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는 약 1만5000그루의 보호수가 있습니다.마을에 오래 살아 마을 사람들의 삶과 함께 한 나무입니다. 느티나무, 은행나무, 소나무 등 여러 수종의 나무입니다. 이 나무에는 각자 스토리가 있습니다.나무와 관련된 역사와 인물, 전설과 문화가 있습니다. 이게 바로 문화콘텐츠입니다.나무라는 자연유산을 문화유산으로 승화시킨 예입니다.뉴스퀘스트는 경상북도와 협의하여 경상북도의 보호수 중 대표적인 300그루에 대한 스토리텔링을 연재합니다. 5월 3일부터 매주 5회 연재를 시작합니다. 많은 구독 부탁드립니다.【뉴스퀘스트=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나무를 심는 데에는 까닭이 있다. 이를테면 선비의 가문을 상징하기 위해 심은 나무가 있는가 하면, 다가올 미래의 화평을 기원하며 하늘에 사람들의 뜻을 전하기 위해 심은 나무도 있다.그러나 농경문화 시절, 일상적으로 나무를 심고 키웠기에 그 까닭을 일일이 기록해 놓지는 않았다.그 당시 나무를 심는다는 것은 굳이 드러내지 않아도 될 만큼 누구
【뉴스퀘스트=하응백 문화에디터 】 노원문화예술회관에서 불암산 쪽으로 길을 건너면 아파트가 아닌 자연 부락이 나타나고 삼거리에 편의점이 하나 있다(CU 중계 한아름점, 노원구 중계로 14사길 4). 이 편의점 앞에 그야말로 볼품없는 비석이 하나 서 있다. 비석의 내용은 이렇다.납대울 마을나라에 바치는 세곡(稅穀)을 모아 놓았던 곳에 유래하여 납대(納大)울 이라 하였으며 조선 선조 때 영의정 윤두수가 살았던 마을이 비석의 존재를 본지에 제보한 노원문화재단 김승국 이사장은 산책하다가 우연히 이 비석을 보았다고 한다. 노원구 홈페이지에 지명 유래를 보아도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납대울 마을 : 중계동 75-95번지 일대, 영신 여중고 자리. 조선 선조때 오음 윤두수가 살았던 마을로 조정에 조공을 모아놓은 곳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명칭”하지만 이 이상의 내용은 확인할 수 없다. 본지 하응백 문화에디터는 이 마을에 윤두수가 살았다는 근거를 찾아 나섰다.시골이라면 대대로 터를 잡고 사는 사람이 있
【뉴스퀘스트=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앞에서 계속)뛰어난 정치가이자 훌륭한 재상으로 어려운 시기의 나라를 이끌어 갔던 류성룡은 어떠한 정치철학을 가지고 있었을까. 한마디로 류성룡의 정 치 철학은 민본사상, 즉 백성이 근본이라는 사상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 민본사상을 바탕으로 한 구체적인 정치 철학은 다음과 같다.화합을 중시했던 류성룡의 정치철학첫째, 나라의 큰일을 결정할 때는 여론을 중요하게 여겼다.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의견에 따라서 일을 처리하는 게 합리적이라는 뜻이었다.임금에게도 여론을 존중하라는 상소를 여러 번 올렸으며, 여론을 무시하는 것은 나라를 위태롭게 만드는 행위라고까지 말했다.둘째, 합리적인 생각을 가진 지식인들이 뜻을 모아 조직체를 만들면 정 치를 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는 오늘날의 정당 정치와 비슷한 형태 로, 지식인들이 무리를 이루어서 서로 상의하고 공정하게 경쟁하면 좋은 정치를 실현할 방법이 나온다고 여겼다.셋째, 좋은 인재를 선발해야 좋
【뉴스퀘스트=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50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조선사회가 겪었던 가장 커다란 국란은 임진왜란이다.조선은 1592년(선조 25년)부터 1598년(선조 31년)까지 두 차례에 걸쳐 한반도를 침략한 일본을 물리치기 위해 처절한 싸움을 벌여야 했다.이 싸움으로 인해 어마어마한 인명 피해는 말할 것도 없고, 전 국토가 황폐화되었으며 국가경제가 파탄이 나는 지경에 이르렀다.문화재 손실도 막심해서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을 비롯한 많은 건축물과 서적과 미술품이 소실되고 약탈당했다.역대 왕조의 실록을 포함하여 귀중한 사서 (史書)를 보관한 사고(史庫)도 전주사고만 남고 모두 소실되고 말았다.임진왜란은 왜 일어났나?아무런 준비도 하지 못한 상태에서 전란을 맞이한 조선은 연전연패할 수밖에 없었다.온 국토가 일본의 손아귀에 거의 넘어갈 무렵, 전열을 가다듬은 민관군의 총반격으로 겨우 나라를 지킬 수 있었다.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해낼 수 있었던 것은 전국 방방곡곡에서 일어난
