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세계와 80년 차단된 폐쇄 사회
특권층의 이중적 행태 알 수 없지만
한류 드라마에 눈뜬 신세대 호기심
김정은도 막지 못할 정도로 거세져
![지난 7월 말 6.25전쟁 전정협정 체결 72주를 맞아 고위 간부가 북한의 ‘반미영웅’ 이병삼(오른쪽)을 방문했다. 머리맡에 미 회원제 마트 코스트코의 영양제(붉은 원)가 드러난다. [사진=조선중앙통신]](https://cdn.newsquest.co.kr/news/photo/202508/250393_150199_90.png)
【뉴스퀘스트=이영종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북한연구센터장】 북한의 속내를 오랜 기간 관찰해온 필자 입장에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그들만의 세상이 있음을 절감하게 된다. 특히 베일에 싸인 평양 권력층의 은밀한 생활상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같다.
당장 김정은이 왜 12살 난 딸 주애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후계자 띄우기를 하는지에 대해 명확히 설명해 줄 근거 있는 분석이 없다. 3년 전 처음에는 주애의 손을 잡고 미사일 발사장에 나왔을 때 그저 ‘딸 바보’ 아빠의 자식 자랑 정도로 여겼지만 점점 상황은 심상치 않게 돌아갔다.
공개 석상에서 아빠 옆 자리를 차지했고 군부 고위인사들이 그에게 고개를 숙였다. 호칭도 ‘사랑하는 자제분’에서 ‘존경하는 따님’으로 바뀌었다. 결국 생모인 이설주를 밀어내고 마치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대신하는 듯한 장면도 연출됐다.
국가정보원도 ‘후계자로 유력하고 관련 수업을 받고 있다’는 정보판단을 국회 정보위에 보고했지만 왜 그러는지는 아직 미스터리다. 41살 나이의 최고지도자가 무슨 속사정이 있어 저렇게 후계를 서두르냐는 의문에 속 시원한 답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수십 년 동안 북한을 추적·연구해온 대북 전문가 그룹은 물론 한미의 북한 정보 요원들도 이런 어려움을 토로한다. 그토록 반미를 내세우던 김일성과 김정일은 왜 마지막 가는 길에 영구차로 ‘미제’를 상징하는 링컨컨티넨털 리무진을 사용했을까 하는 대목도 그렇다.
외부 정보와 철저히 차단당한 채 지난 80년 세습체제에서 살아온 북한 주민들이 세상 돌아가는 걸 알 턱이 없다. 아직도 6.25전쟁은 미제와 남조선이 북침도발을 한 것이고 그 전쟁에서 김일성은 승리했다고 주장한다.
북한에는 3.1절이 없다. 김일성 장군이 이끄는 빨치산이 조국 해방을 위한 투쟁에서 승리했다고 거짓 선전을 하는 판에 유관순 열사의 노력이 부각되면 낭패라는 점에서다.
하지만 이런 날조와 왜곡·과장이 덧쌓이면서 그 숨겨진 내막이 속속 드러나기도 한다. 특히 최근 들어 김정은에 대한 선전·선동이 강화되면서 관련 영상이 대거 등장하자 비밀에 부쳐야 할 내용들까지 흘러나오기도 한다.
그동안 북한이 ‘반미 영웅’으로 부각해온 이병삼(82) 전 인민보안성 정치국장을 선전하는 과정에서 그가 미국산 영양제를 몰래 챙겨먹는 정황이 드러나 망신을 산 게 대표적이다. 지난 7월27일 전정협정 체결 72주년을 맞아 북한 노동당과 군부 고위 간부들이 이른바 전쟁노병을 찾아 위로하는 장면을 북한 관영매체가 보도했는데, 북한군 상장(上將, 별 셋으로 우리군의 중장에 해당) 출신인 이병삼의 집을 방문한 사진에서 거실 약상자 속에 놓인 미국의 대형 회원제 마트인 코스트코의 K브랜드 비타민제가 포착된 것이다.
북한 매체들은 이 사진에서 영문으로 표기된 브랜드명을 검게 지웠지만 한눈에 봐도 해당 비타민제란 점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철저한 통제와 사전·사후 검열을 거치지만 걸러지지 못한 내막이 공개된 것이다.
리병삼은 6.25전쟁 당시 평남 안주지역에서 소년근위대 노동당 위원장으로 활동한 이른바 '빨치산'으로 극단적 반미투쟁 등으로 김일성의 총애를 받은 것으로 북한은 선전해왔다.
물론 개방사회 같았다면 이런저런 여론의 비판을 받고 사과를 하는 등의 과정이 이어졌겠지만 북한에서는 그런 일이 벌어지기는 어렵다. 노동신문 등 매체들이 그런 문제를 제기하거나 보도할 리도 없겠지만 이런 외부 소식을 전하는 경우도 전무하다는 측면에서다.
![북한의 청소년 학생들이 한국 드라마를 봤다는 이유로 공개재판에서 노동교화형(징역) 12년형을 선고받고 체포되는 장면. [사진=연합뉴스]](https://cdn.newsquest.co.kr/news/photo/202508/250393_150200_2357.png)
결국 김정은과 노동당 고위 간부들의 이중적인 행태나 그들만의 전횡을 없애려면 비판여론이 싹을 틔울 상황이 마련돼야 한다. 또 체제개방이나 외부정보의 유입은 필수적이다.
북한이 한국 드라마·영화가 청년세대와 청소년층을 중심으로 번져가는 걸 막으려 안간힘을 쓰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대북전단이나 확성기 방송을 접하고 외부 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키운 전방 병사들이 전역 후 북한 전역으로 흩어져 새로운 세상이 있다는 걸 입소문 내는 상황이 북한 지배층에게는 말 그대로 악몽일 수밖에 없다.
사태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김정은은 2020년 12월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만들어 한류 드라마·영화를 단순 시청하다 적발돼도 징역 5~15년 형에 처하는 가혹한 처벌을 가했다. 하지만 외부세계에 대한 젊은 세대의 호기심을 막을 수는 없어 보인다.
더 많은 북한 젊은이들이 외부 정보에 눈뜨게 된다면 김정은과 핵심 계층의 이중생활도 마지막을 고할 공산이 크다. 폐쇄적이고 획일화 된 체제가 개방적이고 다원화된 세상을 이겨낼 방도는 찾기 힘들어 보인다.
<세상을 보는 바른 눈 '뉴스퀘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