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글로벌펀드 등 세계곳곳서 'ESG 바람'...'생존' 걸렸지만 대책은 미지근

한국무역협회 브뤼셀지부는 최근 유럽연합이 기업들에게 '인권 및 환경 실사'를 의무화하는 법률 제정을 추진하자 "기업의 리스크를 증대시킬 수 있다"는 의견서를 8일(현지시간) 제출했다. [일러스트=연합뉴스]

【뉴스퀘스트=김보민 기자】 최근 유럽연합(EU)이 기업들의 공급망에서 인권 및 환경 실사(due diligence)를 의무화하는 법률 제정을 추진하면서 현지에 진출하거나 수출하는 한국 기업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사실상 법제화를 통해 기업들에게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활동을 하라고 요구한 것인데 국내 기업들은 아직까지 뾰족한 대책이 없기 때문이다.

이에 한국무역협회 브뤼셀지부는 유럽에 진출한 300여개 한국기업을 대표하는 '유럽한국기업연합회' 명의로 EU 집행위원회에 8일(현지시간) 의견서를 제출했다.

해당 의견서에는 “글로벌가치사슬(GCV)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현재의 비즈니스 환경에서 원청기업이 모든 납품업체의 규정을 준수하는지 일일이 체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ESG 경영 독려를 통해 기업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기업을 규제하게 되면 하청업제의 경영 자율성을 침해하고 법적 리스크를 과도하게 증가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내비친 것이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후보자 시절부터 "기후변화는 안보위협"이라며 임기 중 탄소중립을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사진은 2019년 6월 4일 뉴햄프셔주의 한 태양광 발전 프로젝트 현장에서 태양광 패널 옆으로 걸어가고 있는 바이든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하지만 일각에선 기업들이 ESG 흐름을 외면할 순 없을 것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미 전 세계에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며 관련 경영활동을 실행하는 이들을 우대하고, 그렇지 않은 기업을 규제하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한국처럼 수출주도형 경제로 수익을 내는 국가에겐 ESG는 이제 선택이 아닌 ‘생존’이 되었다. 

우선 무역협회에서 문제 삼고 있는 EU의 입법 권고안은 기업의 공급망 전 과정에서 인권 및 환경 등을 침해하는 활동 여부를 확인·보고·개선할 의무를 부여하는 데 의의를 두고 있다.

유럽의회는 지난달 27일 기업의 공급망 인권 및 환경 실사 의무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입법 권고안을 채택했고 EU집행위원회는 이해관계자 의견수렴을 거쳐 올 2분기 내에 법률 초안을 제시할 계획이다.

위반 시 벌금을 물거나 피해를 보상해야 한다. 적용 대상은 EU소재 기업 뿐만 아니라 EU 시장에 진출하려는 기업들까지 포함된다.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유럽의 대표 경제단체인 비즈니스유럽(BusinessEurope)은 지난 21일 발표한 입장문을 통해 이번 조치가 기업에 과도한 부담을 초래한다고 반발했다.

반면 나이키, 유니레버 등이 소속된 유럽브랜드협회(AIM)는 입법을 지지하고 있어 이번 조치가 EU 시장 진출의 새로운 비관세장벽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한편 미국의 조 바이든 행정부도 친환경 사업을 중시하며 관련 법안과 규제안을 조만간 도입할 예정이다. 

특히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당시 최대 공약으로 ‘탄소중립’을 선언한 만큼 탄소국경세를 도입해 배출량이 많은 국가와 기업을 옥죌 가능성이 크다.

또한 미국의 공적연기금인 뉴욕주공무원퇴직연금은 2040년까지 '넷제로'를 달성하지 못하는 에너지기업에겐 투자액을 모두 회수하겠다고 공언했다.

블랙록 등 글로벌 펀드들도 총매출 25% 이상이 석탄화력생산·제조에서 발생한 기업들을 투자 리스트에서 제외하겠다고 단언했다.

SK그룹은 지난 1월 27일 오전 10시부터 1시간 동안 ‘유퀴즈 온 더 플라스틱, 지속가능한 플라스틱 생태계를 위하여’를 주제로 한 SOVAC 1월 행사를 유튜브 등을 통해 방송한다. 행사 참가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SK 제공]
SK그룹은 지난 1월 27일 오전 10시부터 1시간 동안 ‘유퀴즈 온 더 플라스틱, 지속가능한 플라스틱 생태계를 위하여’를 주제로 한 SOVAC 1월 행사를 유튜브 등을 통해 방송했다. 행사 참가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SK 제공]

이처럼 ESG가 당장 해외 수출길과 교역을 막을 수도 있는 위협요인으로 다가오고 있지만, 현재 국내에선 관련 가이드라인과 평가체계가 미흡한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한국 맞춤형 ESG 체계를 구축하고 평가등급을 산출하기 위한 의무공시도 서둘러야 한다고 보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기업들이 RE100(기업이 사용하는 전력 100%를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것)을 속속 선언하는 데에 따라 국내 기업들도 전세계 흐름에 맞춰 충분한 대비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는 것이다. 

지금은 연말마다 연탄을 배달하거나 소외된 이웃에게 도시락과 기부금을 전달하는 등 연말연시와 명절 등을 기점으로 관련 활동들이 시행되고는 있으나, 조금 더 범세계적인 차원의 활동을 추진해나갈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국내 기업들도 고민이 많아진 것으로 보인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연초 신년사를 전달하며 "ESG를 기업 경영의 새로운 규칙으로 삼아야 한다"며 "기업의 역할과 경영의 새로운 원칙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기 위해선 기업 간의 공감대가 먼저 선행될 필요도 있다.

업계의 한 경제연구원은 "글로벌 시장에서 ESG가 계속 거론되고 있지만, 일부 국내 기업들은 왜 이러한 경영기조가 중요한지 아직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며 "ESG 왜 도입해야 하는지,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를 따져보고 경영진과 조직 내 공감이 먼저 선행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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