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 시장 금리 이틀 연속 하락했지만, 불안감 여전
김주현 금융위원장 “채권시장안정펀드 더 늘릴 수도” 시장 개입 시사
신용등급 AAA 한전채 대규모 발행 여파로 나머지 회사채 ‘관심 밖’ 우려도

레고랜드 디폴트 사태 이후 ‘50조원+@’ 유동성 공급 프로그램 계획이 나온 지 이틀째 국고채·회사채 금리가 연이어 떨어졌지만, 채권 시장의 불안감이 계속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레고랜드 디폴트 사태 이후 ‘50조원+@’ 유동성 공급 프로그램 계획이 나온 지 이틀째 국고채·회사채 금리가 연이어 떨어졌지만, 채권 시장의 불안감이 계속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뉴스퀘스트=김민수 기자 】 강원도 레고랜드의 디폴트(채무불이행) 사태로 인한 여파가 국내 금융시장을 계속 흔들고 있다.

기업들의 자금 순환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관측이 쏟아지면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과 회사채 발행 등이 전부 혼돈에 빠지는 양상이다.

금융당국은 지난 23일 50조원 이상의 유동성 공급 프로그램 가동 계획을 내놓고 추가적으로 채권시장안정펀드 확장 의지도 밝혔지만, 채권 시장이 언제쯤 불안감에서 해방될지는 미지수다.

◇ 금융당국 대책 발표 이후 이틀 연속 금리 하락한 채권 시장

각종 악조건 속에서 채권 시장은 혼란스러운 분위기다. ‘50조원+@’ 유동성 공급 프로그램 계획이 나온 후 24일과 25일 이틀 연속 국고채·회사채 금리가 떨어졌다.

먼저 24일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전 거래일보다 0.190%포인트 낮은 연 4.305%로, 10년물 금리는 연 4.503%로 0.129%포인트 내렸다. 무보증 3년 만기 회사채(AA-) 금리도 연 5.592%로 전 거래일보다 0.144%포인트 떨어졌다.

이러한 현상은 25일에도 이어졌다.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전 거래일보다 0.084%포인트 낮은 연 4.221%로, 10년물 금리는 0.157%포인트 내린 연 4.346%로 마감했다. 무보증 3년 만기 회사채(AA-) 금리 역시 연 5.528%로 전 거래일보다 0.064%포인트 더 낮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채권 시장의 불안감이 계속 되자 금융당국은 추가적인 안정화 대책을 연이어 내놓고 있다.

김주현 금융위원회 위원장은 이날 열린 제7회 ‘금융의 날' 기념식’ 이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채권시장안정펀드 확대 가능성에 대한 뜻을 내비쳤다.

김주현 위원장은 “앞서 채권시장안정펀드 총량을 20조원으로 거론했는데 필요에 따라 더 늘릴 수도 있다”며 “한국은행의 유동성 공급 등 대외적인 변수가 많지만, 유연하고 탄력있게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다하겠다”고 말했다.

또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제9회 KTB(Korea Treasury Bond) 국제 콘퍼런스’에서 국고채 발행량을 당초 목표보다 줄이겠다고 밝혔다.

추경호 부총리는 “시장 상황을 감안해 국고채 발행량을 탄력적으로 조정할 계획”이라며 “올해 남은 기간 중 재정 여력을 고려해 국고채 발행량을 과감히 줄이고, 국고채 만기도 적극적으로 관리해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위기의 징후가 뚜렷해지면서 금융회사, 일반 기업의 파산위험성이 급증한다면 대규모 금융시장안정화 조치를 즉각적으로 집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은 “최근 발표된 정부의 시장유동성공급조치는 시장상황에 대해 신속하고 적절한 대응방향성을 가진다고 평가할 수 있다”며 “다만, 향후 시장의 유동성 경색이 다시 나타날 가능성이 있음을 감안해 추가적인 대응책을 선제적으로 마련할 필요성이 크다”고 조언했다.

김상만 하나증권 연구원은 “금융당국의 대책의 효과가 금방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며 “워낙 사안 자체가 크고 경험해보지 못한 상황들이 연출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시장심리가 돌면 유동성은 다시 돌게 돼 있다”며 “실무적인 준비가 필요하고, 실제적인 자금집행이 이루어지면서 채권시장은 점차 안정세를 찾아가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레고랜드 디폴트 사태의 중심에는 강원중도개발공사가 있다. [사진=연합뉴스]
레고랜드 디폴트 사태의 중심에는 강원중도개발공사가 있다. [사진=연합뉴스]

◇ ‘돈맥경화’에 자금난 시달리는 건설업계

금융당국에 따르면 여전히 기준금리 상승과 레고랜드 디볼트 사태 여파로 부동산 PF 대출과 채권 시장의 유동성 경색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레고랜드 디폴트 사태는 최근 강원도가 보증채무 불이행을 선언하면서 촉발됐다. 이후 강원도가 강원중도개발공사 보증 채무 2050억원을 내년 1월까지 이행하겠다는 내용으로 입장을 바꿨지만, 파장이 이어지고 있다.

