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KBO리그 한국시리즈 5차전 키움 히어로즈와 SSG 랜더스의 경기. 9회말 무사 1,3루에서 SSG 김강민이 역전 끝내기 홈런을 날리고 기뻐하고 있다. [자료사진=연합뉴스]
지난해 KBO리그 한국시리즈 5차전 키움 히어로즈와 SSG 랜더스의 경기. 9회말 무사 1,3루에서 SSG 김강민이 역전 끝내기 홈런을 날리고 기뻐하고 있다. [자료사진=연합뉴스]

【뉴스퀘스트=정태성 행동경제학연구소 대표 】 며칠 전 프로야구에서는 2차 드래프트 제도를 시행했다.

각 팀에서 35명의 보호선수를 정하면 그 안에 들지 못하는 선수들 중에서 지난해 팀 성적의 역순으로 한 명씩 타팀의 선수를 자신의 팀으로 지명할 수 있는 제도이다.

각 팀들은 자신들이 부족한 포지션에서 적절한 선수를 수급할 수 있는 기회인데, 이번에는 그 어느 때보다 즉시 전력으로 쓸 수 있는 자원이 많이 풀렸다는 얘기가 돌아 드래프트 전날까지도 많은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특히 최근 프로야구에서는 각 팀별로 연봉 총액을 상한하는 샐러리캡 제도가 있어서 젊고 유망한 선수들로 팀을 운영하고자 하는 구단에서는 연봉이 높은 베테랑들을 보호선수에 정하지 않는 바람에 꽤 이름 높은 선수들이 팀을 옮기게 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얘기치 못한 사건이 터졌다.

SSG 랜더스에서 2001년에 프로야구에 데뷔해 올해까지 23년 동안 한 팀에서 헌신했던 김강민 선수를 보호선수에 묶어 놓지 않았더니 한화 이글스라는 다른 팀에서 김강민 선수를 지명해 버라는 일이 벌어졌다.

여론으로 보면 해당 팀에 대해 크게 두 가지 면에서 잘못을 얘기하고 있다.

첫째 그 선수가 현역을 계속할지 아니면 은퇴할지 기로에 있었으면 충분히 대화를 한 다음 김강민 선수가 제대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점.

둘째, 해당 선수가 어떤 선수라고 즉, 은퇴할지 아니면 군대를 갈지 등에 대해 명단에 표시를 해서 제출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은 점에 대해 매우 비판받고 있다.

현재 같이 뛴 그 팀 선수들 뿐만 아니라 그 팀의 팬들이 들고 일어나 한 목소리로 구단을 비판하고 나서는 상황이다.

한때 왕조를 구축했다고 평가받았던 SK 와이번스라는 팀을 신세계가 인수하면서 SSG 랜더스라고 이름을 바꾼 후, 이전 팀의 색깔을 일거에 지우려고 한다는 얘기들이 속속 들리고 있다.

이에 오랫동안 왕조의 팬임을 자랑스러워했던 팬들이 떠날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사실 이번 사건을 보면서 가장 많은 생각이 드는 부분은 구단의 잘잘못이 아니라 팬덤이다.

사실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뮤직스타에 대한 팬덤부터 시작해서 지금 세계적으로는 K-팝 스타에 대한 팬덤이 세계적으로 형성되어 있다.

그런데, 사실 가장 오랫동안 그리고 열광적으로 팬덤을 형성한 곳은 스포츠이다.

우리가 잘 아는 로마시대에도 유럽 프로축구 구단과 비슷한 ‘팍티오 factio’라는 독특한 집단이 형성되어 전차 경주의 모든 것을 주관하고, 기수와 말을 전문적으로 키워내고 팬덤을 조직하기도 했다.

그러면 로마인들은 각자가 많은 팍티오 중 한 팍티오를 선정하여 열정적인 응원을 보내면서 자신의 팍티오가 지면 국가가 망한 것처럼 오열하기도 했다고 하니, 스포츠 경기야말로 팬덤의 원형이 아닐까 싶다.

