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퀘스트=김민수 기자】 DGB대구은행이 ‘3고’(고금리·고물가·고환율)로 어려운 경제 상황을 겪고 있는 소상공인, 영세 자영업자 등 경상북도 금융 취약계층 지원에 나선다.9일 DGB대구은행(은행장 황병우)은 경상북도청에서 경상북도(도지사 이철우), 경북신용보증재단(이사장 김세환)과 ‘경상북도 상생금융지원’ 업무협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이번 협약은 신속한 자금지원을 통한 상생금융 실현을 목적으로 마련됐으며, DGB대구은행은 120억원을 한도로 특별 출연한다.DGB대구은행이 신용보증재단에 출연하는 120억원 한도의 특별출연금을 재원
【뉴스퀘스트=김소영 기자 】 DGB대구은행(은행장 황병우)은 안동 풍천면 경상북도청에서 경상북도 수출산업 활성화·수출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경상북도 수출기업 경쟁력 강화 상생금융 실천을 위한 업무 협약(MOU)’을 체결했다고 1일 밝혔다.협약 체결은 도내 수출지원기관인 경북수출기업협회(회장 이정곤), 경상북도경제진흥원(원장 송경창), 경북테크노파크(원장 하인성)와 진행됐다.수출기업종합지원의 일환인 해당 협약을 통해 지역 유망 수출기업의 추천, 정보공유, 상호간 사업 홍보 협력 등이 이뤄질 예정이다.DGB대구은행은 지역 대표 금융
【뉴스퀘스트=박상미 기자 】 11번가는 경상북도·경상북도경제진흥원과 함께 오는 연말까지 경북지역 우수 중소기업의 온라인 판로 확대 및 판매 활성화를 위한 ‘2023 경북세일페스타 온라인 전용상품 대전’ 기획전을 진행한다고 25일 밝혔다.대표 상품으로 문경의 특산품 약돌돼지를 활용한 ‘고기 폭탄 짜글이’, 주문 당일 도정하는 ‘9분 도미 안동 백진주쌀’, 국산 사과를 전통비법으로 천연 발효해 만든 ‘사과담은 발효식초’ 등이 있다.11번가 권정웅 마트담당은 “11번가가 가진 온라인 판매 노하우를 활용, MD들이 직접 상품 기획에 참여하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지배구조(Governance)의 영문 앞 글자를 딴 ESG는 산업 분야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국민 일상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지자체의 평가 기준에도 활용될 수 있다. 그만큼 ESG는 이제 더 넓은 영역에서 활용하는 글로벌 평가 기준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뉴스퀘스트와 ESG연구소(소장 안치용)은 금융기관, 시가총액 상위 100대 기업에 이어 지자체 ESG 평가를 실시했다. 세종특별자치시를 제외한 16개 광역지자체를 살펴봤으며, 공신력 있는 기준을 마련해 평가 결과의 객
【뉴스퀘스트=김보민 기자】 KT가 경상북도와 '디지털플랫폼 활성화로 4차 산업혁명 선도를 위한 공동협력' 업무협약을 체결했다고 16일 밝혔다.KT와 경상북도는 이번 업무협약을 통해 ▲코로나19 대응과 지역경제 활성화 ▲미래먹거리 발굴 ▲도청신도시 활성화 등 3개 분야에서 7개 세부과제를 설정해 협력하기로 했다.이들은 먼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백신접종 AI(인공지능) 보이스봇 콜센터'와 '소상공인 상권정보 서비스(잘나가게)를 올해 시범 운영한다.'백신접종 AI보이스봇 콜센터'는 AI상담사가 백신 접종 대상자에게 사전 안내와 상담을 진행해 일선 공무원의 업무를 경감시키고 신속한 대응을 가능하게 하는 효과를 낳을 것으로 보인다.'잘나가게'는 창업자·예비 창업자와 가게 사장들에게 주변 상권의 유동인구와 매출 정보, 고객 동선 등의 정보를 제공하는 서비스로, 창업 컨설팅 효과뿐만 아니라 자영업 폐업률을 완화해줄 것으로 기대된다.경상북도는 미
