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외무장관 만나 선상 회담
창밖으로 전경 드러나게 연출
“거대한 흉물로 남을 것” 전망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7월 12일 자신의 호화요트에서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과 만나 회담하고 있다. 선창 밖으로 최근 완공된 원산 갈마해안관광지구 전경이 드러난다. [사진=조선중앙통신]](https://cdn.newsquest.co.kr/news/photo/202507/248835_148560_2442.jpg)
【뉴스퀘스트=이영종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북한연구센터장】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강원도 원산지역에서 여름 휴양을 즐기고 있다. 예년에도 이곳 특각(전용별장)에서 부인 이설주, 딸 주애 등과 휴가를 보냈지만 올해는 좀 색다르다.
지난 6월 24일 호텔과 워터파크, 수족관 등이 들어선 갈마해안관광지구를 준공한 때문이다. 김정은의 첫 체류 일정은 러시아에서 온 특별한 손님맞이였다.
푸틴의 메시지를 들고 7월 12일 방북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 일행을 만난 것이다.
그런데 접견 장소가 특이했다. 새로 지은 호텔 영빈관이나 식당 등이 아닌 요트였다. 의미를 알 수 없지만 ‘999’란 숫자가 적힌 백색 요트에 꾸며진 회의공간에서 북러 밀착을 보여주는 환담을 한 것으로 북한 관영 선전매체들은 전하고 있다.
갈마해안관광지구는 김정은이 지난 2014년 발기해 10년 넘게 공들여 문을 연 야심작이다. 완공기일이 무려 5차례 미뤄질 정도로 어려움이 있었지만 가까스로 준공식을 가진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하지만 제대로 지어지지 못한 건물이 많은데도 서둘러 개장을 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2월 주애와 이곳을 찾은 김정은 위원장이 “내년 상반기까지 완공하라”는 엄포를 놓은 때문이다.
이런 사정을 감안하면 러시아 손님에게 자랑하고 제일 멋진 회의장 시설을 골라 회담을 했을 법 싶다. 그런데 김정은의 선택은 요트였다.
북한이 공개한 사진을 보면 의문은 풀린다. 김정은은 자신의 사적인 공간으로 간주될 수 있는 호화요트로 손님을 불러 밀담을 나누면서 극진한 예우를 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특히 요트 창밖으로 원산 갈마지구의 해양리조트 모습이 펼쳐지도록 연출을 한 게 눈길을 끈다. 이를 위해 요트를 해안에서 멀리 띄워 4km 거리에 이르는 명사십리의 전경이 모두 드러나게 했다.
결국 오랜 기간 공들여 많은 자원을 투입한 해양 리조트가 김정은의 과시성 통치행보의 보조물로 쓰이는 데 그친 것이다. 대북정보 당국자가 “엄청난 자원을 끌어다 지은 시설을 북러 회담의 병풍처럼 써먹었다”고 말한 것도 무리가 아니다.
김정은 스스로도 새로 지은 리조트에 머물지 못하는 것으로 대북정보 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전력이나 상수도 등이 제대로 공급되지 못할 정도로 인프라가 열악한 상황이라는 게 관계자의 귀띔이다.
사실 2만명 수용 규모라는 대단지 리조트임에도 불구하고 인근에 전력공급 시설이 새로 지어졌다거나 발전설비가 갖춰졌다는 보도는 나오지 않았다. 용수 공급을 위한 상수도망도 마찬가지다.
김정은은 집권 이후 원산을 여름 휴양지로 삼아왔다고 한다. 한미 정보당국은 김정은과 친형인 정철과 여동생 여정도 모여 함께 북한 정권 운영 등에 대한 논의를 하는 정황도 포착하고 있다고 한다. 한때는 김정은이 세스나기를 몰고 원산을 오간다는 첩보가 입수돼 사실 파악에 우리 정보당국이 분주했다.
이런 움직임은 김정은의 원산 사랑 때문이라 볼 수 있다. 김정은의 생모인 고용희는 북송 재일교포 출신으로 북송선을 타고 일본 니카타에서 원산항에 도착했다.
김일성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손자를 낳은 고용희를 두고 평양 권력 내부에서는 '원산댁'으로 불렀다고 한다. 아마도 원산에서 태어났거나 상당기간 이 곳에 머물면서 서러운 시기를 지낸 것으로 볼 수 있다.
김정은이 집권 초기부터 갈마비행장을 3억달러의 돈을 들여 리모델링하고 인근에 마식령스키장을 지은 것도 이런 맥락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김정은의 '원산 챙기기'가 계속 이어지기는 쉽지 않다. 러시아 관광객 수용 등의 구상이 나오지만 대북제재에 통제 위주의 관광, 형편없는 인프라 등이 발목을 잡고 있다는 점에서다.
북한 노동신문이나 조선중앙TV 등에는 특권층이나 인근 주민으로 보이는 수 백명을 해안지역에 동원해 새 리조트가 흥성거리는 것처럼 선전영상을 찍은 정황도 드러난다. 일주일 여행에 우리 돈 250만원 가량인 비용을 선뜻 내고 이곳을 찾을 사람이 많지 않은 것도 문제다.
김정은 위원장은 집권 15년 간 핵 개발과 미사일에 집착하면서 대북제재를 자초했다. 또 푸틴의 우크라이나 불법침공을 두둔하는 편에 서서 전투병 파견과 무기 지원 등 국제사회의 비난을 사는 행동만 일삼아 왔다.
이런 국면에서 원산 리조트는 김정은의 보여주기식 통치가 만들어낸 거대한 흉물로 남을 수밖에 없다는 어두운 전망이 나온다. 운항하는 항공편 하나 없이 텅 빈 활주로의 갈마공항과 겨울 성수기에도 썰렁한 마식령 스키장은 원산 해안관광지구의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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