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친 故 이병철 회장 롤모델 삼아 40년 '대업'...불꽃 성장 뒤에 차명주식 등 잡음도

【뉴스퀘스트=김선태 기자】 "나는 어디선가 그저 맥없이 머뭇머뭇하면서 어쩔 줄을 모를 뿐이었다. 얼빠진 사람처럼 그저 이리갔다 저리갔다 하면서… 나는 어디로 들입다 쏘다녔는지 하나도 모른다. 다만 몇 시간 후에 내가 미쓰꼬시(백화점) 옥상에 있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거의 대낮이었다."(소설가 이상의 '날개' 중) 

일제 강점기 난해한 작품들로 주목받은 시인 겸 소설가 이상의 대표적인 작품 '날개' 속에 등장하는 '경성 미쓰꼬시 백화점'은 신세계 백화점의 전신이다.

해방 후 귀속재산이 되어 동화백화점으로 영업하다 조선방직과 동방생명을 거쳐 1963년 삼성에 인수되면서 지금의 '신세계'로 이름이 바뀌었다.

고(故) 이병철 회장은 자서전 호암자전(나남, 349쪽)에서 신세계백화점에 대해 "당시 우리나라에서 백화점은 말뿐이고 직영방식은 전무했으며 내용상 진열장을 임대받은 상인들의 집합체에 불과했다"고 술회했다. 

사정이 그러해서인지 후일 부친 이병철 회장이 백화점을 막내딸 명희에게 물려주려 하는데 가족들이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고 한다.

1979년 부친은 이런 회사에 딸을 거의 강권으로 입사시켜 영업사업본부 이사직을 맡겼다.

게다가 같은 시기에 롯데백화점이 설립되었는데 이를 이명희의 이화여대 동창이자 롯데 신격호 회장의 맏딸인 신영자 전 회장이 이끌었다.

이 때문에 신세계백화점은 본의 아니게 삼성과 롯데 양가의 자존심 대결 한복판에 서서 한동안 백화점업계 2위라는 불명예에 시달리기도 했다.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 [사진=연합뉴스]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 [사진=신세계그룹]

◇ 삼성에서 독립 뒤 매출 16배 늘려

입사 후 부친 곁에서 조선호텔 인수 과정을 지켜보는 등 배우기에 여념 없던 막내딸 이명희 회장은 홀로 남으면서부터 제대로 실력을 발휘했다.

신세계는 1997년 삼성에서 계열 분리됐는데, 이 회장은 당시 1조8000억원이던 그룹 매출을 2014년 17조6117억원, 지난해에는 29조2427억원 가량으로 성장시켰다.

공정거래위원회 '공시대상 기업집단 지정 현황'에 따르면 신세계는 2019년 현재 재계순위 11위, 계열사 40개, 총자산 36조4000억원짜리 초대형 유통그룹이다.

이를 신세계그룹내 양대 주력사로 나눠 보면 먼저 백화점 계열에는 동종업계 시장점유율 23%를 차지하는 신세계를 필두로 센트럴시티, 서울고속터미널, 까사미아, 톰보이, 베트남 신세계 등이 속해 있다. 

다음으로 대형마트 계열인 이마트에는 에브리데이, 이마트24, SSG닷컴, 스타필드, 조선호텔, 신세계푸드, 신세계건설 등이 속해 있다.

이마트는 동종업계 부동의 실적을 고수중이다.

2015년 점유율 45.8%를 차지한 이후에도 독주를 계속하다보니 경쟁사인 홈플러스, 롯데마트 등이 매출실적 공개를 꺼릴 정도다.

1943년생인 이명희 회장은 팔순을 바라보는 지금까지 실무를 전문경영인에게 맡긴 채 주로 인재를 발굴하고 그룹의 방향을 제시하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은둔의 경영자'라는 수식어가 항상 그를 따라다닌다.

이 회장은 기회 있을 때마다 "그러한 경영 능력은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라 말해 왔다.

무엇보다 부친의 사랑을 듬뿍 받은 막내딸로서 그가 평생 부친을 롤모델로 삼았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선대 회장은 이렇게 하셨는데…"라는 말로 사안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화법이나, 부친을 쏙 빼닮은 메모 습관이 이를 입증한다.