대한민국에는 약 1만5000그루의 보호수가 있습니다.마을에 오래 살아 마을 사람들의 삶과 함께 한 나무입니다. 느티나무, 은행나무, 소나무 등 여러 수종의 나무입니다. 이 나무에는 각자 스토리가 있습니다.나무와 관련된 역사와 인물, 전설과 문화가 있습니다. 이게 바로 문화콘텐츠입니다.나무라는 자연유산을 문화유산으로 승화시킨 예입니다.뉴스퀘스트는 경상북도와 협의하여 경상북도의 보호수 중 대표적인 300그루에 대한 스토리텔링을 연재합니다. 5월 3일부터 매주 5회 연재를 시작합니다. 많은 구독 부탁드립니다.【뉴스퀘스트=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외솔배기 소나무는 내연산 등산로 능선 중간에 서 있는 큰 나무로 쉼터와 이정표 구실을 한다.인근에서는 가장 큰 소나무로 수령은 250년 정도다.내연산은 여러 등산 코스가 있고 경상북도 수목원을 기점으로 했을 때 삿갓봉과 외솔배기 소나무를 거쳐 우척봉을 지나 내연산 골짜기로 들어가 보경사에 이를 수 있다.유계저수지에서 출발하여 삿갓봉과 외솔
【뉴스퀘스트=김동호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서울 등 12개 시·도교육청이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의 2학기 조기 무상교육 도입 입장을 밝힌 가운데, 여기서 제외된 나머지 지자체의 학부모들이 형평성 논란을 제기하고 있다.올해부터 전국 고등학교 2~3학년 학생들은 무상교육 혜택을 받고 있으며, 고등학교 1학년의 경우 내년 1학기부터 적용대상이 된다.이 때문에 현재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은 올해 분기별로 수업료 35만원과 운영지원비 7만원을 포함 42만원(연 160만원) 가량을 부담하고 있다.그러나 올해 초부터 시작된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개학이 연기되고, 4월부터 시작된 수업도 대부분 온라인으로 진행되면서 수업의 질에 대한 불만과 함께 조기 무상교육 도입 요구가 이어지고 있다.특히 최근 서울과 부산 등 12개 시도교육청은 오는 2학기부터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의 무상교육을 조기 실시하겠다고 밝혔으나 경기도와 대구광역시, 광주광역시, 경상북도, 전라북도 교육
【뉴스퀘스트=강영민 기자】 경상북도 내 청도 대남병원과 신천지대구교회와 관련한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속하게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이번엔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마치고 돌아온 카톨릭신자 다수가 추가 확진자로 확인되면서 혼란이 커지고 있다.경상북도에 따르면 이날 오전 9시 현재 도내 코로나19 확진자는 187명으로 이중 청도 대남병원 관련자가 111명, 신천지교회 관련 32명, 성지순례자가 28명이며 나머지는 감염경로에 대해 조사 중에 있다.성지순례은 천주교 안동교구 소속 신자 39명(가이드 1명 서울 포함)으로 이스라엘을 다녀왔으며, 이 중 28명이 확진 판정을 받은 상태다.경북 의성과 안동, 영주 등 경북 북부지역 주민 39명으로 구성된 해당 성지순례단은 지난 8일부터 16일까지 이스라엘을 다녀온 뒤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했다.성지순례단 확진자를 지역별로 보면 의성군이 19명으로 가장 많고 안동 5명, 영주 1명, 영덕 1명, 예천 1명, 서울 1명 등이다. 이중 영덕과 예천에서 확인된
【뉴스퀘스트=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앞에서 계속)열 살 무렵부터 김성일은『소학』,『사서』,『시경』등 유교의 기본경전을 공부하면서 학문의 토대를 쌓았다.열일곱 살 무렵에는 맏형의 부임지에 따라가서 공부를 했으며, 열아홉 살 무렵에는 세 살 아래 동생 김복일과 함께 풍기의 소수서원에 가서 공부를 했다.그때 소수서원에는 퇴계의 제 자 황준량(黃俊良)이 있었다. 황준량은 학식이 높기로 소문이 난 인물이었다.그에게서 퇴계의 명성을 전해들은 김성일은 퇴계를 흠모하기 시작했다. 열심히 정진하여 점점 공부가 깊어지던 어느 날, 김성일은 책을 덮으며 탄식을 했다.퇴계의 3대 제자가 되다“선비가 세상에 태어나서 과거를 보기 위한 공부만 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천지만물의 이치와 자기 자신의 본질을 깨우치는 학문을 모르고 어찌 살아갈 수 있단 말인가.”김성일은 집으로 가서 아버지에게 말했다.“우리나라 최고의 스승이신 퇴계 선생에게서 학문을 배우고 싶습니다.” 아버지가 흔쾌히 허락하자 김성일은 동생
