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사퇴촉구 탄핵추진 비상시국대회'에서 야당 의원과 시민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https://cdn.newsquest.co.kr/news/photo/202412/235610_133318_1918.jpg)
미국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으로 평가받는 리처드 닉슨도 역사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게 있다.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민주당의 존 F 케네디와 맞붙은 1960년 대선에서의 멋진 승복이다. 당시 하와이주의 첫 개표에서 닉슨이 141표를 더 얻었으나 재개표 결과 케네디의 득표수가 115표 더 많은 것으로 번복됐다. 당연히 2차 재검표를 요구할 상황이었지만 닉슨은 “재검표가 이뤄지는 동안 대통령의 운명이 담보 잡힌다”며 재검표를 포기한다. 그리고 무려 8년을 기다려 대통령에 오른다.
다른 하나는 워터게이트사건으로 의회에서 탄핵이 추진되자 이를 기다리지 않고 사퇴를 선택한 것이다. 닉슨 외에도 앤드루 존슨과 빌 클린턴 등 두 명의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더 추진됐지만 이들은 솔직한 사과와 찬반논란 등으로 탄핵이 부결될 수밖에 없었다.
반면 닉슨은 달랐다. 민주당은 물론 공화당 내부에서도 탄핵 분위기가 강했다. 검찰 수사에 직면해서도 ‘대통령 면책 특권’을 내세우며 2년여를 버틴 닉슨이었지만 탄핵이 추진되자 더는 버티지 않고 사퇴를 결정했다.
버텨도 결국 물러나야하는 위기였지만 탄핵만은 피해야겠다는 의지가 있었다. 미국 역사에서 지금까지 ‘탄핵 대통령’이 나오지 않은 이유다.
그가 밝힌 사퇴의 변은 축약하면 이렇다.
“국익은 개인의 이익보다 우선돼야 합니다. 임기가 끝나기 전에 이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견딜 수 없지만 미국은 각자의 직무에 전념할 수 있는 대통령과 의회를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무고를 증명하기 위해 싸움을 계속하면 대통령과 의회의 시간과 관심이 모두 이 문제에 몰리게 될 것입니다. 저의 사임이 이 나라가 필요로 하는 치유의 과정을 앞당기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금 대통령이 된 이후 최대 위기에 처했다. 3일 밤 긴급 비상계엄을 선포했다가 국회의 저지로 6시간 만에 어쩔 수 없이 이를 해제하면서 자초한 위기다.
국민과 야당의 분노는 물론이고 국무위원들, 대통령실 수석들 대부분 사의를 표명했고 여당마저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갈수록 고립무원의 상태에 빠져들고 있다.
이번 사태로 가뜩이나 취약한 경제에 대혼란 상황이 초래됐다. 환율은 급등하고 주가는 내리막길이다. 연말 배당을 노리고 매수에 나섰던 외국인 투자자들도 다시 한국주식을 내던지고 있다. 여기에 민주노총은 윤 대통령 퇴진 때까지 총파업을 벌이기로 결의했다.
지금 윤 대통령의 선택지는 많지 않다. ‘진정한 사과와 자진 퇴진, 탄핵...’ 과연 어느 것이 이 혼란상을 되돌릴 수 있을지 섣불리 답을 내놓기 어렵다.
다만 확실한 것은 먹고살기 힘든 국민과 취약한 경제를 감안해 이 혼란상을 최대한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이를 무시하고 버티다 결국 탄핵의 강을 건넜고 대한민국에 탄핵의 역사도 그렇게 만들어졌다.
계엄선포와 해제 이후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6개 야당은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대로라면 다시 탄핵 시계가 돌아가면서 몇 개월 동안 국정마비 상태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높다. 범국민적 촛불행진도 다시 들불처럼 일어날 조짐이다. 이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국민의 마음을 되돌릴 수 있는 진정한 사과로 이번 사태를 해소할 수 있는 지, 아니면 책임총리든 거국내각총리든 새로운 형태의 리더십을 갖출 수 있는 방안은 있는 지 고민해 시급히 결정해야 한다.
닉슨은 운이 좋아서인지 사퇴 1년 뒤 수많은 논란 속에서도 사면을 받았고, 그를 사면한 제럴드 포드 대통령은 국론분열을 막은 공로로 ‘케네디 용기상’을 수상했다. 미국과 경우는 다르지만 또 다시 탄핵의 강을 건너야하는 역사만은 만들지 말아야 한다.
/이용택 편집인
