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닭시리즈' 히트로 위기 탈출…지난해에 이어 또 사상 최대 실적 전망
사상최대 수출실적 기록한 'K라면'신화 주도...수출액의 절반이상 차지

삼양식품이 불닭시리즈의 인기에 힘입어 지난해 사상 최대 매출을 올렸을 것이라는 업계 전망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은 '불닭시리즈'를 만들어낸 김정수 삼양식품 부회장. [사진=삼양식품]
삼양식품이 불닭시리즈의 인기에 힘입어 지난해 사상 최대 매출을 올렸을 것이라는 업계 전망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은 '불닭시리즈'를 만들어낸 김정수 삼양식품 부회장. [사진=삼양식품]

【뉴스퀘스트=김동호 기자 】 라면의 원조 삼양식품이 왕년의 명성을 되찾아가고 있다.

특히 100여개국에 판매되며 사상 최대의 라면 수출실적을 경신해가고 있는 'K라면'의 절반이상이 삼양라면일정도로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인기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삼양식품은 지난해 사상 최대실적을 달성할 것으로 예상된다.

삼양식품의 지난해 3분기까지 누적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8662억원과 1113억원을 기록했다.

또한 IBK투자증권에 따르면 삼양식품의 4분기 매출은 3186억원, 영업이익 414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삼양식품의 지난해 연간 매출은 약 1조2000억원, 영업이익도 1500억원 이상을 기록해, 역대 최대 실적 달성이 유력해 보인다.

삼양식품은 지난 2022년에도 9090억원의 매출과, 903억원의 영업이익으로 역대 최고 실적을 기록한 바 있다. 

삼양식품의 이같은 고속 성장의 바탕에는 김정수 부회장이 이뤄낸 '불닭신화'가 있다.

전인장 전 삼양식품 회장의 부인인자 고(故) 전중윤 창업주(명예회장)의 며느리인 김 부회장은 삼양식품 제2의 전성기를 이끌고 있는 '불닭볶음면'을 만든 주역이다.

김 부회장은 2010년 당시 고등학생이던 딸과 함께 서울 도심을 찾았을 때 한 식당에서 매운 맛을 찾아 줄을 선 손님들을 보고 착안해 라면에 접목시켜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이것이 '불닭 시리즈'로 완성됐다.

지난 2012년 출시된 붉닭볶음면은 유튜버들이 먹방에 나서면서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고 K팝 스타 BTS와 블랙핑크가 소개하면서 인기가 급상승, '공전의 히트를 치며 국내는 물론 글로벌시장을 휩쓸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국내라면 업체들이 생산에 판매한 글로벌 수출액이 2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삼양식품이 이 중 절반 이상을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삼양식품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까지 수출액은 5876억원으로, 전년도인 2022년 연간 실적(6057억원)에 근접해 연간 전체 수출액은 사상 최대를 기록할 전망이다.

삼양식품의 이 같은 약진에 외신들도 주목하고 있다.

미국 유력 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WSJ)는 지난 6일(현지시간) '500억달러(약 66조원) 규모의 라면시장을 뒤흔든 여성'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김정수 부회장과 '불닭볶음면'을 집중 조명했다.

삼양식품 창업주 故 전중윤 명예회장(왼쪽)과 지난 1961년 처음 국내 최초로 출시된 '삼양라면'. [사진=삼양식품]
삼양식품 창업주 故 전중윤 명예회장(오른쪽)과 지난 1961년 처음 국내 최초로 출시된 '삼양라면'. [사진=삼양식품]

삼양식품은 불닭의 선전 속에 국내시장 3위 벗어나 '라면의 원조'라는 명성을 되찾기 위해 총력을 다하고 있다.

삼양식품은 1980년대 국내 라면시장에서 시장을 선도하는 '부동의 1위'였다. 

라면 역사의 시작도 삼양식품이다.

삼양식품의 창업주 전중윤 명예회장은 지난 1961년 삼양식품을 창립한 후 1963년 국내 최초의 라면 '삼양라면'을 출시했다.

전 명예회장은 잘 나가던 보험회사(동방생명·현 삼성생명) 부사장직을 던져 버리고 회사를 창립했다. 

