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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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퀘스트=정태성 행동경제학연구소 대표 】 민족 대명절 추석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추석의 기원이야 다들 아는 바와 같이 조상에 감사하며 추수한 온갖 음식들을 차려 서로 모여서 즐겁게 축하하는 자리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추석은 차례를 지내며 조상에 감사한다는 의미보다는 다들 뿔뿔이 흩어져 살다가 오래간만에 얼굴 보고 안부를 확인하는 자리라는 성격이 더 크지 않나 싶다.

부모님의 얼굴을 보고, 형제 자매가 그간 어떻게 살았는지 확인하고, 나아가 삼촌, 사촌 등 혈연 관계가 확대된 친척들까지도 모여서 안부를 묻는 자리이다.

어른들까지 모이는 자리인 만큼 추석 때는 온갖 이야기가 펼쳐진다.

요새는 조금 뜸해졌다고는 하지만 결혼 안 한 사람들이 싫어하는 ‘왜 아직 결혼 안하느냐?’, 결혼을 한 부부들이 싫어하는 ‘왜 아직 애가 없느냐?’는 얘기는 설령 부모는 안 하더라도 꼭 가끔 보는 친척들이 더 나서서 하고는 한다.

‘우리 때는 안 그랬는데, 요새는 왜 그런지 몰라?’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말이다.

그러고 보니, 추석같은 명절 때야말로 ‘좋았던 옛날 편향 (Good-Old-Days bias)’을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시기이다.

‘좋았던 옛날 편향’은 워터루 대학의 리처드 아이바크 교수가 2009년에 미국심리학회에 발표한 ‘좋았던 예전 시절에 대한 이데올로기’ (Ideology of the good old days: Exaggerated perceptions of moral decline and conservative politics)라는 연구에서 나온 내용으로 사람들이 때때로 어떠한 상황들이 실제로 개선됨에도 불구하고 안 좋아지고 (Decline) 있다고 생각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바꾸어 말하면, 예전이 훨씬 좋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의미하며 시쳇말로 ‘라떼는 말이야’라는 꼰대들의 언어이기도 하다.

“예전에 결혼하면 바로 애 낳는 것부터 신경썼는데 요새는 자기들끼리 더 시간 가지고 낳는다며? 왜 그런지 몰라. 철이 없어서 그런 거지”, “저 나이 되도록 결혼을 안 한다니 말이 되나? 자기 딴에는 눈에 확 들어오는 사람이 없다고 하는데.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말이야”라고 추석 때 흔히 듣는 얘기는 변하지가 않는다.

시대가 변해서 평등해지고 합리적인 세상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추석이라는 이름 하에 끊임없이 온갖 음식을 차려내고 계속해서 술상을 봐야 했던 그러한 추석을 회상하며 “그때가 좋았지. 어른들한테도 공경하던 그때 말이야”라고 얘기하는 일부 어른들도 그냥 ‘좋았던 옛날 편향’에 사로잡혀 있다고 보면 된다.

조금은 다른 의미이지만 비슷하게 쓰이는 다른 용어들도 있다.

첫 번째는 ‘므두셀라 증후군’이다.

므두셀라 증후군은 ‘예전에는 좋았지’라고 생각하는 면에서는 ‘좋았던 옛날 편향’과 유사하게 볼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과거의 안 좋은 기억들 없애고 좋았던 기억들만 증폭시키는 현상을 의미하는 말로 일종의 도피심리 같은 것이다.

내가 행복했던 과거만 기억하게 되면 그 행복에 대한 기억들도 과장되고 왜곡되어서 행복을 증폭시킬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예전에 인터뷰 했던 사람들 중에 ‘삼청교육대’로 끌려가서 죽도록 고생했던 사람이 있었는데 인터뷰 말미쯤에 그래도 지금보다는 ‘전두환 때가 좋았어’라는 말을 듣고 경악을 했던 적이 있다.

최근 들어 생각해 보니 그게 바로 ‘므두셀라 증후군’ 아니었나 싶다.

또 비슷한 용어로 ‘경로의존성 (Path Dependency)’이라는 단어도 있다.

경로의존성은 일정한 제품이나 관행에 익숙해져 의존하기 시작하면 나중에 그 경로가 비효율적으로 되더라도 이를 벗어나지 못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사실 경로의존성은 사회심리학 용어라고 단정짓는 글들도 있기는 하나, 폴 데이빗(Paul David, “Clio and the Economics of QWERTY”), 브라이언 아서 (Brian Arthur, “Competing Technologies, Increasing Returns, and Lock-In by Historical Events”)라는 두 경제학자가 19080년 중반에 각각의 논문에서 중요한 개념으로 설명하여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아마, 중장년층들은 예전에 ‘차들은 오른쪽 길 사람들은 왼쪽 길’이라는 가사가 들어가 있는 ‘길가는 노래’라는 동요를 배웠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랬는데, 언제부터인가 ‘보행자 우측 통행’이라는 간판을 여기저기서 보게 되면서 막상 오른쪽 길로 가려하니 한동안 적응하기 매우 어려웠던 기억이 난다.

이러한 상황을 ‘경로의존성’이라고 보면 된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오른쪽 길로 통행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다 보니 나 또한 왼쪽 길을 고집하면 사람들과 부딪힐까 겁이 나서 오른쪽 길로 가게 되어 이제는 우측 통행이 경로의존성이 되었다. (참고로 특정 전략을 택하는 사람이 많을 수록, 즉 오른쪽 길을 가는 사람이 많을수록 그냥 따라하게 되는 것을 전략적 보완성이라고 한다.)

각설하고 추석이다.

이번에는 적어도 ‘좋았던 옛날 편향’에 사로잡혀 ‘우리 때 추석이 훨씬 좋았다고 우리 때 모습이 좋았다’고 너무 넋두리 하지 말자.

물가가 올라서 허리띠 졸라매게 된 것 말고 지금 모습이 충분히 아름답고 좋다.

적어도 아랫사람에게 무언가 말을 하고 싶을 때는 안부를 물은 후, 지금이 충분히 아름답고 소중하다고 얘기하는 걸로 끝내자.

※ 필자소개 : 정태성 한국행동경제연구소 대표

정태성 한국행동경제연구소 대표
정태성 한국행동경제연구소 대표

2000년대 초반부터 기업의 전략, 마케팅과 스포츠 마케팅, 공공부문의 정책입안 등 다양한 컨설팅 업무를 진행해 왔다.

하지만 컨설팅 결과가 인간의 심리나 행동을 잘 반영하지 못할 수 있다는 고민을 하던 중, 행동경제학자인 서울대 최승주교수와 빅데이터분석 권위자인 한양대 강형구 교수와 한국행동경제학연구소를 설립하였다.

이후 정부와 기업 대상 행동경제학 컨설팅을 진행하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강연 및 행동경제학 관련 칼럼과 영상을 통해 행동경제학을 보다 알기 쉽게 전파하는 데 매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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