가장 먼저 경고 신호를 보내고 있는 산업 분야는 건설업이다. 롯데건설은 2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에 이어 롯데케미칼로부터 금전소비대차계약을 통한 자금 조달(약 5000억원)에 들어갔다.

채권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건설사들이 현금 확보에 나서고 있는데 삼성물산, SK에코플랜트 등은 회사채 만기가 도래하자 현금 상환을 선택했다. 

대형건설사에 비해 자금 사정이 열악한 지방건설사는 현재의 ‘돈맥경화’ 현상에서 더 숨통이 막히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표적인 예로 우석건설은 지난달 1차 부도 처리된 바 있다.

건설업계의 상황이 안 좋게 흐르자 금융당국은 부동산 PF 대출에 대한 전방위 점검에 착수했다. 금융감독원은 업권별(은행, 증권, 저축은행 등) 리스크 상황을 면밀히 들여다보며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 원장은 지난 24일 국정감사장에서 “여러 가지 로드맵과 경우의 수를 검토하고 있으며, 23일 내놓은 자금시장 안정 방안은 그 중 일부”라고 밝혔다.

당시 금융당국이 내놓은 유동성 공급 프로그램에는 △채권시장안정펀드(채안펀드) 20조원 △회사채·CP 매입 프로그램 16조원 △유동성 부족 증권사 지원 3조원 △주택도시보증공사(HUG)·주택금융공사 사업자 보증지원 10조원 등이 포함됐다.

금융당국이 급격한 금리상승 등으로 인한 자금시장 불안의 해소를 위해 50조원 이상 유동성 공급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다. 서울 시내 한 은행에서 촬영한 지폐 모습. [사진=연합뉴스]
금융당국이 급격한 금리상승 등으로 인한 자금시장 불안의 해소를 위해 50조원 이상 유동성 공급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다. 서울 시내 한 은행에서 촬영한 지폐 모습. [사진=연합뉴스]

◇ 이 상황에 ‘한전채’(AAA 신용등급)라니…갈 곳 잃은 회사채

변수는 또 있다. 바로 한국전력공사 채권(한전채)다. 정부가 보증하는 한전채의 경우 신용등급 AAA로 일반 회사채보다 우수한 등급을 갖고 있기 때문에 채권 투자자의 선호도가 높다.

올해 상반기에만 14조 3033억원이라는 엄청난 영업손실을 기록한 한전이 대규모 채권을 발행하면서 회사채 순환에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은행 채권시장팀(한민·홍준유·지성민)은 “신용채권 발행물량이 특수채·은행채 등 초우량물을 중심으로 크게 확대되며 시장 내 수급부담으로 작용했다”고 전했다.

이어 “여전채·은행채의 대규모 만기도래, 안심전환대출 MBS 및 한전채 대규모 발행이 지속되는 등 수급 부담이 상존하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실제로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1~9월 중 AAA등급 신용채권의 순발행액은 총 48조원으로 전체 신용채권 순발행액(49조 8000억원)의 96%에 달했다.

특히 신용채권 순발행 중 AAA등급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9년 중 34.2%에서 2022년 중 96.3%로 크게 증가했는데 한전채 발행이 주요 원인 중 하나였다.

한전채가 올해 18조 3000억원 순발행된 것으로 조사됐기 때문이다. 이는 전체 신용채권의 36.7%에 이르는 높은 수준에 해당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롯데하이마트, SK인천석유화학, DGB금융지주 등 회사채 공모 발행을 취소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LG유플러스·한화솔루션·한온시스템 등 이미 공모 발행을 진행한 기업들도 수요예측에서 ‘완판’에 실패했다.

오는 27일로 예정된 교보증권과 통영에코파워의 회사채 수요예측 결과도 낙관하기 힘들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은행 채권시장팀은 “단기적으로는 한전채·은행채 등의 발행 확대에 따른 시장의 수급부담을 완화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며 “중장기적으로는 신용채권 시장의 유동성이 높아질 수 있도록 발행 시스템의 공정성과 투명성 제고, 투자자 다변화 등을 추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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