【뉴스퀘스트=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앞에서 계속)임진왜란 초기에 남쪽을 지키던 대부분의 장수와 병사들은 일찌감치 피난을 가버렸다. 아무런 준비도 없었던 데다 왜군의 신무기인 조총을 당 해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때문에 갈수록 전세가 불리해졌고 민심도 흉흉해졌다. 선조가 중국으로 망명할 것이라는 소문도 돌았다. 그렇게 되면 조선은 일본의 손아귀에 완전히 넘어가고 마는 것이었다.죽기를 각오하고 왜적과 싸우다절체절명의 상황에서 극적인 반전의 계기를 마련한 것은 의병들의 궐기였다. 경상도를 시작으로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우후죽순처럼 일어났다.이들은 오로지 내 가족과 내 삶의 터전을 왜적으로부터 지키겠다는 일념뿐이었다.때문에 사기가 드높았고 죽기 살기로 싸워서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의병을 일어나게 하고 그 의병들을 잘 조직해서 전세를 유리하게 이끄는 계기를 마련한 데에는 김성일의 공이 컸다.처음에는 관군과 의병 사이에 협조가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의병은 급조된 조직이라서 규율이 형편없었
【뉴스퀘스트=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1590년(선조 23년) 3월, 천지에 만물이 소생하는 봄날 서울을 떠나 머나 먼 남쪽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있었다.정사 황윤길, 부사 김성일, 서장관 허성으로 구성된 조선통신사 일행이 산 넘고 물 건너 일본으로 가는 길이었다.1479년(성종 10년)에 떠났던 조선통신사가 일본 내부의 사정 때문에 제대로 일을 보지 못하고 돌아온 이후 110년 만의 파견이었다.1443년(세 종 25년) 정사 변효문, 부사 윤인보, 서장관 신숙주 등이 무사히 임무를 마치고 돌아온 것부터 따지면 147년 만의 일이었다. 참으로 오랜만의 조선 통신사 파견이었다. 때문에 이들의 임무는 막중했고 어깨는 무거웠다.일본으로 떠나는 세 사람조선 초기 외부로부터의 가장 큰 위협은 북쪽 국경지방에 출몰하는 여진족과 남서 해안에서 노략질을 하는 왜구였다.여진의 침입에 대비해서 세종은 김종서에게 6진을 개척하도록 했다. 왜구 문제 해결을 위해서 이 종무로 하여금 대마도를 정벌하도록 했다.
[뉴스퀘스트=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앞에서 계속)『대동운부군옥』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초간일기(草澗日記)』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초간일기』는 권문해가 쓴 일기로 『대동운부군옥』의 탄생과 깊은 인연이 있다.1997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는 권문해가 썼던 3종의 일기를 간행하면서 그의 호를 따서 『초간일기』라고 이름을 붙였다.권문해는 중앙과 지방의 여러 관직을 거치면서 겪은 업무내용과, 관직에서 물러난 뒤 고향에서 생활하면서 벌어진 일상을 『초간일기』에 자세하게 적어놓았다.일부 누락된 내용도 있지만 『초간일기』는 조선시대 관직세계와 일상생활을 살펴볼 수 있는 훌륭한 자료이다.『대동운부군옥』의 편찬 과정을 담은 『초간일기』『대동운부군옥』이라는 20권짜리 백과사전을 편찬하는 일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자료를 수집하고 분류하고 기록하는 과정에 투여된 시간과 노동량은 어마어마했을 것이다. 그러나 『대동운부군옥』을 편찬하는 과정이 어떠했는
[뉴스퀘스트=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앞에서 계속)1556년 스물세 살이 된 권문해는 경북 안동으로 퇴계 이황을 찾아가서 가르침을 받았다.당시 퇴계의 문하에 있던 서애 류성룡, 학봉(鶴峰) 김성일 등과 친교를 맺고 평생에 걸쳐 우정을 나누었다.퇴계는 권문해에게 「숙흥야매잠(夙興夜寐箴)」을 손수 써주면서 학문에 정진할 것을 당부했다.「숙흥야매잠」은 중국 송나라 때 학자 진백(陳栢)이 지은 것으로 ‘새벽에 일찍 일어나고 밤늦게 자면서 부지런히 수양하라’는 심신수양의 구체적 실천방법을 제시한 글이다.퇴계가 손수 적은 글을 제자에게 내리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 이런 사실로 미루어 퇴계는 권문해의 자질을 알아보고 기대를 품었음을 알 수 있다.유교, 불교, 도교를 통섭적으로 수용하다1560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관직을 시작한 권문해는 1562년 겨울 안동 향교의 교수로 있을 때 계상서당으로 퇴계를 찾아가서 한 달 동안 머물기도 했다.퇴계가 세상을 떠난 후에는 스승을 기리는 일에 적
