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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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퀘스트=정태성 행동경제학연구소 대표】 TV 프로그램들은 항상 트렌드가 있다.

물론, 모두가 다 똑같은 컨셉의 예능프로그램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 때는 집단으로 나와서 각자 토크를 하는 예능이 대세였던 시절도 있었고, 연예인들이 해외 여행을 하는 프로그램이 대세였던 때도 있었으며, 조용히 한적한 지역에 가서 밥해 먹는 프로, 즉 힐링이 대세였던 때도 있다.

최근 들어 대세 프로그램은 뭐니뭐니해도 요리라고 볼 수 있다.

정확히 말하면 식구들을 위한 요리가 아니라 팔기 위한 요리, 즉 장사를 위한 요리거나 혹은 실제로 음식점의 이름난 셰프들이 나와서 요리하는 장면을 보여주거나 하는 식이다.

이로 인해 덕을 보는 것은 해당 셰프들이 경영하는 음식점이다.

일반인들이 접근하기에는 너무나도 비싼 그런 식당들이 한 달 이상 예약이 모두 차 있는 경우가 허다한데, 과연 ‘그러한 식당들이 맛있을까?’ 혹은 ‘가격만큼의 엄청난 맛을 보장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점이 든다.

소위 말하는 최고의 셰프들이 하는 요리 경연 형식의 프로그램을 보자.

짧은 시간 안에 한정된 요리도구 혹은 한정된 재료로 할 수 있는 최고의 요리를 만들어낸다. (예를 들면 ‘흑백요리사’, ‘냉장고를 부탁해’, ‘정글밥2’)

그러면, 같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사람이나 게스트들은 온갖 표정과 미사어구를 가지고 그들의 요리를 찬양한다. (흑백요리사에서도 유튜버 심사단이 등장했다)

시청자들은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침샘이 자극되고, 궁금증에 그들의 식당들을 검색하게 되면서 셰프와 셰프의 식당은 시청자들의 뇌에 하나의 ‘최고의 브랜드’로 각인되게 된다.

결국 그들의 식당은 웬만큼 부지런하지 않으면 예약할 수 없을 정도로 인기를 얻게 되는데, 이 때부터는 그 동안 사람들이 객관적으로 평가했던 맛이 아닌, 사람들의 뇌에 각인된 맛으로 평가를 받을 확률이 높다.

우리네 오감은 인간이 가진 한계 내에서 사람마다 다르게 발달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시각적으로 평균 이상 뛰어난 사람들은 같은 그림을 보더라도 색채에서 느끼는 정도가 다를 것이고, 청각이 뛰어난 사람들은 스피커가 달라질 때마다 미묘하게 주는 소리의 차이를 확연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미각이 뛰어난 사람 또한 마찬가지이다. 같은 요리를 먹더라도 요리에서 주는 맛의 깊이를 확연하게 다르게 느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일부 평균 이상의 사람들 말고, 평균적인 사람들은 대부분 그 차이점을 알지 못할 수 있다.

코카콜라 블라인드 테스트를 생각해보자.

코카콜라와 펩시에 대한 블라인드 테스트에서는 코카콜라 마니아조차도 그 맛의 차이를 거의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코카콜라라는 브랜드를 확인하고 난 후에는 그 브랜드의 매니아는 극단적인 쾌감과 더불어 적극적인 선호를 보낸다.

어쩌면 맛집에 대한 평가도 그럴 수 있다.

우리는 미디어 화면 속에서 보아 왔던 셰프와 요리에 대해서 이미 브랜드 충성도를 어느 정도 형성해 왔기 때문에 실제로 그러한 상태에서 음식점을 방문할 경우, 이미 ‘맛있다’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일종의 ‘플라시보 효과’ (위약 효과)라 볼 수 있다.

캘리포니아 공과대학(Caltech) 안토니오 랑겔(Antonio Rangel) 연구팀의 연구에 따르면 오히려 가격 자체가 뇌영역 활동에 영향을 미쳐서 결국 맛까지 좌우하게 된다는 점을 밝혔다.

연구팀은 20명의 자원봉사자에게 와인 샘플 다섯 가지를 시음하게 했다.

와인 병에는 5달러, 10달러, 35달러, 45달러, 90달러의 소매가가 붙어 있었고 참가자들이 다섯 종류의 와인을 시음하고 평가한 결과, 피험자들은 5달러짜리 와인보다 90달러짜리 와인이, 35달러짜리 와인보다 45달러짜리 와인이 맛이 더 좋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사실은 이 실험에서는 다섯 가지 종류가 아닌 세 가지 종류의 와인을 테스트했다.

실제로 10달러짜리 와인과 90달러짜리 와인은 같은 종류의 와인이었으나 가격표만 다르게 붙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 90달러 와인이 맛있다고 했다.

그 다음 실험에서는 보다 더 재미있는 결과가 나왔다.

가격을 가린 다섯가지 와인 샘플을 다시 제공하고 어떤 와인을 선호하는지 물었을 때, 가장 저렴한 와인이 가장 맛있다는 답변이 나왔다.

실제로 ‘비싼 가격이 좋은 맛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은 허언이 아닐 수 있다.

미슐랭 음식점으로 인정받은 음식점들은 분명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

그리고 높게 가격을 책정하는 이유도 분명히 있다.

그들의 인터뷰에 따르면 제철에만 구할 수 있는 최고의 식재료에 그들이 가진 높은 요리 기술을 더하게 되면 사실 원가가 일반 음식보다는 훨씬 높을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거기에 걸맞는 인테리어와 서비스 수준까지 더하게 되면 셰프들 입장에서는 높은 가격의 음식을 판매해도 정말로 남는 게 없을 수 있다.

이코노미스트의 조사에 따르면 미슐랭 별을 받은 음식점의 40%가 비용 상승 등의 이유로 폐업했다고 해서 오죽했으면 ‘별의 저주’라는 말이 등장했을 정도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뇌에 각인된 셰프와 음식점이 주는 브랜드, 그리고 제시된 높은 가격이 ‘맛있다’는 메시지를 단기간에는 분명히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자주 가서 먹을만큼 그러한 맛인가에 대한 평가는 전혀 다른 부분일 수 있다.

※ 필자소개 : 정태성 한국행동경제연구소 대표

정태성 한국행동경제연구소 대표
정태성 한국행동경제연구소 대표

2000년대 초반부터 기업의 전략, 마케팅과 스포츠 마케팅, 공공부문의 정책입안 등 다양한 컨설팅 업무를 진행해 왔다.

하지만 컨설팅 결과가 인간의 심리나 행동을 잘 반영하지 못할 수 있다는 고민을 하던 중, 행동경제학자인 서울대 최승주교수와 빅데이터분석 권위자인 한양대 강형구 교수와 한국행동경제학연구소를 설립하였다.

이후 정부와 기업 대상 행동경제학 컨설팅을 진행하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강연 및 행동경제학 관련 칼럼과 영상을 통해 행동경제학을 보다 알기 쉽게 전파하는 데 매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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