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 가해 北 공안기관 간부 추적‧기록하는 청년활동가
강제북송 탈북민에 고문‧폭행 가해자 신상 등 꼼꼼히 담아
체제 변동 뒤 처벌 가능성 높여

지난 7월 8일 김일성 사망 31주기를 맞아 평양 만수대언덕의 김일성‧김정일 동상을 참배하는 평양 주민들. [사진=조선중앙통신]
지난 7월 8일 김일성 사망 31주기를 맞아 평양 만수대언덕의 김일성‧김정일 동상을 참배하는 평양 주민들. [사진=조선중앙통신]

【뉴스퀘스트=이영종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북한연구센터장】 한국에 정착한 탈북민 그룹에서 연출되는 가장 어색한 장면 중의 하나는 북한 공안기관에 근무하다 탈출한 전직 요원과 그에게 직접 고문‧폭행을 당한 주민이 서울에서 만나는 경우다.

독재체제에 치를 떨며 탈출하려던 피해자와 김정은 정권 수호의 첨병 역할을 하던 가해자 모두 탈북민이 돼 같은 처지에서 어색한 조우를 하는 것이다.

자신의 전력을 숨기고 관계당국의 조사를 통과했거나 설사 일부를 털어놓았더라도 ‘민감한’ 대목은 숨겼던 보위부원 등은 그야말로 외나무다리에서 원수를 만나는 격이 된다.

피해를 입었던 주민의 경우 ‘그 사람도 어쩔 수 없이 시키는 대로 했겠지’라거나 ‘오죽했으면 탈북했겠냐’라고 넘기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상당한 트라우마에 시달린다고 한다.

북한에서의 ‘악행’을 탈북민 사회에 퍼트리는 바람에 서로 불구대천의 원수가 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특히 북중 접경 지역으로 탈북루트가 몰린 함경북도나 양강도 등지의 경우 이런 경우가 종종 벌어진다.

탈북 과정에 체포되거나 중국 등지에서 잡혀 강제북송 된 경우 이들을 처리하는 보위부 등 기관이 한정되다보니 특정 요원을 지목해 특히 심하게 인권유린을 자행한 인물로 꼽히기도 한다.

사실 북한 인권유린의 참혹한 실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김정은 체제 들어 더 가혹하고 은밀해지고 있다는 게 대북단체들의 귀띔이다.

탈북 과정에서 체포된 주민들을 고문하는 건 물론이고 여성의 경우 성폭행을 가하고 임신한 경우 강제 낙태시키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는 게 정부가 발행하는 인권백서와 관련 보고서에 담겨 있다.

고문과 폭행 모습은 물론 공개처형 장면이 담긴 영상도 외부로 유출돼 북한의 열악한 인권실상이 그대로 전달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한국 영화와 드라마를 봤다는 이유로 중고등학교에서 공개재판을 열어 학생들에게 중형을 선고하고 그 자리에서 수갑을 채워 끌고 나가는 영상이 드러나기도 했다.

모두가 김정은의 비호와 묵인 아래 이뤄지는 것으로 폐쇄적인 체제의 특성상 외부로 드러나는 게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북한이 인권 문제 제기를 내정간섭이라 주장하고 있어 개입에 마땅한 수단이 없는 게 현실이다.

이런 맹점 때문에 북한 공안요원들은 더 가혹하고 악랄한 방법을 동원해 탈북민을 고문‧폭행하고 북한 내부의 반체제 움직이나 세력을 찾아내기 위해 혈안이 된다는 게 대북 인권단체들의 지적이다.

그런데 이런 인권유린 행위에 가담한 공안기관의 실무자나 고위 책임자들에게 대한 범죄행위 추적과 기록 작업을 벌이는 국내 인권단체가 있다.

전반적인 실태나 내막을 다 알 수 없지만 일부라도 꼼꼼하고 세밀하게 기록해 공개하거나 추후 형사적 책임을 묻기 위한 축적을 해놓는 것이다.

이를 통해 반인권적 범죄행위를 저지르는 북한의 관계자들을 심리적으로 압박하고 추후에 실제로 처벌을 할 수 있는 근거자료를 마련한다는 취지다.

