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퀘스트=권일구 기자 】 졌지만 잘 싸웠다. 사우디아라비아 보다 뒤늦게 뛰어든 엑스포 유치전에서 마지막까지 경쟁국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일전이었다.

29일 한국이 프랑스 파리의 ‘팔레 데 콩코드 디시’에서 열린 국제박람회기구(BIE) 제173차 총회에서 사우디아라비아의 엄청난 물량 공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세계박람회(엑스포) 부산 유치에 실패했다.

1차 투표 결과 총 165표 가운데 한국은 29표 득표에 그치며 고배를 마셨다. 사우디아라비아는 119표, 로마는 17표를 얻었다.

휘슬이 울릴 때까지 민관 원팀은 함께 최선을 다하며 박빙의 승부를 예상했지만 결과는 사우디의 대승이었다. 애초 부산은 리야드(사우디아라비아), 로마(이탈리아)에 크게 뒤진다는 평가 속에 출발했다. 대통령까지 나서며 ‘막판 뒤집기’ 가능성까지 거론하는 등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지만 여기까지였다.

한국은 투표 직전인 28일(현지시간) 진행한 최종 경쟁 프레젠테이션(PT)에서 반기문 전 사무총장, 한덕수 국무총리,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 나승연 부산엑스포 홍보대사, 박형준 부산시장 등이 나서 부산 엑스포가 인류가 당면한 공동 과제를 함께 해결하는 연대의 플랫폼이 될 것이라며 적극적인 지지를 호소했다.

또 국제사회의 지원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일궈낸 한국이 그 경험과 과실을 국제사회에 공유하고, 산업·문화 등 다양한 방면에서 중장기적인 협력 기회가 많다는 내용을 강조하며, 부산 엑스포의 차별화된 강점을 부각했지만, 득표로 이어지지 못했다.

특히 경쟁국인 이탈리아 조르자 멜로니 총리가 파리 국제박람회기구 총회에 불참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사우디와 양강 구도를 형성, 막판 뒤집기가 현실이 되는 것 아니냐는 기대감이 높아지기도 했었다.

◇ 직접 발로 뛴 재계 총수...경제 지평 새 장 마련

우리나라는 사우디아라비아보다 1년 늦게 엑스포 유치전에 뛰어들었다. 쉽지는 않았지만, 희망을 가지고 누구보다도 열심히 뛰었다. 윤 정부가 들어서면서 엑스포유치를 위한 태스크포스(TF)를 만들고, 정부와 재계로 구성된 원팀은 500여 일간의 일정동안 지구 495바퀴, 이동거리만 약 2000만km를 달리고 또 달렸다.

재계 총수들은 직접 발로 뛰면서 유치를 위해 힘을 보탰다. 최태원 SK 회장은 중남미와 유럽을 돌며 막판 유치전에 총력을 다했고,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런던, 파리 등 31개국 주요 도시를 잇따라 방문하며 적극 지원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도 체코, 인도 등 20여 개국을, 구광모 LG그룹 회장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등은 글로벌 네트워크 통해 유치에 나섰다.

엑스포 유치에는 실패했지만, 중남미와 아프리카 등과의 협력강화 등 글로벌 네트워킹 확장이라는 성과를 얻었다. 이를 통해 기업들은 교역 확대와 공급망 다각화 등에 적극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이번 엑스포 유치를 위한 '원팀'은 한국의 저력과 위상을 세계에 알리는 값진 자산이 됐다는 평가다. 

◇ 경제단체 “국가 위상 높이는 큰 성과”

이날 투표 결과 발표 직후 대한상공회의소는 논평을 통해 “국민들의 단합된 유치 노력은 대한민국의 국가경쟁력을 한 단계 끌어올렸을 뿐 아니라 한국 산업의 글로벌 지평도 확대하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이어 “각 나라들은 소비재부터 첨단기술, 미래 에너지 솔루션까지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갖춘 한국과 파트너십을 희망했다”며 “그 과정에서 기업들은 글로벌 인지도 강화, 코로나 기간 중 못했던 신시장 개척, 공급망 다변화, 새로운 사업 기회 확보 등 부수적으로 의미 있는 성과도 얻었다”고 덧붙였다.

한국경제인협회는 “전 국가적 노력과 염원에도 불구하고 2030년 부산 세계박람회 유치가 좌절된 것을 아쉽게 생각한다”며 “비록 이번에는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준비 과정에서 정부는 물론 경제계, 국민 모두가 원팀이 되어 보여준 노력과 열정은 대한민국이 하나로 뭉치게 된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이어 “엑스포 유치 노력 과정에서 이뤄진 전 세계 다양한 국가들과의 교류는 한국 경제의 신시장 개척의 교두보가 될 것이며, 엑스포 유치를 위한 노력과 경험은 앞으로 대한민국이 아시아의 리더를 넘어 글로벌 리딩 국가로 나아가는 데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도 “비록 우리가 바랐던 2030 부산 엑스포 유치는 이뤄지지 않았지만 금번 유치활동은 경제·문화적으로 발전된 대한민국을 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며 “세계 각국의 많은 정상들과 만남을 통해 폭넓은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등 국가의 위상을 높이는 큰 성과가 있었다”고 전했다.

이어 “앞으로 경영계는 정부·기업·국민이 한마음으로 뭉쳐 유치활동에 전념한 값진 경험과 정신이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경제주체로서 역할에 최선을 다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한덕수 국무총리는 “부산 엑스포 유치를 위해 노력한 기업과 국민에 감사드리며, 국민 여러분의 기대에 미치지 못해 송구하고 무거운 책임을 느낀다”며 머리를 숙였다. 이어 “결과에 대해 겸허히 받아 들이고 그동안 182개국을 다니며 모든 외교적인 새로운 자산들은 더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개최지로 선정된 사우디는 오는 2030년 10월 1일부터 2031년 3월 31일까지 예정한 리야드 엑스포에 226개국을 포함한 총 246개 기관이 참석하고, 연간 4100만명이 방문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