[뉴스퀘스트=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세자를 모시고 영변으로 피신해 있던 정탁은 이여송의 군영을 출입하면서 평양성 탈환 작전을 수립하는 데 협조했다. 마침내 평양성을 탈환하자 종묘사직에 제사를 올리고 평양을 수복했음을 고했다. 이어 세자를 모시고 평안도 정주로 가서 선조를 알현하고 이 기쁜 소식을 아뢰었다.국란 속에서 빛난 원로의 역할평양성을 탈환한 이여송은 곧장 남하하여 개성을 향해 쳐들어갔다. 그러자 개성을 지키던 왜장 고바야가와는 싸우지도 않고 서울로 퇴각해버렸다. 그러자 왜군을 가볍게 여긴 이여송은 곧장 그 뒤를 쫓아서 서울로 향했다. 이여송 부대가 서울 북쪽 40리 지점 벽제관(碧蹄館) 남쪽 여석령(礪石嶺)에 이르렀을 때 매복하고 있던 왜군이 기습공격을 했다. 이 싸움에서 크게 패한 이여송은 황급히 개성으로 후퇴하고 말았다.평양성 패배로 사기가 크게 꺾여 있던 왜적은 여석령 전투(또는 벽제관싸움)에서 거든 승리로 기세가 되살아났다. 이때 명나라 군대와 합세하여 서울을 수복하기
[뉴스퀘스트=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1565년, 마흔 살이 된 정탁은 성균관 전적을 거쳐 사간원 정언, 예조정랑, 헌납 등을 지냈다. 그 무렵, 조정은 임금의 외척인 대윤(大尹)과 소윤(小尹)이 서로 대립하여 권력 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할 말을 제대로 하는 관리중종 후반부터 조정의 정파는 세자(훗날 인종)의 외숙인 윤임을 중심으로 한 대윤과, 문정왕후가 낳은 경원대군(훗날 명종)의 외숙인 윤원형을 중심으로 한 소윤으로 나누어졌다. 두 세력의 대립은 인종이 즉위하자 대윤 쪽으로 힘이 기울어졌다. 권력을 거머쥔 대윤은 가장 강력한 정권 위협세력인 소윤을 탄압했다. 소윤의 대표 격인 윤원형은 탄핵을 받아서 파직되고 말았다.그러나 인종이 왕위에 오른 지 8개월 만에 승하하고 명종이 열두 살의 어린 나이로 즉위하자 문정왕후의 수렴청정이 시작되었다. 문정왕후의 동생이었던 윤원형은 예조참의로 조정에 복귀하여 대윤에게 대대적인 보복을 시작했다. 그것이 바로 을사사화(乙巳士禍)라고 부르는 사건이다
[뉴스퀘스트=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1592년(임진년), 기습적으로 조선을 침공한 일본은 초기에는 승승장구하면서 기세를 올렸으나, 전국 각지에서 들불처럼 일어난 의병대의 강력한 저항과 제해권을 장악한 이순신(李舜臣)의 활약으로 기세가 꺾였다.조선을 지원하려고 명나라와 화의를 진행하다가 결렬되자, 일본은 1597년(정유년)에 다시 조선으로 쳐들어왔다. 그런데 조선의 바다에는 여전히 이순신이 이끄는 수군이 버티고 있었다.이순신 장군을 구한 정탁이순신은 조선시대 최대의 국란이었던 임진왜란(壬辰倭亂)에서 가장 큰 공을 세운 장수 중 하나였다. 1592년 5월 7일의 옥포(玉浦)해전부터 1598년 11월 18일의 노량(露梁)해전까지 20여 차례의 전투를 모두 승리로 이끌었다.이순신이 거둔 승리들은 패색이 짙었던 임진왜란의 전세를 뒤엎는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했다. 임진왜란 발발 1년 뒤에 삼도수군통제사의 자리에 올라 조선의 수군을 통솔하게 된 이순신은 공격과 방어, 집중과 분산을 효과적으로 적