전 명예회장은 당시 먹을 것이 없어 미군이 버린 음식을 끓여 만든 ‘꿀꿀이죽’으로 한끼를 때우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꿀꿀이죽 먹는 동포들이 더 이상 배곯지 않게 구하고 싶다”며 라면사업을 시작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당시 쌀이 부족했던 국내 상황에서 라면은 획기적인 제품이었고,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참고로 삼양라면 출시 가격은 10원에 불과했다. 

이후 삼양식품은 30년간 라면시장을 호령한다.

그런 삼양식품에도 절체절명의 위기가 찾아온다.  지난 1989년에 터진 이른바  '공업용 우지 파동'이다.

당시 검찰은 삼양식품 등 일부 식품회사가 '식용에 적합하지 않은 우지(소기름)'를 써서 식품을 생산했다는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검찰이 소기름을 공업용으로 분류한 것은 단순히 미국의 기준을 따랐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은 사골을 먹지 않기 때문에 이를 식용으로 분류하지 않았고, 이에 한국 검찰은 소기름을 식용으로 부적절하다고 판단했다. 

당시 다수의 언론에서는 '공업용 우지' 라는 용어까지 써 가며 삼양식품을 맹공격, 파산 위기까지 가는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

특히 일부 언론에서는 '식품살인'이라는 시리즈를 게재하며 국민들을 불안 속으로 빠뜨렸고, 삼양식품의 위기를 더 심화시켰다.

전중윤 창업주의 경우 평소 라면을 즐겨먹었고, 사내 식당에서도 외부 손님에게 라면을 대접하는 등 라면에 대한 사랑이 극진했었기에 이 사건은 더 충격으로 받아 들여졌다. 

전직 삼양식품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회사의 거의 모든 업무가 중단됐고, 대부분 직원들의 업무는 반품되어 오는 제품을 처리하는데 투입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삼양식품이 당시 입었던 피해액은 수천억원 규모에 달했고, 이후 손실액이 더 불어나면서 1000여명의 직원들은 회사를 떠나야만 했다.

이후 보건사회부(현 보건복지부)가 해당 사건에 대해 '사실 무근'이라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지만 민심이 떠난지는 오래였다.

실제로 라면시장의 60% 가량을 점유했던 삼양식품은 해당 파동 후 추락을 거듭, 경쟁사에 1위 자리를 넘겨줬다.

당시 전중윤 명예회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우지 파동으로 1000여명의 직원이 회사를 떠났고, 도봉동 공장이 문을 닫는 3개월 동안 수천억원대의 손해를 입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또한 "(우지파동으로 인해) 60%에 달했던 라면 시장 점유율은 10%대로 곤두박질 쳤다"고 말하기도 했다.

해당 사건은 8년만인 1997년 대법원에 의해 무죄판결로 마무리됐지만, 안타깝게도 삼양식품의 시장 점유율은 10%대로 추락한 뒤였다.

이어 삼양식품은 22년간 본사로 있었던 종로구 수송동 종로사옥을 떠나 1997년 현재 성북구 하월곡동으로 자리를 옮기기도 했다.

하지만 회사가 사라질 지도 모르는 이런 위기를 극복해낸 게 바로 김정수 부회장이다.  김 부회장은 2012년 '불닭'이라는 히트작을 만들어내며 삼양식품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특히 국내 라면 전체 수출액 가운데 절반 이상을 '불닭볶음면'이 도맡을 정도로 외국인들에게 '불닭볶음면 먹기'는 한류문화 체험의 하나로 자리잡았다.

이에 힘입어 주가도 날아올랐다. 2015년 2만400원선이었던 주가는 올해 23만9000원(1월 5일기준)으로 10배이상 폭등했다. 

김 부회장의 재기의지와 혁신은 이에 그치지않는다. 그룹명칭도 삼양식품그룹에서 삼양라운드스퀘어로 바꿔 새로운 도약을 꿈꾸고 있다.  

이에 업계에서는 김 부회장에 대해 '시아버지의 한을 며느리가 풀어주고 있다'며 사업능력과 변화의지에 긍적적 평가를 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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