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찬양 샤먼 평양서 공연
주민 환호 등 그대로 공개해
북러 밀착 분위기 띄우면서
K-팝 열기 차단 이중효과 노려

광복 80주년을 맞아 축하 사절로 방북한 러시아 예술인들의 공연이 지난 15일 평양체육관에서 진행됐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6일 보도했다. 공연에서 '친 푸틴' 성향으로 유명한 가수 샤먼(본명 야로슬라프 드로노프)이 열창하고 있다. [사진=조선중앙통신‧연합]
광복 80주년을 맞아 축하 사절로 방북한 러시아 예술인들의 공연이 지난 15일 평양체육관에서 진행됐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6일 보도했다. 공연에서 '친 푸틴' 성향으로 유명한 가수 샤먼(본명 야로슬라프 드로노프)이 열창하고 있다. [사진=조선중앙통신‧연합]

【뉴스퀘스트=이영종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북한연구센터장】 북한도 지난 15일 광복 80주년을 맞아 다채로운 기념행사를 열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참석한 경축행사와 공연이 이어졌고 보고대회와 전시회, 문화행사가 줄을 이었다.

그런데 이번 평양 8.15 행사에서 단연 ‘신 스틸러’로 등장한 건 러시아 가수 샤먼이었다. 축하사절로 러시아 국방성 소속 전략로켓군 '붉은별' 합주단, 항공육전군협주단이 공연을 펼치고, 러시아 하원(국가두마) 의장도 공연장에 등장했지만 샤먼 한사람을 이겨낼 수 없었다.

본명이 야로슬라프 드로노프로 알려진 샤먼은 대표적인 친 푸틴 성향의 대중가수로 알려져 있다. 북한 당국이 김정은과 푸틴의 각별한 관계를 과시하고 북러 밀착을 부각하는 차원에서 샤먼을 초청 리스트에 올린 것으로 보인다.

조선중앙통신은 “로씨야(러시아의 북한식 표기)의 인기가수 샤먼이 부른 '나의 로씨야','일어서리' 등 애국주의 주제의 노래들은 풍부한 예술적 기량과 기백 넘친 형상으로 하여 관람자들의 절찬을 받았다”고 전했다.

이 매체가 공개한 공연 장면에는 평양체육관 무대에서 찢어진 블랙진에 가죽점퍼를 걸친 샤먼이 스탠드마이크를 휘어잡고 열창하는 모습이나 인공기와 러시아 국기를 양손에 들고 무대를 가로지르는 광경이 드러난다.

광복 80주년을 맞아 방북 공연을 한 러시아 가수 샤먼이 관객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사진=조선중앙통신‧연합]
광복 80주년을 맞아 방북 공연을 한 러시아 가수 샤먼이 관객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사진=조선중앙통신‧연합]

특히 눈길을 끈 건 샤먼의 공연에 환호하거나 그의 손을 잡으려 애쓰는 관객들의 모습이 그대로 여과 없이 담긴 장면이다.

심지어 무대에서 내려와 객석을 누비면서 평양주민들과 손을 맞잡는가 하면 관객의 호응을 유도하는 제스처를 보이며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북한은 대외매체인 중앙통신 뿐 아니라 주민들이 접할 수 있는 노동신문과 조선중앙TV에도 관련 장면을 소개해 공연 상황을 잘 알 수 있도록 했다.

북한이 해외가수의 공연 장면을 여과 없이 그대로 내보내면서 주민들의 열광적인 호응 장면까지 노출시킨 건 이례적인 일이다.

대북정보 관계자는 “서방의 가수였다면 부르주아 날라리풍이라거나 황색바람이라며 강하게 비판하고 아예 주민들이 접할 수 있는 매체에서는 검열해 버리는 게 북한의 상식인데 이번에는 달랐다”고 말했다.

친북 성향의 러시아 가수라는 점을 고려한다 해도 샤먼의 공연은 서방 팝스타나 록가수의 공연 장면과 크게 다르지 않은 장면이 연출됐다.

러시아 가수의 공연에 환호하는 북한 주민들의 모습은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다. 과거 2018년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열린 우리 대중가수들의 평양 공연 당시에는 주민들이 극도의 통제를 받는 듯 제대로 호응하지 못하고 경직된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당시 김정은은 우리 걸 그룹 레드벨벳의 인기곡인 ‘빨간 맛’ 등의 노래를 부르며 흥겨워하는 모습을 보였고, 공연을 마친 뒤에는 가수 일행과 따로 만나 대화하고 사진을 함께 찍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김정은이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에 불만을 토로하며 거칠게 나오면서 상황은 얼어붙었다. 김정은이 직접 문 당시 대통령을 향해 ‘삶은 소대가리’ 운운하는 폭언을 퍼부었고 여동생 김여정은 개성공단 내 우리 자산인 연락사무소 건물을 백주에 폭탄을 설치해 폭파시켜 버리는 만행을 저질렀다.

급기야 지난해 초에는 한국을 ‘제 1의 적대국’이라고 칭하면서 대남 적대노선을 노골적으로 내세웠다.

북한이 광복 80주년을 계기로 러시아 팝 가수의 체육관 콘서트를 기획하고 이를 내부에까지 알린 건 외부세계의 대중문화에 굶주린 신세대를 비롯한 북한 주민들에게 숨통을 터주려는 측면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은 지난 2020년 12월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만들어 한국의 드라마‧영화를 단순 시청하다가 적발된 경우에도 징역 5~15년의 중형을 선고할 수 있도록 했다.

이영종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북한연구센터장
이영종 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북한연구센터장

실제 중고등학교에서 전교생을 모아 공개재판을 진행하고 한국 드라마를 즐긴 학생 2명에게 징역 9년을 선고하는 내부 영상이 드러나기도 했다.

김정은이 자신의 정책노선이나 기분에 따라 K-팝이나 한류 드라마‧영화를 즐기기도 하고 가혹한 처벌을 가하는 모습에 신세대를 중심으로 불만이 고조되고 있는 것으로 탈북 고위인사들은 분위기를 전하고 있다.

이런 점을 의식하고 있는 노동당과 김정은이 북한과 밀착하고 있는 러시아 가수의 공연을 통해 해외 대중문화 수용을 저울질해 본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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