인 서울대 최승주교수와 빅데이터분석 권위자인 한양대 강형구 교수와 의기투합하여 한국행동경제학연구소를 설립하였다.

이후 정부와 기업 대상 행동경제학 컨설팅을 진행하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강연 및 행동경제학 관련 칼럼과 영상을 통해 행동경제학을 보다 알기 쉽게 전파하는 데 매진하고 있다.

저작권자 © 뉴스퀘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