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33억 만기에 손실액 5221억원으로 평균 손실률 53.6% 기록
피해자 단체 “은행권의 불완전 판매로 피땀 흘려 모은 돈 잃게 돼”
상품 판매 당시 적합성 준수 여부에 따라 배상 규모 책정될 듯

지난달 19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홍콩H지수(항셍중국기업지수) 기초 주가연계증권(ELS) 투자자들이 피해 보상 등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달 19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금융감독원 앞에서 홍콩H지수(항셍중국기업지수) 기초 주가연계증권(ELS) 투자자들이 피해 보상 등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뉴스퀘스트=김민수 기자】 홍콩H지수(항셍중국기업지수) 흐름과 연동된 5대 은행의 주가연계증권(ELS)의 손실 규모가 5000억원을 넘어서면서 투자자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금융당국은 해당 상품을 판매하는 과정에서 적합성 원칙 위반 등 불완전 판매가 진행됐는지 면밀히 들여다보면서 배상 규모를 책정할 예정이다.

다만, 이미 홍콩ELS 관련 수천억원대의 손실이 확정된 만큼 ‘상생금융’ 실천을 다짐해 온 주요 은행들이 실제로는 수익성 강화에만 몰두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 홍콩H지수, 2021년 고점 대비 절반 수준에 불과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NH농협·신한·우리·하나은행(가나다 순) 등 5대 은행이 판매한 H지수 기초 ELS 상품 가운데 올해 들어 이달 7일까지 총 9733억원어치의 만기가 돌아왔다.

이 중 고객이 돌려받은 돈(상환액)은 4512억원으로 평균 손실률은 53.6%(손실액 5221억원/원금 9733억원)을 기록했다.

특히 H지수가 5000 밑으로 떨어진 지난달 하순 만기를 맞은 일부 상품의 손실률(58.2%)은 거의 60%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날 현재 H지수(5306)으로 여전히 2021년 당시 고점(약 1만2000)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더 큰 문제는 올해 상반기에만 무려 10조 2000억원의 H지수 ELS의 만기가 도래하기 때문에 H지수가 반등하지 못하고, 현재 흐름을 유지할 경우 전체 손실액은 7조원 안팎까지 불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금융당국은 대책 마련에 나선 상황이다.

이달 초 이복현 금융감독원 원장은 “설 연휴 전 검사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유형화·체계화한 후 이달 마지막 주까지 회사 내에서 자체적으로 점검하거나 추가 검사에서 문제점을 발굴해 책임 분담 기준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원장은 아직 소송 등을 통해 법적 책임이 가려진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책임·손실) 분담 기준안’이라고 신중한 표현을 사용했다.

그러나 은행권은 결국 금융 당국이 사실상 ‘배상안’ 가이드라인(지침)을 이달 말 전후 제시할 가능성을 시사한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금융당국은 지난해 말 이후 주요 금융사를 상대로 현장 검사를 통해 ESL 불완전 판매 여부 등을 점검해왔다. 

금감원 검사국뿐 아니라 분쟁조정국 관계자들이 은행 판매 직원, 실제 가입 고객을 상대로 판매 과정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다.

은행권 관계자는 “분쟁조정국 투입은 배상안 가이드라인 마련을 위한 근거 자료, 사례 수집을 위한 행보로 보인다”고 전했다.

◇ 피해자 모임 “명백한 은행 책임”…금융당국, 배상 기준 검토 전망

금융당국이 적극적으로 현장조사에 나서고 있는 이유는 피해자 모임을 중심으로 이번 사태에 대한 비판적인 여론이 형성돼있기 때문이다.

‘홍콩 지수 ELS 피해자 모임’은 기자회견 등을 통해 은행들이 초고위험 상품을 판매하는 과정에서 제대로 된 상품 설명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길성주 피해자모임 위원장은 “은행권의 불법적이고 무책임한 ELS 상품의 불완전 판매로 평생 피땀 흘려 모은 자금을 잃을 처지에 놓였다”며 “이번 사태는 은행의 위법적이면서 무책임하고, 탐욕스러운 행위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과거 DLF(파생결합펀드) 등 사모펀드 사태 당시 금융당국은 분쟁조정위원회를 열어 불완전 판매 여부를 판단하고 배상 기준을 제시한 바 있다. 

불완전 판매 유형을 ▲적합성 원칙 위반 ▲설명의무 위반 ▲부당 권유로 분류한 후 각 피해 주장 사례가 세 가지 유형에 어느 정도 해당하는지 점수를 매겨 높을수록 많은 배상을 결정했다.

금융감독 용어 사전에 따르면 이 중 적합성 원칙은 금융사가 파악한 투자자 특성(투자목적·재산상태·투자경험 등)에 적합하게 투자를 권유할 의무 또는 부적합한 투자 권유 금지를 의미한다.

또 금융소비자 보호에 관한 감독 규정은 금융사가 투자자의 거래목적, 금융상품 이해도, 재산 상황, 투자성 상품 취득·처분 경험, 연령 등을 기준으로 투자 적합성을 판단하도록 명시됐다.

예를 들어 노후 대비 자금을 안정적으로 운용하려는 은퇴자에게 이번 ELS처럼 고위험·고수익 파생금융상품이나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주식형 펀드 등을 금융회사가 권유했다면 적합성 원칙 위반에 해당할 수 있다.

만약 ELS 판매 과정에서 금융회사가 손실 가능성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거나, “예금과 똑같다”는 식으로 가입을 유도했다면 설명의무 위반이나 부당 권유 유형의 불완전 판매로 볼 수 있다.

◇ 금융소비자보호법 위반 및 불완전 판매 여부에 ‘촉각’

일각에서는 은행권이 투자자의 성향을 여러 차례 확인했고, 본인 서명·녹취 등의 증빙 자료가 있다는 점을 근거로 배상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주요 은행들이 홍콩ELS와 같은 투자 위험도가 높은 상품을 고객들에게 슬쩍 판매하는 경우는 없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금융당국의 최종 조사결과가 나와 봐야 알겠지만, 은행들도 금융소비자보호법을 최대한 준수한 상태에서 관련 상품을 고객들에게 소개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은행권에서는 ‘상생금융’으로 애써 쌓아온 긍정적인 이미지가 한순간에 훼손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은행권 관계자는 “은행별로 수천억원대에 이르는 상생금융 프로그램을 통해 소상공인·자영업자·금융 취약 계층을 위한 각종 지원 방안을 내놓은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러나 현재의 흐름처럼 홍콩ELS 사태로 인한 손실이 7조원에 달할 경우 상품 판매로 인한 수익성 확보에만 몰두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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