조금 과장하자면 이마트는 이런 그의 애착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1987년 부친이 사망하자 막내딸 이명희는 슬픔을 억누를 길 없어 미국 여행을 떠났다.

현지에서 세계 최대의 창고형 점포인 월마트와 프라이스클럽을 보고 사업 기회에 눈을 떠 이를 국내에 도입한 것이 1993년 창동 이마트였다.

그런 다음부터 이 회장은 매년 두어 번 해외로 나가 새로운 기회를 모색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이 회장의 경영 수완은 실은 딸 바보인 부친이 일찍부터 '공들여 심은 것'이기도 하다.

이병철 회장은 자신의 약속 장소에 누구보다도 자주 막내딸을 동석시켜 경영의 실제를 익히게 하는 한편 재계나 정관계 인사들과 일찍부터 접하게 해주었다.

현모양처를 꿈꾸며 12년간 전업주부로 살다 부친의 부름에 전격 경영일선에 들어섰지만, 실은 그 사이 '호암 제왕학'이라는 금수저 경영수업을 착실히 쌓고 있었던 셈이다.

출근하기 전날 부친이 당부한 "서류에 사인하지 말라"는 말을 그는 금사 희종본기(金史·熙宗本纪)에 나오는 "믿지 못하면 쓰지를 말고, 사람을 쓰면 의심하지 말라(疑人勿用 用人勿疑)"는 뜻으로 정확히 이해했다.

이를 금과옥조처럼 새겨 수십 년에 걸쳐 전문경영인 체제를 고수한 사례는 여간해서 흉내 내기 어려운 내공이라고 할 수 있다.

삼성으로부터 계열 분리된 이듬해인 1998년 삼성전자 사장 등 요직을 두루 거친 남편 정재은 회장을 대신해 곧장 그룹 회장에 오른 사실에서도 이를 알 수 있다.

여기에 이명희 회장의 타고난 소통 능력이 한몫했다.

가령 큰 오빠인 고 이맹희 전 CJ 명예회장은 경영 일선에서 밀려난 뒤 막내로부터 받은 도움에 대해 자서전에 이렇게 적었다.

"명희는 내가 어려운 처지에 있을 때 진심으로 나를 걱정해줬고 늘 따뜻한 마음씨로 오빠인 나를 감싸 주었다. 내가 경제적으로 어려워도 말을 못하고 있으면 늘 지갑을 열고 가지고 있던 돈 전부를 나에게 쥐어준 것도 명희였고 아버지가 나에 대해서 부정적인 평가를 하면 마지막까지 내 편을 들어서 아버지를 설득하려 한 것도 명희였다."(이맹희의 자서전 '묻어둔 이야기', 청산, 330쪽)

그 연장선상에서 이명희 회장은 큰 오빠가 생을 마감했으때 장례식장에 거듭 참석했고, 조카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징역형을 구형받자 앞장서 법원에 탄원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신세계 이명희 회장과 아들 정용진 부회장이 지난해 12월 15일 서울 한 대형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 빈소를 조문 후 빈소를 나서고 있다. LG와 삼성, 신세계는 사돈 관계다. 고 구인회 LG 창업회장의 3남이자 구자경 명예회장의 동생인 구자학 아워홈 회장과 삼성 이병철 창업회장의 차녀 이숙희 여사(이명희 회장의 언니)가 1957년 결혼했다. [사진=연합뉴스]
신세계 이명희 회장과 아들 정용진 부회장이 지난해 12월 15일 서울 한 대형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 빈소를 조문 후 나서고 있다. LG와 삼성, 신세계는 사돈 관계다. 고 구인회 LG 창업회장의 3남이자 구자경 명예회장의 동생인 구자학 아워홈 회장과 삼성 이병철 창업회장의 차녀 이숙희 여사(이명희 회장의 언니)가 1957년 결혼했다. [사진=연합뉴스]

◇ '성장정체·승계·사회적 책임' 해결 과제

이병철 회장은 자녀라 할지라도 경영 문제에서만큼은 가혹하리만치 엄격했는데, 이명희 회장은 그 점에서 판박이다.

