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법안, 정무위 법안소위 통과 후 또다시 쟁점화
의료계 "개인정보 유출 우려", 핀테크업계 "생존권 위협" 반대 입장
보험업계 “고객 편의성 무시…비급여 진료 정보 수집 막기 위한 반대” 비판

최근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법이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한 후 의료계와 핀테크 업계가 반대 의견을 내면서 또 다시 법안의 최종 통과 여부가 주목받고 있다. 보험업계는 해당 법안이 고객들의 보험 청구 편의성을 높이는데 도움을 주기 때문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사진은 의료기관 내 수술 장면. [사진=픽사베이]
최근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법이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한 후 의료계와 핀테크 업계가 반대 의견을 내면서 또 다시 법안의 최종 통과 여부가 주목받고 있다. 보험업계는 해당 법안이 고객들의 보험 청구 편의성을 높이는데 도움을 주기 때문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사진은 의료기관 내 수술 장면. [사진=픽사베이]

【뉴스퀘스트=김민수 기자】 국회에서 무려 14년째 맴돌기만 했던 실손보험청구 간소화법이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한 후 의료계와 핀테크 업체가 반대 의견을 내기 시작했다.

보험사의 고객 보험금 지급 거절 사례가 더 늘어날 우려가 있고, 개인정보 유출 문제도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보험업계는 비급여 진료 실태에 대한 방대한 정보 수집을 막기 위한 근거 없는 반대일 뿐 ‘고객(환자)의 편의성’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이기적인 주장이라는 입장이다.

◇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도대체 뭐길래…

18일 의료계·보험업계에 따르면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가 도입되면 가입자의 요청에 따라 병원이 보험사에 진료비 계산서 등 보험금 청구에 필요한 서류를 전송하는 식으로 진행되게 된다.

이렇게 될 경우 보험 가입자인 환자·고객은 보험금 청구를 간편하게 할 수 있지만, 환자 개인정보 보호와 전송 과정에서의 보안 문제가 걸림돌로 남아있는 상황이다.

의료계와 보험업계는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에 대해 수십 년째 대립각을 세우고 있으며 그 결과, 국회에서도 관련 법안이 계속 맴돌고만 있는 상태였다.

최근 국회 정무위원회가 법안소위를 열고, 보험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을 통과시키면서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됐다.

2009년 해당 개정안이 상정된 이후 약 14년 만에 한 걸음 진척을 보인 셈이다.

법안소위 통과 소식이 전해지자 의료계는 즉각 반발했다.

현재 ‘간호사법’ 통과 저지를 위해 막대한 투쟁력을 쏟아 붓고 있는 의료계는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에 대해서도 강한 반대 의사를 밝혔다.

대한의사협회·대한병원협회·대한치과의사협회는 공동 성명서를 통해 “의료기관에서 환자의 보험금 청구자료를 의무적으로 제출해야 한다는 강제조항이 바뀌지 않은 부분이 매우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실손보험의 실제 계약 당사자도 아닌 의료기관에서 협조차원이 아니라 의무사항으로 강제하는 법안 자체가 매우 부당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들 단체는 또 “아무리 국민편의가 명분이라고는 해도 이런 비상식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우리나라 의료의 현실이고 현 주소라고 한다면 국민의 건강과 제대로 된 의료서비스 제공은 요원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고 단언했다.

실손보험 관련 컴퓨터그래픽. [사진=연합뉴스]
실손보험 관련 컴퓨터그래픽. [사진=연합뉴스]

◇ 핀테크 업계 “보험금 청구 간소화되면 중소기업 설 자리 없어져”

이러한 의료계의 입장에 핀테크 업체까지 동조하면서 보험업계는 ‘나 홀로 싸움’에 돌입해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됐다.

유비케어·비트컴퓨터·지앤넷·하이웹넷·레몬헬스케어·메디블록·이지스헬스케어 등 전자차트·핀테크 업체들도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에 대한 반대 성명서를 발표했기 때문이다.

다만, 해당 기업들은 의료계와 다른 논리로 법안 통과에 반대했다. 생존권을 위협받는다는 것이다.

성명서를 보면 “전자차트·핀테크 업체에서는 최근 서비스 기관수가 급증하고 있어 올해는 2만 3000개소, 2025년까지 의료기관의 약 90% 정도를 커버할 수 있는 정도로 확장될 수 있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설명했다.