[뉴스퀘스트=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이황학 연구의 권위자인 이상은 박사는 이황의 생애를 수학기, 출사기, 강학기로 나누었다. 태어나서 서른세 살이 될 때까지를 수학기, 문과에 급제한 서른네 살부터 풍기군수에서 막 퇴임한 마흔아홉 살까지를 출사기, 고향으로 돌아와 제자 교육에 전념하던 쉰 살부터 임종할 때까지를 강학기로 구분했다. 이황이 자신의 철학을 완성하고 중요한 저술을 집필한 것은 대부분 강학기에 이루어졌다.이황이 강학기였던 쉰세 살에 완성한 「천명신도(天命新圖)」는 성리학의 이론체계를 천명을 중심으로 한 장의 그림에 담은 것이다. 인간의 관점에서 인간과 우주의 관계를 밝히려고 시도한 「천명신도」는 정지운(鄭之雲:1509~1561)의 「천명도」를 수정 보완한 것이다. 이황 철학의 근본은 사람이 중심이 되는 세계관이다. 이황이 추구했던 이상적인 사회는 인간이 중심이 되는 사회이며 인간의 도덕이 통용되는 사회였다. 「천명신도」는 그러한 이황의 철학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이황이
[뉴스퀘스트=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1519년(중종 14년)에 일어난 기묘사화에 휩쓸려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에서 지내던 권별은 1533년 용양위부호군(龍驤衛副護軍)으로 임명되어 14년 만에 조정으로 복귀했다. 이후 밀양부사, 한성부좌윤, 경상도관찰사, 형조 참판, 병조참판, 한성부판윤 등을 역임했다. 1539년 7월에는 종계변무(宗系 辨誣: 조선 건국 때부터 선조 때까지 200여 년 동안 명나라에 잘못 기록되어 있는 이성계의 가계를 고쳐달라고 사신을 보내 주청하던 일)를 위한 주청사(奏請使)가 되어 명나라를 방문했다가 이듬해 2월에 돌아왔다.율곡 이이, 권벌의 절개를 칭찬하다1540년에는 병조판서, 한성부판윤을 지냈으며 1541년에는 예조판서, 의정부좌참찬, 1542년에는 장령을 거쳐 1544년에 다시 의정부좌참찬, 1545 년에 의정부우찬성에 올랐다. 그해 7월 명종이 열한 살의 나이로 왕위에 오르자 권벌은 어린 임금을 보필하는 원상으로 임명되었다. 1545년 8월, 소윤 일파가
[뉴스퀘스트=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1478년(성종 9년) 11월 6일, 권벌은 경상북도 안동시 북후면 도촌에서 아버지 권사빈과 어머니 파평 윤씨의 4남 1녀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자는 중허(仲虛), 호는 충재(冲齋), 훤정(萱亭), 송정(松亭)이고 시호는 충정(忠定)이다.열아홉 살에 과거에 합격한 수재권벌 집안이 도촌에 들어와 살기 시작한 것은 아버지 권사빈 때부터였다. 권사빈의 외가인 서원 정씨들이 도촌에 살고 있었던 것이다. 권벌의 어머니는 영원부원군 윤호의 형인 윤당의 딸 파평 윤씨였다. 윤호는 성종의 계비 정현왕후의 아버지였으므로 권벌의 어머니와 정현왕후는 사촌자매 사이였다.권벌은 안동 권씨 판서공파에 속했다. 판서공파의 시조는 권벌의 5대조 권인이다. 판서공파는 권인 때부터 중앙권력이 바뀔 때마다 권력을 좇기보다는 의리를 좇아서 은거하는 전통이 있었다. 권인은 고려가 망하자 안동시 서후면 교리에 은거했다. 태조와 이방원(훗날 태종)이 여러 차례
[뉴스퀘스트=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1545년(명종 즉위년) 8월 22일, 경복궁 충순당에서는 중신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가장 높은 자리에 문정왕후(文定王后: 중종의 제2계비 윤씨)와 문종이 앉고 그 아래 문무백관들이 도열했다. 왕위에 오른 지 채 한 달이 되지 않은 문종의 나이는 겨우 열한 살이었다. 때문에 친어머니인 문정왕후가 수렴청정(垂簾聽政)을 하고 있었다.“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모인 것은 임금을 위해하려는 세력이 있다는 소문을 따져보기 위함이요. 누가 먼저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겠소?”낮지만 묵직한 문정왕후의 목소리가 충순당에 울려 퍼졌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병조판서 이기가 먼저 나섰다.“찬성 윤임이 주상을 물리치고 다른 인물을 옹립하려 했다하옵니다. 이는 대역죄에 해당하는 일이므로 엄중하게 조사하여 큰 벌로 다스려야 합니다.”병조판서가 말을 마치자마자 이번에는 지중추부사 정순붕이 나섰다. “좌의정 유관과 이조판서 유인숙도 윤임과 함께 역모를 모의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