일례로 아들인 정용진 부회장이 배우 고현정과 결혼한 지 8년6개월 만인 2003년 11월 파경을 맞았다. 당시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이니만치 정 부회장이 현업에서 잠시 물러났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하지만 가업에 대한 모친의 강력한 바람 때문인지, 정용진 부회장이 맡은 이마트는 단기간에 국내 유통업계 최강자로 올라섰다.

미국 월마트나 프랑스 까르푸 같은 글로벌 공룡업체들도 이마트 때문에 한국에서 발 붙이지 못하고 철수하게 만들었다. 

한해에 한두 번 업무 보고를 받을 뿐인 이 회장이지만 그가 내놓는 아이디어와 비전이 경영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여전히 크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유통은 무궁무진한 세계"라며 아이디어만 있다면 장래 삼성그룹을 능가하지 말란 법도 없다는 포부를 밝혔다.

하지만 사세 확장의 이면에 만만치 않은 문제들이 도사리고 있다.

국내 소매시장이 포화 상태에 이른지 오래여서 신세계나 이마트가 점포 확대를 꾀하는 과정에서 지역 소상공인들의 반발에 직면하는 일은 일상이 되었다.

올해 들어 코로나19 사태와 함께 온라인 배송이 폭발적으로 늘면서 '쓱배송'으로 이를 전담할 SSG닷컴이 쿠팡 등과 대결하자 이번에는 대규모 투자액이 현안으로 떠올랐다.

그런가 하면 이명희 회장은 주로 자녀 문제와 관련해 여러 차례 구설수에 오른바 있다.

이 회장의 두 자녀 중 오빠인 정용진(52세)이 먼저 경영에 참여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1994년 삼성물산 경영지원실에 입사한 뒤 다음해 신세계로 옮겼고 백화점 기획조정실 상무직을 거쳐 2009년 그룹 부회장에, 이어 2010년 이마트 대표이사에 올랐다. 

동생인 정유경(48세)은 1996년 조선호텔에서 일하면서 상무 지위에 오른 뒤 2009년 신세계 부사장에 이어 2015년 신세계 백화점 부문 사장에 올랐다.

이후 이명희 회장은 정용진 부회장에게 이마트 주식 10.33%를, 그리고 정유경 사장에게 신세계 주식 9.83%를 넘겨 그룹 장악력을 높여 줬다.

하지만 자신은 여전히 양사 주식을 각각 18.22%씩 확보한 대주주로서 전권을 행사하는 동시에 최종 책임을 지고 있다.

게다가 이 회장이 고령임에도 두 자녀가 그룹 양대부문을 나눠 맡은 지 4년여 밖에 되지 않아, 후계 구도를 가늠하기에는 이르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그룹 재편을 통한 정체 탈피와 순조로운 승계가 만만치 않은 현안으로 제기됐다고 짐작되는 이유다. 

이런 이유에선지 이명희 회장의 그간 행보에 적지 않은 잡음이 일었던 것이 사실이다. 

무엇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과 관련해 실망스런 모습을 보인 경우가 많았다. 

2013년에는 그룹 실적이 현저하게 악화되었지만 전년도와 같은 수준의 배당금을 받아 세간의 눈총을 받기도 했다.

또한 2006년 국세청 세무조사에서 이명희 회장의 차명주식이 적발되어 그 처분 여부가 도마에 올랐는데, 이 문제가 2015년 다시 터지면서 여론의 지탄을 받기도 했다.

당시 신세계 측은 해당 주식이 선대 회장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라며 총 37만9733주, 시가 830억원 규모의 이 회장 차명주식을 실명전환했다.

국세청이 이를 탈세로 추징하자 이번에는 금융실명법을 어긴 조세회피 여부가 논란이 됐다.

신세계 경영에 나선 지 40여년, 그간의 눈부신 여정 끝에 이 회장은 바야흐로 재벌그룹이라면 반드시 직면하게 되는 문제와 대면하기에 이른 것이다.

부산 해운대구 소재 신세계 센텀시티점 전경. [사진 = 신세계 홈페이지]
부산 해운대구 소재 신세계 센텀시티점 전경. [사진 = 신세계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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