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퀘스트=한국지역인문자원연구소] 1519년(중종 14년)에 일어난 기묘사화에 휩쓸려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에서 지내던 권별은 1533년 용양위부호군(龍驤衛副護軍)으로 임명되어 14년 만에 조정으로 복귀했다. 이후 밀양부사, 한성부좌윤, 경상도관찰사, 형조 참판, 병조참판, 한성부판윤 등을 역임했다. 1539년 7월에는 종계변무(宗系 辨誣: 조선 건국 때부터 선조 때까지 200여 년 동안 명나라에 잘못 기록되어 있는 이성계의 가계를 고쳐달라고 사신을 보내 주청하던 일)를 위한 주청사(奏請使)가 되어 명나라를 방문했다가 이듬해 2월에 돌아왔다.율곡 이이, 권벌의 절개를 칭찬하다1540년에는 병조판서, 한성부판윤을 지냈으며 1541년에는 예조판서, 의정부좌참찬, 1542년에는 장령을 거쳐 1544년에 다시 의정부좌참찬, 1545 년에 의정부우찬성에 올랐다. 그해 7월 명종이 열한 살의 나이로 왕위에 오르자 권벌은 어린 임금을 보필하는 원상으로 임명되었다. 1545년 8월, 소윤 일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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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뉴스팀
2019.04.22 0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