이제는 꽤 많은 사람들이 아는 축구장에서 난동을 부리는 ‘훌리건’이라는 단어도 영국의 프로축구팀의 지나친 팬덤에서 나온 말이다.

스포츠 팬들이 얼마나 팀에 대해 열광적인지 아니면 헌신적인지, 얼마나 일체감을 느끼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일반 사람들은 상상하지 못할 정도의 감정을 가지고 있다.

올해 프로야구 리그에서 한화 팬들은 수베로 감독 경질에 맞춰서 다른 수뇌부도 책임을 져야 한다는 트럭시위를 했고, 삼성이 최하위로 처지자 삼성 팬 역시 단장 경질을 위한 트럭시위를 벌였다.

자신의 돈과 시간을 써 가면서까지 자신이 응원하는 팀 성적이 잘 나왔으면 하고 행동하는 이유는 뭘까?

2011년 한 연구에 따르면 (Daniel Wann 등) 미국의 야구 팬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팀이 우승하기 위해서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장기기증도 기꺼이 고려할 수 있다고 한 대답이 절반 가량 되었다.

놀랍게도 같은 설문 조사에서 우승을 위해서 손가락도 자를 의향이 있다고 대답한 사람도 10% 가량 되었다고 한다.

이런 현상은 극성스러운 팬들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이번에 우승한 LG 트윈스 팬들은 극성스럽다고 볼 수 없는 팬들조차 가을만 되면 ‘유광잠바’를 거론한다.

겉이 광이 나는 재질로 만든 잠바는 포스트시즌에 입어야 하는 것으로 다들 인식하고 있어서 포스트 시즌 때, 잠시의 LG 경기에는 유광잠바를 입고 가야 한다는 무언의 약속이 있다.

우리나라만 그런가?

설득의 심리학으로 유명한 로버트 치알디니의 ‘사회심리학’이라는 책을 보면 미식축구 팬들은 응원하는 팀이 승리한 이후에는 팀 로고가 그러진 옷을 더 많이 입고, 응원하는 팀이 이겼을 경우, ‘우리가 이겼다’라고 표현하며 ‘우리’라는 말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며 이긴 팀의 반사된 영광을 누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후광반사효과 Basking In the Refelected Glory, 줄여서 BIRGing, 버깅이라고 부른다.)

이렇듯, 스포츠팬들은 팀의 승리와 자신을 동일시하고, 해당팀에 헌신한 선수는 자신의 가족보다 더 좋아할 정도로 아끼기도 한다.

그런데, 이번 SSG의 김강민 선수에 대한 조치는 젊은 유망주로 체질 개선이라는 명목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서툴렀다.

혹자는 끝까지 베테랑을 우대하는 낭만 야구가 사라졌다고 표현하지만, 실은 냉정하게 사회심리학적으로 스포츠팬들의 팬덤을 전혀 헤아리지 못하는, 즉 고객의 마음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전략적 실패 사례에 해당한다.

그렇게 해서는 안되었다.

※ 필자소개 : 정태성 한국행동경제연구소 대표

정태성 한국행동경제연구소 대표
정태성 한국행동경제연구소 대표

2000년대 초반부터 기업의 전략, 마케팅과 스포츠 마케팅, 공공부문의 정책입안 등 다양한 컨설팅 업무를 진행해 왔다.

하지만 컨설팅 결과가 인간의 심리나 행동을 잘 반영하지 못할 수 있다는 고민을 하던 중, 행동경제학자인 서울대 최승주교수와 빅데이터분석 권위자인 한양대 강형구 교수와 한국행동경제학연구소를 설립하였다.

이후 정부와 기업 대상 행동경제학 컨설팅을 진행하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강연 및 행동경제학 관련 칼럼과 영상을 통해 행동경제학을 보다 알기 쉽게 전파하는 데 매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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