북한 인권실태를 담은 보고서를 펴낸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의 활동가와 연구자들. 왼쪽부터 이영환 대표, 신희석 법률분석관, 박송아 연구원, 수헤나 메흐라(Suhena Mehra) 연구원. [사진=TJWG]
북한 인권실태를 담은 보고서를 펴낸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의 활동가와 연구자들. 왼쪽부터 이영환 대표, 신희석 법률분석관, 박송아 연구원, 수헤나 메흐라(Suhena Mehra) 연구원. [사진=TJWG]

서울에서 활동하는 대북 인권단체인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은 7월 중순 김정은 정권의 인권유린과 납치‧살해 등 범죄실태를 담은 보고서인 『북한 강제실종범죄 조사기록과 책임규명: 이행 점검과 권고사항』을 최근 한글과 영문판으로 동시에 발간‧배포했다.

보고서 발간을 계기로 이 단체는 "국가보위성과 기타 국가기관 소속의 고위직을 포함한 가해자들의 프로필을 작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또 "이번 보고서는 강제송환에 책임이 큰 개인 또는 기관들의 이름을 밝히는 일과 이를 향후 형사기소 및 특정 제재의 근거로 활용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고 활동과 보고서 발간의 목적을 분명히 밝혔다.

이들은 무엇보다 한국과 국제사회가 북한 인권에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인권유린 행위 중단을 압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특히 “국제사회의 공개적이고 명시적인 행동이 없다면 북한지도부가 강제실종범죄를 중단할 동기도 생기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영환 대표를 비롯한 이 단체 청년 활동가들이 주목하는 건 마그니츠키(Magnitsky) 시스템이다.

지난 2012년 만들어진 마그니츠키법은 미국의 인권 제재 관련 법안이다. 러시아 세무 변호사인 세르게이 마그니츠키가 2009년 모스크바 교도소에서 살해당한 사건의 책임이 있는 관리들을 처벌하고 당국을 제재하기 위한 차원에서 제정됐다.

진화된 형태의 '2016년 글로벌 마그니츠키법'은 전 세계 인권 침해자에 대한 제재 권한을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북한 김정은 정권의 인권범죄에도 적용 가능하다는 게 이 단체의 주장이다.

북한 인권에 대해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는 지난 2014년 발간한 보고서에서 강제실종을 포함해 인도에 반한 죄(반인도범죄)가 북한에서 자행되어 왔다고 결론낸 바 있다.

하지만 그로부터 10년이 지나는 동안에도 강제실종 범죄는 계속됐고, 피해자들은 행방불명 상태이며 가해자 대부분이 처벌되지 않고 있다는 게 이들의 지적이다.

이번 보고서는 김정은 정권이 저질러온 인권범죄의 피해자를 ▲미송환 국군포로 ▲전시 민간인 납북자 ▲전후 민간인 납북자 ▲북송 교포 ▲일본인과 그 밖의 외국인 납북자 ▲중국‧ 러시아 등에서 실종 또는 북송된 난민과 탈북민 ▲정치범수용소(관리소) 수감자 ▲북한 내 신앙인과 '체제 전복자'로 지목된 사람들 ▲북한의 해외파견 노동자와 러시아 파병 군인 ▲외딴 섬으로 보내진 장애인 등 모두 10개의 카테고리로 분류해 놓고 있다.

보고서는 북한의 불투명한 법제도가 강제실종범죄를 가능하게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일례로 국가보위성은 자체적으로 검사와 판사를 두고서 '반국가 및 반민족 범죄' 혐의로 강제실종을 일삼고 있다는 것이다.

전환기정의워킹그룹은 “무력분쟁이나 독재 체제로부터 전환 중이거나 아직 전환이 이루어지지 않은 사회에서 대규모 인권침해를 다루는 모범 사례를 개발하고, 피해자 중심 접근으로 배상을 실현하고 가해자 책임을 규명하는 것”을 활동 목적으로 한다.

이영종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북한연구센터장
이영종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북한연구센터장

지난 2014년 서울에 설립된 인권조사기록 및 애드보커시 NGO인 이 단체는 엘리트 청년들이 주도해 한국 내에서는 물론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한 목소리를 키워오면서 주목받고 있다.

가해자에 대한 구체적인 신상공개나 수배, 북한 체제의 변화 이후 반인도 범죄로 처벌될 가능성을 알림으로써 고문과 인권유린의 피해를 줄이려는 이들의 노력이 어떤 결과를 도출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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