송일국 장영실, KBS는 ‘슈퍼맨 시청률’ 의식한걸까[트루스토리] 최성미 기자 = 송일국 장영실 출연을 두고 벌써부터 잡음이 불거지고 있다. 슈퍼맨을 왜 계속 출연하느냐는 것. 송일국 장영실은 이 때문에 주요 포털 화제의 검색어로 등극하며 갑론을박을 유발하고 있다.시청자들과 누리꾼들은 KBS가 소개한 것처럼 장영실이 ‘대하드라마’라는 점을 감안, 슈퍼맨의 경우 ‘박수칠 때 떠나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삼둥이를 내려놓고 드라마에만 ‘올인’하라는 것. 장영실을 보면서 장영실 역에 집중하지 못하고 삼둥이 아빠의 이미지가 떠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결국 선택과 집중에서 송일국이 판단 미스를 내린 것 아니냐는 지적이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다. 이 때문에 그가 슈퍼맨을 지속하는 이유를 두고, 어머니가 새누리당 의원임을 감안해 내년 ‘총선’과 연관시키는 확인되지 않는 카더라 통신마저 SNS을 통해 나오고 있다. 물론 이 같은 루머에 대해 송일국 측은 ‘사실무근’이라고 선을 긋고 있다.일각에서는 장
[트루스토리] 박인학 이승진 기자 = 박원순 서울시장은 ‘국회의원 정수를 늘려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과 관련, “비례대표제, 독일형 명부식 비례대표제라든지 이런 것이 더 확대되는 게 중요하지 않는가 생각한다”고 말했다.박 시장은 27일 오전 CBS라디오 ‘박재홍의 뉴스쇼’에 출연, “국회가 지금 국정이 워낙 복잡다단해지고 있고. 우리가 국가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그런 좀 더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좀 더 참여할 수 있는 국민의 대표성 등의 기능도 중요하다”며 이 같이 말했다.박 시장은 이어 “그래서 많은 전문가들이 독일형의 명부식 대표제에 동의하고 있는 것 같다”며 “그래서 이런 것들로 좀 강화되는 게 필요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덧붙였다.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종식 선언을 앞두고 서울시의 대응에 대한 소회도 밝혔다.박 시장은 “메르스라는 미증유의 질병으로부터 우리가 시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것, 이것이 시의 또는 대한민국의 존재 이유이지 않느냐”며 “그래서 이번에 우리가 메르스를
방송 직후 윤두수, 정여립, 송익필 등 실검지분 차지, “역시 믿고 본다” 시청자 호평 세례[트루스토리] 김현경 기자 = ‘징비록’이 믿고 보는 명품 대하드라마의 시작을 알렸다.지난 14일 대망의 포문을 연 KBS 1TV 광복 70주년 특별기획 대하드라마 ‘징비록’은 정치관이 다른 대신들의 대립을 다룬 밀도 높은 이야기의 빠른 전개, 세련된 연출, 몰입도 최고의 연기 등 ‘좋은 드라마’의 예를 여실히 입증, 대하드라마의 무게감을 보여줬다.이에 시청자도 반응했다. 방송 직후부터 뜨거운 관심을 드러난 것. 우선 수치가 말해줬다. 시청률 조사기관 AGB닐슨 코리아에 따르면 첫 방송 시청률은 10.5%(전국시청률기준)를 기록했다. 드라마 시청률 가뭄 시대에 첫 방부터 두 자릿수 시청률을 나타낸 것이다.방송 중과 후 오랜 시간 실시간 검색어에는 ‘징비록’은 물론이고 선조, 윤두수, 정여립, 송익필 등 다양한 등장인물이 다수 지분을 차지했다.무엇보다도 관련 SNS와 해당 드라마게시판에는 호평
1793년 이후 보나파르트 나폴레옹(Napoleon Bonaparte)의 프랑스군은 잇달아 승리를 거두었다. 많은 인명손실이 따랐지만, 그들의 전술은 단순하고 젊은 장교들과 열정적인 병사들로 이루어진 군대에게는 적정한 전술이었다. 당시 전쟁은 경험과 기술보다는 용기와 의욕을 더 필요로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나폴레옹은 오스트리아군과 피에몬테군을 분리시키고 각각을 격퇴한 다음에 롬바르디 평야를 완전히 장악하기까지 12개월 동안 12차례의 승리를 거두었다. 신속하게 행군하고 유연하게 작전행동을 취하고 적의 취약 부분에 병력을 집중하여 연전연승했다. 이탈리아에서 프랑스군의 사기는 하늘 높이 치솟고, 동시에 나폴레옹의 인기도 급상승했다.그는 누구보다 뛰어난 전략과 전술의 달인이었다. 그는 혁명군대의 장점을 최대로 살리고, 징집 령으로 확보한 무장병력을 자유자재로 활용했다고 한다.또 최신정보를 수집하고 세심한 조사를 거쳐 작전계획을 수립했으며, 그 자신이 손수 최종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적절한
[트루스토리] 송은정 기자 = 이순신 장군에 대해 환상을 갖거나 막연히 동경하는 이들이 많다. 비교할 수 없는 열세에도 불구하고 지략과 지형을 이용하여 왜군을 대파하고 승리를 이끈 해전이 전설처럼 남아 있기 때문이다.유광남 작가 역시 불과 13척의 배로 적선 330여 척과 투쟁해 위대한 승리를 이룬 인물에 대한 동경으로부터 이순신에 대한 자료 수집을 시작했다. 그러다 이순신이 스스로 목숨을 내놓았다는 사실에 깊은 아쉬움을 느끼며, 판타지로써나마 그가 선택하지 않은 다른 길로 들어가 역성혁명에 대한 꿈을 꿨다.작가는 ‘그가 진정한 영웅이라면 백성을 우선 구원했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아쉬움에서 ‘행동하는 이순신’이라는 가상의 스토리를 통해 이루어지지 않은 꿈을 구체화시켰다. 만약 이순신이 역성혁명을 하여 신제국 건설을 시도했다면 조선은 어떻게 뒤바뀌었을까를 흥미진진하게 따라가다 보면 지금의 우리가 바라는 강력하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에 대한 꿈이 구체화되는 지점에 이른다.작가는 이번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