이어 “보험업법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전자차트·핀테크 업체 등은 중계기관 강제화로 인해 폐업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리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동안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를 위해 보험사별로 상이한 청구서식 등에 대한 표준화 요청에도 불구하고, 보험사는 협조하지 않았고 일부 보험사(생명보험사)의 경우 앱 서비스도 제공하지 않았다는 게 이들 기업의 주장이다.

전자차트·핀테크 업체들은 “국민편의 제공이라는 미명하에 대기업인 민간보험사 이익만을 위한 보험업법 개정을 강행하는 의도가 무엇인지 국회에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실손보험 관련 컴퓨터그래픽. [사진=연합뉴스]
실손보험 관련 컴퓨터그래픽. [사진=연합뉴스]

◇ ‘디지털 금융’ 흐름에 역행하는 반대 측 의견에 허탈한 보험업계

그러나 가입자의 입장에서만 보자면 보험업계의 입장이 더 설득력을 갖춘 것으로 보인다.

종이서류가 점점 더 사라지고 있고, 병원 진료를 받은 가입자가 보험금 청구를 편리하게 하도록 만드는 조치가 무슨 문제가 있냐는 것이다.

이미 은행, 증권사 등 다른 금융업권에서도 영업점을 방문하지 않아도 계좌 개설을 비롯해 다양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디지털 금융’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현재 고객들이 직접 종이 또는 사진으로 제출해야 하는 불편함을 전산으로 처리하자는 것이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의 핵심”이라며 “보험업계가 환자 개인정보를 활용해 마케팅에 쓰려고 한다는 주장은 말도 안 된다”고 꼬집었다.

특히 의료계가 주장하는 개인정보 유출의 경우 현 시스템에서도 진단서, 진료비 영수증 등 각종 서류를 종이 또는 사진으로 첨부 제출해야 하기 때문에 동일한 상황이라는 게 보험업계의 설명이다.

실제로 현재 실손보험금을 받기 위해서는 고객이 병원 측에 각종 서류를 뗀 후 일일이 사진을 직접 찍어 보험 앱으로 청구하거나, 보험사 영업지점을 방문해 제출해야 한다.

만약 병원 진료를 1회가 아닌 수차례 방문해야 하는 경우라면 불편함이 더욱 가중된다. 보험 앱 사용 등에 어려움을 느끼는 고령층에게는 보험금 청구가 까다로울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난해 9월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실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청구 과정이 불편해 지급되지 않은 실손보험금이 최근 3년 동안 약 7410억원으로 추정됐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개인정보를 악용하려면 지금 받고 있는 종이 또는 사진에 있는 내용으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며 “그들의 주장대로 ‘대기업’인 보험업계가 이러한 불법적인 행위를 할리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과연 고객과 환자를 위한 제도 개선 방향이 무엇인지 짚어봐야 할 시점”이라며 “실손보험 청구화가 도입되면 비급여 진료비에 대한 평균 수준이 나오기 때문에 개원가(동네 병의원) 위주로 반대하는 게 아닌가 싶다”고 꼬집었다.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원회 회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원회 회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 금융권 시민단체는 ‘찬성’ vs 중증 환자단체는 ‘반대’

시민단체, 환자단체의 반응은 엇갈린다.

금융소비자연맹, 녹색소비자연대, 소비자와함께, 서울YMCA, 소비자권리찾기시민연대, 한국소비자교육지원센터 등 시민단체들은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도입에 찬성했다.

시민단체가 진행한 설문 조사 결과를 보면 실손보험에 가입한 국민 1000명 중 절반에 가까운 47.2%가 청구 과정이 번거로워 청구를 포기한 경험이 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반해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한국루게릭연맹·한국폐섬유화증환우회·보험사에 대응하는 암환자 모임·한국다발골수종환우회는 최근 기자회견을 열고 보험사의 고액보험금 청구 거절 사례가 늘어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환자단체는 “보험업계는 번거로운 실손보험 청구절차 간소화로 보험 가입자의 소액 보험금 청구 등에 있어 편의를 도모할 수 있다고 홍보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가입자의 편익보다 보험사들이 고액보험금을 거절하며 이익을 극대화할 것”이라며 “보험사들이 환자 정보를 수집·축적해 보험금 청구 삭감의 근거를 마련하고, 갱신과 보험금 거절, 상품개발로 이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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